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지금, 대학 간다고 설치는데...!"
이사님의 말은 날카로운 창으로 날아와 나를 뚫고 지나갔다.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한 후, 회사 이사님의 대답이었다.
나는 여름방학이 시작하는 날부터 지역 인쇄골목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6개월쯤 다녔을까, 전문대 졸업장이라도 대학 졸업장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한 시간 정도만이라도 일찍 퇴근할 수 있다면 야간 대학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속한 기획실은 과장님이 총괄하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과장님께 말씀드렸다.
야간 대학이라도 가고 싶은데 퇴근시간이 수업시간과 겹친다.
급여를 낮추더라도 한 시간만 일찍 퇴근하고 싶다.
만약 불가능 하다면?
그렇다면 정말 죄송하지만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서라도 학교에 가고 싶다
과장님은 아무 힘이 없는 분이었다.
결론을 내지 못하고 며칠 후, 얼굴도 몇 번 뵌 적 없는 이사님의 호출이 있었다.
나에게는 마주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높은 분이었고 종종 우리 부서에 와서 쓴소리를 내뱉고 가시던 분이었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매형인 사장님을 뒷배로 두고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저런 말을 듣게 됐다.
내가 설치는 거구나... 설쳐...
나 같은 사람은 대학에 가려는 자체가 설치는 거구나...
이렇게나 하찮은 취급을 받는구나.
나의 멘털은 엄청난 무게로 짓눌렀다.
기획실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벌써 사회의 쓴맛을 보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랬다.
회사에서 학교 측에 취업 올 학생의 추천을 의뢰하면서 약속한 것이 있었단다.
컴퓨터그래픽 실습실에 최신 매킨토시 컴퓨터를 몇 대 들여놓기로 한 것.
그만큼 우수한 학생으로 보내달라는 의미였고, 그만큼의 투자였다.
나와 남학생 한 명이 학교 측 추천으로 입사했다.
그런데 둘 다 대학을 가겠다고 하니, 회사 측에도 난감한 상황이긴 했을 것이다.
그래서 덧붙인 이사님의 말도 '너네 학교에 돈이 얼마나 들어간 줄 아느냐'였다.
투자한 회사입장에서는 아주 낭패일 것이다.
학교에 들어간 돈은 그대로 날린 셈이고, 기껏 몇 달간 가르쳐 놓은 아이들은 대학을 간다고 하니 화가 날 만도 하다.
그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안타깝기도 하고.
그런데 나는 의문이 든다.
미성년자, 아무것도 모른 채 취업에 나선 아이들을 두고 어째서 학교와 회사가 거래를 했을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면 과연 내가 취업 제안을 들었을 때 수락했을까?
인질이 되어 회사에 들어가는 그 상황을?
물론 취업 알선은 고마운 일이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당장 많은 변화를 준다.
월급으로 생활비를 보태고 살아갈 희망을 준다.
하지만 아이들을 인질로 이런 거래를 하다니, 굉장히 잘못된 일이다.
나쁜 놈들...
19살, 아직 성숙하지 못했던 나는 불편한 진실 속에서 또다시 생채기가 나고 있었다.
이사님이 저렇게 말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너무너무 미안해하고 있었다.
취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말을 바꾼 것은 나니까.
하나하나 가르쳐준 부서 선배들한테도 미안했다.
또다시 누군가를 가르쳐야 하니까.
그런데 이사님의 비인격적인 발언과 그들의 거래는 미안함을 분노로 바꿔버렸다.
이미 저런 말을 뱉은 순간부터 한 시간 일찍 퇴근이라는 나의 제안은 날아가 버린 지 오래겠지.
나는 그대로 퇴사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거래처에 입사를 했다.
내가 일하는 모습을 눈여겨보던 거래처 직원의 추천이었다.
그곳에서는 한 시간 일찍 퇴근을 허락해 주셨다.
물론 입사하지 않고 남들처럼 주간수업을 받을 수도 있었다.
높은 내신 성적으로 첫 등록금도 면제받았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된다.
엄마 아빠의 무거운 어깨를 조금이나마 덜어드릴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야간대학과 직장생활을 병행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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