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는 아이들과 교실의 빈자리

by 윙글

입시를 포기한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나갔다.

속이야 많이 상했지만,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네가 입시 미술 달리기를 계속하는 동안, 나는 2개의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입시를 포기했지만, 화실은 갈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아가고 있었다.


2000년 3월 12일 - 너의 일기(내가 자격증 시험을 보는 날)

너 꼭 붙을 거다.

네가 이런 말 하지 말랬지만, 공모전도 잘 될 거 같어.

내가 물 떠놓고 빌어줄까? 허준 할아버지의 사모님처럼…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는 졸업하기 전에 많은 아이들이 취업에 나가게 된다.

그것도 생각보다 빠른 시기에.


봄부터 대기업 취업을 시작으로 아이들은 하나 둘 학교를 떠나고 있었다.

나도 취업을 나가게 된다면 졸업하기 전에 나가게 되겠지.

떠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너는 아쉬워하고 있었다.



2000년 3월 12일 - 너의 일기

OO이도 너도 학교에 없을 걸 생각하니까 정말 심심해지려 한다.

하긴… 너 있어도 몇 마디 안 하지… 그걸 깜박했네.


2000년 3월 15일 - 너의 일기

오늘은 삼성에 취업 신청한 애들이 발표가 났지?

실장은 참… 유감이더라. 실장 참 좋은 앤 데…

삼성 거기 사람들은 열심히 하는 애 하나 놓친 샘이지 뭐.



이렇게 너와 나의 삶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아니, 반 아이들의 삶이 모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학교 수업만으로 수능을 준비하기에는 부족해 부랴부랴 영어나 수학 학원에 다니는 아이도 있었고, 학교로 의뢰가 들어오는 취업 면접을 준비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면접에 합격한 아이들을 함께 축하해 주기도 했지만, 취업과 동시에 먼 지역으로 떠나는 아이들을 보며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일기장의 여백을 보며 계속 일기를 쓸 건지 묻는 너의 글이 보였다.

나도 당연히 계속 쓰고 싶었겠지만, 여름방학을 하루 앞둔 날 나는 지역 인쇄골목으로 취업을 나가게 됐다.



2000년 3월 12일 - 너의 일기

참, 일기장 말이야… 얼마 안 남았다고…

계속 쓸 거지?


일기계속쓸거지.jpg


커버 사진 출처: pixabay.com


keyword
이전 24화너는 나의 히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