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생일, 나를 안아주는 날

1994년 7월 15일, 그리고 오늘 생일을 맞은 너에게

by 진심한스푼

생일이 되었다.

특별한 날이다.

아니, 특별한 날이고 싶은 날이다.


하지만 섬이라는 이 곳 현실세계에서는 아무도 제대로 축하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생일이라고 퇴근 후 저녁 먹자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저 평소처럼 외로운 직장생활 속에서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다.

생일 전날에도 허리가 아프도록 일하고, 집안일하고 육아를 했다.


출근하니 오전 내내 눈물만 났다. 울다가 수업하고 또 울다가 수업하고,

아이들 앞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쉬는 시간엔 계속 눈물을 훔쳤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지?"

"왜 이렇게 외롭지..."


오후시간엔 텅 빈 교실에서 한참을 울었다. 하루종일 외로움이 나를 집어삼켰다.


엄마는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자마자 자동차 보험 갱신을 도와달라고 했다.

언니는 아무 연락도 없었고, 동료들은 아예 내 생일을 모르고 하루를 지나갔다.

누구 하나, 진심으로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들은 그저 운동장에서 놀고 싶어했다. 오늘이 생일인 엄마보다는 뛰어노는게 더 좋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

나는 감정이 너무 커져 운동장에 더 있을 수가 없었다. 아들을 억지로 집에 데리고 왔다.

그리고 아들 앞에서 엉엉 울었다.


"엄마랑 둘이서 외식이라도 해주지...."

아들은 상황을 정확히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울지마, 뚝"하며 본인의 애착이불을 건네줬다.

그리고는 뽀로로 보여달라고, 밥 달라고 말했다.


참 씁쓸한 위로, 그 안에 묻어나는 순수함, 그래서 도리어 그 순간 내가 더 슬프고 아팠다.

오늘은 내 안의 깊은 상처들이 올라오는 날이였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괜찮은 척" 하며 살아왔다.


"너는 긍정적이고 항상 똑부러지고 사회생활 잘하고 믿음직한 사람이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건 내가 너무 오래 참고,

너무 오래 '좋은 사람 역할'을 해낸 결과 뿐이었다.


유튜브에 '외로운 생일'이라고 검색해봤다.

뉴스 기사까지 나왔다.

"생일엔 원래 외로운 감정이 들 수 있다."

"타인에게는 현실적인 기대만 하자."

따뜻한 댓글을이 많았다.

"나도 매년 외로워요." "혼자 케이크 먹으면서 울었어요." "괜찮아요, 우리 다 그렇게 살아요."

나만 그런게 아니였구나.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었다.

미디어의 순기능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조용히 '어린 날의 나'를 만났다.

속으론 늘 사랑을 갈구했고, 그저 누군가에게 어리광 부리고 싶었는데

나는 그걸 꽁꽁 숨긴 채 너무 잘 살아왔더라. 착하게! 괜찮게! 완벽하게!


그렇게 숨기고 살아오느라 사람들은 모른다.

내 안에 그렇게 여리고 외롭고 어떤 날은 무너지는 아이가 있다는걸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하나다.

그 아이가 오늘 땡깡부리며 찾아와 나에게 말했다.

" 나 너무 힘들어. 나 좀 알아줘. 나 오늘 땡깡부리고 싶어."


그래 넌 너무 예쁘고 대견한 아이야. 오늘 이렇게 생일 핑계대면서 나한테 와줘서 고마워

앞으로는 내가 더 잘 알아줄게, 너를 다른 누구보다 내가 먼저 사랑해줄게.


1994년 7월 15일

서울에서 부모님의 둘째딸, 내가 태어났다. 몇 번의 유산 끝에 얻는 건강한 딸아이였다.

이 아이는 커서 엄마가 힘들때 위로도 해주고 즐거움도 주는 맑고 순수한 아이로 성장했다.

그리고 착한 딸, 똑부러진 딸, 엄마로 교사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2025년 7월 15일

나는 외로움 속에서 진짜 나를 만나러 갔다. 그 아이는 조용히 말했다.

"나 좀 예쁘다고 말해줘."

그리고 오늘, 나는 그렇게 하려고 나를 위해 글을 쓰고 있다.

"너 정말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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