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강아지는 사실,
처음부터 내 선택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이 아이들이 내 품에 남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전남편이 원해서 키우기 시작했지만,
집을 떠날 때 그는
그 아이들을 데려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남겨진 두 마리는,
결국
나와 아이들의 인생 속으로 들어왔다.
이제 생각해 보면,
그날의 선택이 우리 가족의
‘새로고침’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바람피운 걸 알게 된 후
난 꼴도 보기 싫으니 나가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
다음날 바로 원룸을 얻어 짐을 챙겨 나갔다.
11월 중순 완전한 겨울이 오기 전에..
그때까지도 남편은
결백해서 나가는 것처럼
내가 몰아붙여서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했던
그런 태도를 보이며
반성과 사과의 말도 없이
짐을 챙겨 나갔다.
창고에 있는 선풍기도 하나 가져갔다는 걸
여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칼하나, 맥주컵까지
아주 야무지게 챙겨갔지만
강아지들은 두고 갔다.
원룸이라 키울 수 없으니 그냥 두라고..
초등 3학년 쌍둥이와 강아지 두 마리...
내게 남겨진 가족이었다.
남편은 집을 나간 후에도
여전히 회사 유부녀와 행복한 만남을 이어갔다.
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생활이 피폐해져 갔다.
그래서
연락하고 싶지 않지만,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지만,
상간녀에게 연락하게 되었다.
그 여자는 남편이 집을 나온 것도 몰랐고
별사이 아니라고 발뺌을 했고
난 유치하게 증거를 들이밀며
한가정을 망가트린 널 용서하지 않겠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겁을 주었다.
난 그냥 평화롭고 싶었다.
강아지들과
나의 아들들과.
하지만 억울해서
나도 한 번쯤은 갑의 위치에서
그들을 벌하는 흉내를 내고 싶었다.
아마 즐기고 있었던 것도 같다.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라 생각하고
빨리 포기했었던.
하지만 진짜 포기는 아니었던.
이렇게 그 둘을 쩔쩔매게 만들고
쓰레기 취급을 해놓으니
조금은 마음이 풀린 것도 같았고
마치 내가 잃어버린 정의를 잠시 되찾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밤이 깊어질수록 묘한 공허함이 밀려왔다.
분노로 꽉 채워졌던 가슴속이 비워지자,
남은 건 허무와 피로뿐이었다.
그래서
현재의 가족에 충실하자고 마음먹었다.
차가운 복수심과는 다른 따뜻한 일상이 오게끔.
그 마음이 스미자,
이불속으로 파고드는 강아지들의 온기가
마치 내 굳은 마음을 녹이는 듯했다.
아침이면 두 마리는
내 이불을 파고들어 와 숨을 고르고,
아이들이 등교하는 소리에 맞춰 꼬리를 흔들었다.
내가 지친 몸을 소파에 늘어놓을 때,
조용히 다가와 이마를 핥아주기도 했다.
그 작은 온기와 리듬이,
알람 소리처럼 자동으로
내 하루를 다시 작동시켰다.
강아지들과의 시간은
복수나 소송 같은 거창한 결심 대신,
아주 사소한 의무를 내게 줬다.
밥을 주고,
산책을 나가고,
털을 빗겨주는 반복된 손놀림 속에서
나는 서서히 단단해졌다.
아이들도 강아지들을 돌보며 책임감을 배웠고,
밤에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 작은 존재들이 다리를 베고 있곤 했다.
그들은 나와 아이들에게
일상을 채워주는 존재가 되었고,
나 자신을 다시 돌보게 만드는
작은 계기가 되었다.
하루 한 번의 산책이 내 규칙이 됐고,
강아지들이 좋아하는 간단한 간식 하나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소소한 행복을 배웠다.
그가 떠나고
두 강아지가 남겨진 건 우연이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다행이었다고.
우리가 다시 숨을 고르고,
서로의 온기로 하루를 채우는 동안,
상처도 조금씩 아물었으니..
이제는 안다.
어떤 상처는 시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물게 해 준다는 걸.
두 강아지는 내게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라,
가족의 이름으로 다시 숨 쉬게 한 작은 기적이었다.
상처는 다 나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그 자체가 새로고침이다.
그리고 그 새로고침은 끝난 것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