엄마가 다 미안해.

by 김바람

"아빠 보고 싶지 않아?"


큰아이와 볼일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물었다.


이혼을 마무리 지은 후

아빠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은 나였다.


아이들은 여전히 우리가

함께라고 믿고 있었고

이혼이라는 단어는 아이의 세상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순간 큰아이는

"미안해 엄마. 정말 미안해." 하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심장이 내려앉아

옆을 돌아보지 못했다.

나는 앞만 보며 운전만 할 뿐이었다.


못 보겠다.

미안해 죽을 것 같아 돌아보지 못했다.


"알고..... 있었어......?"


"미안해 엄마. 모른 척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갑자기 아빠 이야기를 물어보니까

눈물이 나왔어. 미안해.."


뭐가 미안했을까.

왜 나에게 미안한 걸까.

정작 온전한 가정을 지켜주지 못한 내가

무릎이라도 꿇고 사과하고 싶은데....


난 여전히 앞만 보고 운전했다.


눈물이 번져 시야가 흐려졌지만,

우는 걸 들킬까 봐

고개를 조금 숙이고,

조용히 눈물을 흘려보냈다.


눈물이 아니라,

마음이 흘러내렸다.

멈춰지지 않아,

그저 울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전히 아이는

마치 오래 막아 두었던

물줄기가 터지듯,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울고 있었다.


"너 엄마한테 하나도 미안한 거 없어.

네가 왜 미안해.

사과해야 할 사람은 엄마야.

빨리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용기가 안 났어.

먼저 이야기해서 너희들에게 이해해 달라고

아빠 몫까지 열심히 사랑해 줄 테니

엄마로 만족해 주면 안 되겠냐고

이혼하자마자 말했어야 했는데

엄마가 바보처럼 미루기만 했어.

엄마가 정말 미안해."


변명 아닌 변명을 해봤다.


내 핸드폰을 봤다고 했다.

이럴 줄 알고 비번이며 지문인식이며

못 보게 막아뒀는데..

어쩌다가...


아이는 몰래 핸드폰 봐서 미안하다고...

봤으면 끝까지 모른 척했어야 했는데

눈물이 마음대로 나왔다며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한테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 없어?

다 이야기해 줄게..

이렇게 억지로 알게 돼서 정말 미안해."


"누가 먼저 이혼하자고 한 거야?"


"둘이 생각이 같았어.

그래서 더는 서로 붙잡지 않았어."


아빠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는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아빠가 그리운 존재가 되는 게 나을 테니까.


나쁜 아빠면 아이가 더 슬플 테니까.

내 아빠가 나쁜 놈이라는 건

그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상처일 테니까.


"왜 이혼했는지 이유도 듣고 싶어?


"아니... 아직은...

그 이유는 00(동생) 이와 같이 들을게.

근데 아직은 00 이한테 얘기하지 말자.

상처 많이 받을 것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아이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의

조심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최선이었다.


"엄마도 언제 이야기해야 하나 고민 많이 했어

사춘기인데 괜찮을까.

시험기간인데 괜찮을까.

즐거워 보이는데 괜찮을까.

미루고 또 미뤄서 미안해

아빠 못 봐서 많이 속상하지?"


"아니 익숙해져서 괜찮아.

근데 돈은?

엄마 혼자 벌면서 다 감당하는 거야?"


"아니. 아빠가 너희 학원비랑 보내주고 있어."


"이제 우리가 더 아껴 쓸게.

뭐 사고 싶다고 이야기하지 않을게.

그리고

성격도 안 바뀔게.

공부도 열심히 할게

나 괜찮아."


나는 아이를 안아주지 못했다.

괜찮다고,

이제 다 지나갔다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말이 너무 작아서,

결국 눈물로만 대답했다.


"엄마가 우리한테 정말 잘해주는 거 다 알아.

이혼했다는 거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을게."


집 앞 주차장에 도착했지만,

우리는 한동안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손끝이 떨려 시동을 끄는 것도,

눈을 마주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냥, 쏟아졌다.

창밖의 불빛이 번져 보였다.

"엄마! 기죽지 마!!'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더 크게 울었다.

지금 울지 않으면,

다시는 울 수 없을 것 같아서.


한참을 그렇게 울고 나서야,
서로를 바라봤다.
말은 없었지만,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이 다 전해졌다.


“이제 그만 울자.”
아이가 내 손을 꼭 잡았다.

“00 이가 기다리잖아. 얼른 올라가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차문을 열었다.


집에 도착하자,

큰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00에게 먼저 장난을 걸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왜 이렇게 늦었어?”
“몰라~ 엄마가 길 잘못 들어서 그래.”

두 아이의 웃음소리가

집 안에 번졌지만,
그 웃음이 내 가슴엔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큰아이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는 걸
나는 알았다.

그 작은 어깨에,
자기 몫보다 더 큰

어른의 짐이 얹혀 있다는 것도.

나는 모른 척해야 했다.

그게 지금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유일한 평온이었으니까.


그렇게 또 하루를 삼켰다.

아무 일 없던 하루처럼.

우리 모두,

조금씩 부서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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