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에서요?
11년동안 했던 학원일을 접고,
학구열을 불태웠던 대학원입시를 대상포진, 턱마비로 면접에 못간뒤
이상한 일들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온몸에 모기가 물린듯 알러지가 올라왔고
독한 알러지 약을 끊기도 전에
기관지염으로 앓아 누워야 했다.
내가 뭘 잘 못한건가.
목표가 생기면 한눈파는 법이 최고 속력으로 내달렸다.
곧 마흔.
0부터 다시 시작하려면 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건 별로 믿고 싶지 않지만 꼭 하늘에서 말리는 느낌이 들었다.
‘왜 너는 구태여 그걸 하려고하니. 그만둬.’
내가 하는 일마나 하늘이 퇴짜를 놓는 느낌이었다.
‘왜 내가 꾸는 꿈마다 훼방을 놓는거야? 내 노력이 부족하면 모를까
내가 진짜 노력하고 있는게 맞다면 제발 나 좀 도와줘.‘
아무리 기도를해도 들어주지 않는것 같았다.
미련이 한참 남았다.
그 비싼 등록금을 내고 열심히 내가 공부를 한다고 해도 공부를 할 수없는 노릇이라니.
내가 제일 바라는 나의 이상향은 미사여구 없이 나를 한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39살 평생을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 인간이고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인지 설명하기 바쁘다.
싫다. 구구절절.
명문대와 외국대학교가 넘쳐나는 그 경쟁을 내가 현실적으로 돌파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번쯤 내 인생에 기적이 일어 나지 않을까 기대 했던것 같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대학원 입시를 접었다.
나는 학원을 그만두고 대략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아이 하원시간전에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봉사 활동을 했다.
사실 말이 봉사 활동이었지. 치유는 내가 받고 있었다.
아이들은 해 맑게 나를 맞아 주었고, 사회화 훈련도 잘 따라 주었다.
솜이를 맞이하기 위해 세나개를 주구장창 봐왔기 때문에
계단 오르내리기, 기다리기, 앉기 훈련 시키는건 자신있었다.
11년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얻은 나의 인내심.
그래. 시간이 허투로 간것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게 없을까?
세상에 이렇게 이쁜 아이들이 있다는걸 불법번식장에 아이들이 뜬장에서 새끼만 낳다가 죽는일은 없을 텐데‘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는 유기동물을 입양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정부지원 사업을 살펴보며 내가 도전하기에는 문턱이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여성창업경진대회부터 도전하기로 하였다.
혹시나 내 아이디어가 제대로 사업계획서에서 전달이 안될까봐 다른 도시에서 열리는 사업계획서 교육을 다니면서 사업계획서를 다듬었다.
내가 만드는 플랫폼에는 기술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다.
이공계는 아니었지만.
나는 30년된 전파사집 딸래미였고
수업할 때도 내가 할수있는 기술들을 적극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전문가는 아니지만 기술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workflow를 정리해 놓고
SNS에서 이미 반려 동물을 기르는 사람들 1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하였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관련 컨텐츠를 만들고,
12시에는 의정부에 가서 교육을 듣고 사업 계획서를 다듬었다.
유기동물 없는 사회를 꿈꾸며,
반려동물과 행복한 삶을 상상하며.
매일 달렸지만 즐거웠다.
내 상상이 실현된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짜릿했다.
경진대회일 마지막날.
키즈카페에서 마지막을 불태우며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1차에서 나의 아이디어가 실효성을 인정받게 되면
사회적으로 사업적으로 가치를 인정 받았기 때문에 조금 더디더라도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차는 면접과 프레젠테이션이었다.
11년동안 수업을 했는데 프레젠테이션은 자신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1차를 떨어질거라고 생각을 아예 안했던 것 같다.
유기동물보호센터를 다니면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분명히 있으리라 믿었다.
일주일 뒤.
결과는 불합격.
그날 통장에 남은 잔고를 보니 40만원.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꿈을 쫓아갈 때가 아니구나. 이번달 관리비도 못냈는데…’
정신이 아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