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가 헤어진 이유가...

by 김바람

"아빠가 바람피운 거지?"


이렇게 허술했다.
좋은 아빠로 남아주길 바랐던 3년의 세월이
그 한마디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동안 아이들 앞에서
끝까지 그를 감싸며

‘괜찮은 아빠’의 자리를 지켜주려 했다.

하지만 그 한마디 앞에서 무너진 건,

내가 지켜주려 애쓴 ‘가짜 평화’였다.


집 안 곳곳에 남아 있던,
허술하게 붙잡아온 평화의 흔적들이
진실이 새어 나온 순간
하나씩 제자리를 잃었다.


그동안 어른들이 감춰왔던 조각들을
퍼즐 맞추듯

아이들은

하나씩 이어가기 시작했다.

3년 전

예고도 없이 집을 나간 아빠.

'이혼' '남편 바람'의 검색 흔적.

여전히 연락 없는 아빠.


이런 모든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지금에서야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었다.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
그 모든 의문들이
이제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바람피운 아빠'

'이혼의 이유'


큰아이가 이혼사실을 알고 난 후

아무렇지 않게 일주일이 흘렀다.

아이는 그대로였고

그 일에 대해서는

어떠한 물음도 없었다.


"오늘 00 이에게 이야기해 이제.

빨리 이야기 나눠봐.'


셋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꺼냈고

충격을 먹은 둘째는

어떤 이야기도 묻지 않았다.


평소에도 감정을 숨겨 지내는 아이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느낌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이야기를 끝낸 후

"아빠가 파람 핀 거지?"라고 묻는 아이에게

나는 아니라고,
정확하게 대답해주지 못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들이 있었지만

그 어떤 단어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는 게 옳은 걸까,
아니면 한 번 더 감춰주는 게 사랑일까.
그 짧은 침묵 속에서

내가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이는 내 눈을 똑바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빛에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잠시의 침묵 끝에,
아이들은 조용히 말했다.
“이제는 엄마를 이해해.

우리 괜찮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무너질 것 같던 마음 한편이
조금은 단단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이들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달라지는 건 없어.
우린 여전히 가족이야.”


집 안의 공기는 조금 달라졌지만
그 변화는 아픔이 아니라,
조용한 성장처럼 느껴졌다.


언젠가는 아이들이 알게 되겠지,
그날이 오면 세상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던 시간이
생각보다 조용하게 지나가버렸다.


이제는 숨기지 않아도 된다.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되고,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불안하게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오히려 진실이 드러나고 나서야

우리 사이의 공기가 더 맑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미안함이 남았다.

내가 홀가분해지자고,

아이들에게 너무 일찍

나의 몫을 넘겨준 건 아닐까.


그래도 결국은
이 길이

우리 가족에게 필요했던 과정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숙제였던
‘이혼 사실을 아이들에게 말하는 일’.

그 오래된 두려움과 망설임의 숙제가
오늘에서야 비로소 끝이 났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강했고,
나는 그 강함 덕분에
다시 나 자신을 믿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거짓된 평화 대신

조용한 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려 한다.

그게 어쩌면,
진짜 가족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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