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진실은 죄가 되었다

진실을 말한 대가는 외로움과 감옥이었다

by 잡생각 수집가

어제 시골에서 있었던 일을 글로 썼다.

중장비 앞에 서 있었던 할머니,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그 진심과,

그 손에 조용히 쥐여진 3만 원.

그 글을 쓰고 나서야 떠오른 기억이 하나 있다.

https://brunch.co.kr/@mindhoarder/19


이건 더 오래된 이야기다.

20년도 넘은, 내 머릿속 어딘가에 박혀 있던 장면.

2003년,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덮쳤다.

온 나라가 물에 잠겼고,

정부는 수해 지원금을 풀기 시작했다.


읍면동 단위로 내려온 지원금

“피해를 입은 마을 전체”에 지급되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사시던 마을은, 실제로 피해가 없었다.

기와도 무너지지 않았고, 논도 멀쩡했다.

태풍은 다행히도 빗겨 나갔다.


그걸 처음으로 말한 사람이 우리 할아버지였다.

“우리는 수해 안 입었는데 왜 돈을 받지?”

“이거, 잘못 내려온 거야.”

“그대로 받으면 안 돼. 알려야지.”

그 한마디로, 할아버지는 마을의 ‘문제 인물’이 됐다.



며칠 후, 마을 사람들이 작당했다.

이장과 몇몇 어르신들이 입을 맞췄다.

“저 노인이 거짓말을 했다.”

“수해는 맞았다.”

“지원금은 정당했다.”


그들은 거꾸로,

할아버지를 ‘무고죄’로 고소했다.

세상은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굴러갔다.

할아버지는 조사를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3개월이었다.


감옥이었는지, 구치소였는지

어린 나는 정확히 구분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던 건

할아버지가 억울하게 그곳에 계신다는 사실이었다.




부모님은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했다.

돌아온 말은 간단했다.

“이건… 그냥 똥 밟은 겁니다.”

“입을 맞춘 이상,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

“합의하고 나오시는 게 그나마 빠릅니다.”


raw?se=2025-06-26T14%3A21%3A34Z&sp=r&sv=2024-08-04&sr=b&scid=d87f0496-042c-51bc-8421-f02793a5e2e1&skoid=732f244e-db13-47c3-bcc7-7ee02a9397bc&sktid=a48cca56-e6da-484e-a814-9c849652bcb3&skt=2025-06-26T09%3A34%3A30Z&ske=2025-06-27T09%3A34%3A30Z&sks=b&skv=2024-08-04&sig=J0WQb812%2BMrBaasGrDkIQleYJS2eqdMi0RsGCCKGWfM%3D

그 말이,

지금도 마음 어딘가에서 악취처럼 남아 있다.

정직한 사람이 처벌받는다.

거짓말한 다수가, 입을 모으면

진실은 ‘고집’이 되고, ‘피해망상’이 되고, 결국 ‘죄’가 된다.


그 구조는 지금도 여전하다.

며칠 전, 할머니는 중장비 앞에서 서 있었다.

마을을 지켜야 한다며, 누군가와 함께.

그 손엔 3만 원이 쥐어졌고,

그 댓가는 누군가의 이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스무 해 전,

할아버지는 ‘지켜야 할 것’을 지키려 했다.

그 댓가는 구치소 3개월이었다.

나는 이 두 장면이 자꾸 겹쳐 보인다.


한쪽에선 무고한 진심이 죄가 되었고,

다른 한쪽에선 동원된 진심이 돈이 되었다.

전자는 벌을 받았고,

후자는 침묵 속에서 사라졌다.


할아버지는 틀리지 않으셨다.

다만, 너무 빨랐고

너무 혼자였을 뿐이다.


지금이라면 달랐을까?

SNS, 기사 제보, 커뮤니티,

‘취재가 시작되자’ 같은 마법의 문장이

할아버지를 구해줄 수 있었을까?


하지만 나는 안다.

세상은 여전히

“누가 먼저 말했느냐”보다, “누가 더 많이 말하느냐”에 따라 움직인다.

입을 맞춘 5명이 1명을 이기고,

구조는 항상

정직한 쪽이 손해를 본다.


그걸 어른이 되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이렇게 글로나마 다시 쓰고 싶었다.


그 여름,

할아버지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걸

이제라도 말하고 싶었다.


예전엔 정직하면 손해 보는 줄 알았다.

지금도 그 구조는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누군가는 계속 말해야 한다고 믿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3만원 받고 드러눕는 어르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