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저승 버스

연결

by 윙글

이른 새벽, 저승 버스의 고요함을 깨트린 것은 갑작스럽게 울린 버스의 배기음이었다.

푸쉬이이익.

버스가 또다시 정차했다.


"뭔 일이여? 왜 섰대?"

"또 고장이여?"

고개를 들고 웅성대는 망자들.


"앞에 다른 버스 한 대가 서 있어서 잠시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현미가 일어나 버스 밖으로 나섰다.


망자들에게는 알아보고 오겠다고 안내했지만, 현미는 대충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엔진룸 덮개가 열린 채 서있는 버스.

그 옆에 서있는 차사와 운전사.

익숙한 장면이 아닌가.


우리 버스가 고장이 났다면 다른 버스도 그럴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저승버스는 오래전 한꺼번에 교체했었고 이제 슬슬 잔고장이 시작될 시기일 것이다.


불안한 예감은 현실로 드러나 있었다.

앞에 서있던 버스는 7번 버스.

고장난지 벌써 3일째가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망자들이 버스에서 내려 지박령이 되지 않기 위해 억지 산책을 하고 있는 안쓰러운 상황이었다.


"저기... 김윤식 씨?"

불안한 예감은 윤식도 느끼고 있었다.

시내버스 회사도 보통 한 번에 여러 대의 버스를 새로 구입했었다.

연식이 비슷한 버스들은 비슷한 시기에 잔고장이 시작된다.

느릿하게 고개를 드는 윤식.

마주한 그녀의 얼굴에는 영업용 미소가 걸려있었다.


"이번 한 번만..., 더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윤식의 시선은 손가락 하나를 받쳐 들고 물어오는 현미의 얼굴을 보고 있었지만 신경은 온통 뒤통수에 가 있었다.

돌아보지 않아도 날아드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어차피 할 거 욕먹지 말고 이번에는 그냥 일어나야겠지.

"갑시다."

끙차, 자리에서 일어난 윤식은 제 직업을 원망했다.


"정비사는 불렀제?"

"진작 불렀죠."

"잘했네! 한 4일 기다리믄 오겄구마."

태주가 7번 버스 운전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사이 도착한 윤식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거그 정비사가 뭣이 필요한지 어떻게 알고 가지고 온다요? 여그 와서 봐보고 뭐라도 할라 했겄제."

정곡을 찌르는 그의 말에 태주와 현미, 7번 버스 운전사와 차사의 시선이 교차했다.


"오메! 그네이!"

"그러니까 윤식아저씨가 봐주시면 되겠네요."

현미는 어느새, 윤식을 부르는 호칭이 바뀌어 있었다.

웃고 있는 현미의 얼굴에 뭐라 할 수도 없고...


정비사가 무슨 하느님 부처님도 아니고, 부품도 도구도 하나 없는 상황인데 어쩌라는 말인지...

그렇다고 무조건 안된다고 하자니 망자들의 눈빛이 무섭다.


엠병...

어차피 봐주기로 한 거, 윤식은 일단 7번 버스 운전사에게 버스를 세운 이유를 물었다.


"아니, 엔진경고등에 불이 들어오드만, 오르막길 들어성게 차가 올라기지를 못 허드라고."

"엔진경고등이 켜졌다고요? 깔끄막 못 올라가고?"

"예. 출력이 안 나오길래 그냥 세웠브렀죠."

"장갑 좀 주실라요."

그는 운전사에게 받은 장갑에 손을 끼워 넣고 엔진룸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여기 필터에 오일 묻어 나옹거 봉게 나막까스 필터가 문제 구마. 새 필터로 바꿔야 한디?"

눈을 끔뻑이는 현미를 보니 무슨 소린지 전혀 이해를 못 한 눈치다.

"이보시오, 차사 양반. 새 부품으로 바꿔야 한당게요! 부품 없으믄 정비사가 아니라 정비사 할애비가 와도 못 고쳐."

"아니, 지금 여기서 어떻게 부품을..."


난감해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윤식도 말문이 막힌다.

'내 말이 그 말 아니냐...'

하지만 눈꼬리가 축 처진 그 얼굴에 뭐라 더 따지기도 뭣하다.


윤식은 때마침 산책길에서 속속 돌아오는 망자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3일을 산책했다고 들었다.

그들의 걸음은 모래주머니를 달고 있는 것처럼 묵직해 보였다.


"지금이라도 연락해서 필터 가지고 오라고 해야겠네요. 근데... 이제 다시 출발하면 또 일주일은 걸릴 텐데..."

7번 버스 운전사와 차사의 어깨가 축축 처지는 것을 시작으로 뒤에 서있던 승객들의 어깨도 도미노처럼 처지기 시작했다.


"엄마, 우리 이제 그만 걸어요?"

7번 버스 승객 중에는 어린 여자아이와 엄마도 포함돼 있었다.


'아이고... 어쩌다가...'

하나 있는 어린 승객은 망자들의 안타까운 눈빛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얼핏 봐도 5살 남짓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였다.


'짠하네, 이 쬐깐한 것이... 근디 솔찬히 귀엽게 생겼네... 눈이 왕방울만 해갖고 꼭 우리 손주 딸 같네.'

윤식은 어린아이를 보기만 해도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금 있는 곳이 아이에게 결코 좋은 곳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아이가 뿜어내는 사랑스러움은 저승이라고 해서 사라지지 않았다.


"어? 아니... 쪼끔 더 걸어야 할 것 같아."

"또요? 우리 세 밤 걸었잖아요. 그럼 이제 몇 밤 걸어요?"

"음... 이제..."


윤식은 말꼬리가 늘어지는 아이엄마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니, 안 걸어도 돼. 이 할아버지가 이제 안 걸어도 되게 해 줄랑게 쪼끔만 기다려라잉."

그는 눈이 큰 여자아이에게 장담을 해버렸다.

저렇게 작고 어린아이가 일주일 넘게 어두운 시골길을 걷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저씨...?"

윤식의 말에 현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버스 고치기 싫다고 하시지 않았었나...

그의 눈은 이 버스를 고치고 말겠다는 의지로 가득해 보였다.


"버스 두 대 앞뒤로 붙여븝시다!"

윤식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버스를 붙이자고요?"

"시내에서는 교통법에 걸릴지 몰라도 여기는 그런 거 없제라?"

"그렇긴 하죠..."

"글믄 나 좀 도와주쇼. 7번 버스를 우리 버스 뒤에다 이서 갖고 끌고 가믄 되제."

"아! 버스를 연결하면 되는구나! 그 생각은 못해봤네요."

"드물긴 한디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여. 박 씨, 거 버스 좀 최대한 7번 버스 앞 대가리에 붙여 주시요."


태주가 버스를 나란히 정차하고 현미와 함께 두 버스에 고리를 걸어 연결했다.

튼튼하게 연결되었는지 확인한 윤식이 태주에게 손짓을 했다.

출발하라는 신호다.


부릉, 부우우우웅.

7번 버스는 1번 버스에 매달린 캠핑카처럼 잘 따라갔다.


"우와, 엄마 기차! 기차!"

아이의 감탄사를 시작으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짝짝짝짝짝.

"와아아아!"


더 이상 억지 산책은 없다.

모두 삼도천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아따, 정비사 양반 대단하구마잉."

"버스 두 대를 살려브네."

"덕분에 시골길 그만 걸어도 되겠어요.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박수와 감사 인사에 윤식의 마음이 쿵, 울리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에 자동차 정비는 늘 해야만 하는 당연한 일이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가방끈도 짧은 놈이 남들 학교 다닐 때부터 배운 기술이 이것뿐이라 다른 일은 꿈도 못 꿨다.

날마다 버스를 고치고 쏟아질 듯 아픈 어깨를 참아내어도 박수는커녕 누구 하나 칭찬하는 사람은 없었다.

남보다 작은 체구로 남보다 두배는 뛰어야 겨우 내 몫을 해낼 수 있었다.


남들에게 무시당하면서도 해야만 하는 일.

몸이 부서질 것처럼 힘들어도 하소연할 곳 없는 일.

월급을 받으려면 뜨거운 버스와 더 뜨거운 아스팔트 사이에서 땀으로 목욕을 해도 참고 해야만 하는 일.

그저 먹고살기 위해, 아이들을 키우려고 죽을힘을 다해 정신력으로 버텼다.


승객들의 웃는 얼굴에 윤식의 눈앞이 뿌예졌다.

"아이고, 눈에 뭣이 들어가븟네..."

장갑을 벗고 눈가를 훔치며 돌아서는 윤식을 현미는 모른 척해 주었다.

"이제 각자 타시던 버스에 탑승하세요.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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