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다, 학교.
내가 없는 동안에도 학교는 그대로구나.
3학년 여름방학, 취업에 나갔던 나는 졸업식날에서야 학교에 왔다.
인쇄 편집 프로그램을 익히고 회사의 일정을 쫓아가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는데...
나, 아직 고등학생이었구나.
그날은 학생이면서 직장인이었던 이상한 나의 신분을 졸업하는 날이기도 했다.
나보다 먼 지역에 취업을 나간 아이들은 거리 때문인지 졸업식에 오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까...?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졸업식날 학교의 풍경이.
아마도 사방으로 흩어졌던, 또는 학교에 남아있던 아이들이 다시 모였겠지.
이날은 학교의 풍경보다 졸업이라는 의식이 주는 해방감을 만끽한 것만 기억이 난다.
친구와 함께 미용실에 달려가 생에 처음 펌을 했다.
세팅 펌이었는데 탱글탱글 구불거리는 머리를 하고 북적거리는 시내 거리를 걸었더랬다.
금은방에 가서 귀도 뚫었다.
겁내면 더 아프다는 말에 일부러 딴생각에 집중했다.
두 손에 땀을 쥔 채 기다리면 사장님이 순식간에 뚫어주셨다.
진열대에 있는 귀걸이 중 제일 심플한 귀걸이를 골랐다.
졸업은 해방이었다.
이제 교칙은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숙제 따위는 없는,
그리고 울타리가 없는...
바깥세상으로 나오는 날.
졸업을 하고, 나는 야간 전문대학에 진학했다.
아침 9시부터 오추 5시까지 인쇄골목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오추 6시부터 밤 9시 반 무렵까지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다.
젊음이 최고라던가, 나의 체력은 그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종종 새벽까지 대학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대학에 와서 수업을 들어보니 알 수 있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디자인 수업이 전문대 수준의 교육이었다는 것을.
대학 강의에서는 딱히 배울 것이 많지 않았다.
이미 내가 배운 부분이거나 회사에서 작업하면서 배운 것이 많았다.
그냥 졸업장을 가져간다는 의미로 다녔던 것 같다.
같은 대학에 진학한 친구도 몇 명 있었는데 한 여학생은 나와 같은 산업디자인학부를 나와 웹디자이너가 되었고, 남학생 하나는 애니메이션을 전공해 나중에 꽤 유명인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 유명인사가 내게 책을 빌려주던 사고뭉치 싸움꾼 남학생이다('20. 편견을 깬 독서, 양파의 음악과 함께' 참고).
그 아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회사에 입사해 해외에서 수많은 부하직원을 거느린 팀장으로 활약했다고 한다.
사람일은 정말 모른다는 게 사고 치고 싸움꾼에 공부도 안 하던 그 아이가 그렇게 성공했다는 건 놀라운 대반전이었다.
문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 풍부한 독서량이 밑거름이 되었을 거라고 나는 짐작했다.
졸업 후 가끔 친구들과 연락을 해보면 전공을 살려 시각디자이너나 실내건축디자이너가 된 아이들도 여럿 있었지만,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경우도 꽤 많았다.
요식업으로 전향한 아이, 미용실에 취업한 아이, 부모님의 사업을 물려받은 아이도 있는가 하면 취업 나간 대기업에 몇 년 더 눌러앉은 아이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입시 학원에 다니지도 않은 내가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곳으로 취업해서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 감사한 일이었다.
이렇게라도 내 꿈에 가까이 있는 것이 좋았다.
이렇게라도 나는 디자이너가 되어가고 있었다.
교환일기를 쓰던 너는 안타깝게도, 한종 입시에 실패하고 4년제 국립대학 공예과에 입학했다.
너는 입시를 치르며 다니던 화실에 전설을 하나 남겼다고 한다.
수능 점수가 입학 불가능 수준으로 낮은데 실기시험을 너무 잘 봐서 그 대학에 입학했다는...
3년간 달려온 너의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구나.
고생했어.
정말로.
3년이라는 시간...
가만히 뒤돌아본다.
이제 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
이른 아침 교복을 입고 복잡한 버스에 탈 필요도 없고, 복도 가득한 담배연기를 맡을 일도 없다.
북적대던 교실에서 수업받을 일도 없고 과제를 잘했다고 칭찬받아 뿌듯할 일도 없다.
친구들과 환경미화를 준비하며 늦게까지 교실에 남을 일도 없고, 장난치는 남자애들과 쫓아가는 여자애들을 볼 수도 없다.
뛰어놀고, 울고 웃고, 희열을 느끼고 절망하고.
사회에 나가 바사삭 깨지며 더욱 그리워했던 나의 친구들.
마냥 아껴주고 즐거워했던 그 시간들.
사랑해 마지않던 나의 고등학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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