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
'이 양반이 뭐라고 하는 거여?'
윤식은 크게 뜬 눈으로 현미를 마주 보았다.
현미는 한숨을 푹 쉬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저승버스가 고장이 났습니다. 이런 일은 저희도 처음이라... 아무리 들여다봐도 모르겠어요."
현미의 시선이 팔뚝에 묻은 시커먼 기름때로 향했다.
"그래서 어떡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망자분들 생전 이력 중에 마침 버스정비사 한분이 있지 뭐예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윤식을 바라보는 현미의 목소리는 간절함이 더해져 점점 커지고 있었다.
"저승버스는 이승의 버스와 같은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고 들었어요. 딱 한 가지, 연료만 이승의 버스와 다르다고 하네요. 지금 여기서 버스를 고칠 수 있는 정비사는 김윤식 씨 하나뿐입니다. 제발 부탁드려요!"
"나보고 또 버스를 고치라고라? 어휴... 이 놈의 버스 밑에서 30년을 넘게 일했는디 죽어서까지 하라고?"
고개를 젓는 윤식. 이 지긋지긋한 버스 바닥은 쳐다도 보기 싫었다.
"이 버스를 고치지 않으면 우리 모두 삼도천으로 갈 수가 없어요.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하는 현미의 눈은 초롱초롱을 넘어 아련해지고 있었다.
"원래 저승 버스 고치는 정비사 있을 것 아니요? 그 사람들 부르믄 쓰것구만!"
"하아... 그 방법이 가능하면 제가 왜 이러고 있겠어요... 그분들은 삼도천에 계시고 준비해서 여기까지 오는데 1주일은 넘게 걸릴 텐데, 그럼 저희는 단체로 이 산의 지박령이 될 판이라고요."
귀신이 한 곳에 머물면 지박령이라고 부른다던가...
"다음 버스는 안 오요? 시내버스는 길에서 고장나블믄 다음 버스가 승객 태우고 가던디..."
"다음 버스요? 이건 시내버스가 아니에요... 버스마다 다른길로 가는데다가 이길로 지나가는 버스는 제가 알기로 5일은 지나야 온다고요! 그리고... 정비사분이 계시는데 고칠 수 있으면 고쳐서 가는 게 가장 빠른 길이잖아요. 제발... 부탁드려요."
사정은 딱하지만 내가 그 책임을 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 잘못도 아닌데...
"... 아니, 나는 못 허요, 못해. 안 할라요."
창밖으로 시선을 둔 윤식은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채 했다.
"거, 젊은 양반이 박허네."
젊은 양반?
말소리를 따라 뒤를 돌아본 윤식은 90은 넘어 보이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차사 아가씨가 저렇게 부탁한디 좀 들어주믄 안 됭가? 안 고치믄 못 간다 안 허요?"
옆에 있던 80대 할아버지도 거들었다.
"그래! 하루 종일 고치라는 것도 아니고 이거 한번 고치는데 뭐 얼마나 걸린다고 그래! 다 같이 여기 지박령 될 거여?"
어르신들의 압박에 윤식은 말문이 막혔다.
윤식을 쏘아보는 다른 승객들의 눈빛을 보니 그들의 의견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엠병...'
윤식은 살아생전 언제나 좋은 사람이었다.
사회에 나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의와 도리가 있는 사람.
늘 친절한 이웃, 좋은 친구, 마음 넓은 동료였다.
이제 홀가분하게 그 가면을 벗으려나 싶었는데, 이 놈의 차사 아가씨 때문에, 이 놈의 고장 난 버스 때문에 다 망했다.
윤식은 입고리를 끌어올려 사람 좋은 미소를 장착하고 고개를 슬며시 내밀었다.
눈가에 자리 잡은 주름이 접히는 눈과 함께 휘어졌다.
"아따 어르신, 제가 투정 한번 부려브렀습니다. 평생 기름밥 먹고살았는디 첨부터 막 하고 싶당가요. 어린놈 투정 좀 이해해 주셔."
이 나이에 어린놈이라고 자칭한 그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뭣이 문제요? 일단 갑시다!"
윤식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현미와 함께 버스에서 내렸다.
"태주아저씨 말씀으로는 속도도 잘 안 나고 경고등 하나에 불이 들어왔었대요..."
현미의 설명을 들으며 걸어가던 윤식은 버스 뒤에 서있는 운전사 태주와 마주했다.
"고생하십니다. 인사가 늦었네요. 김윤식이라고 합니다."
"예, 박태주라고 합니다."
운전사와 악수를 나눈 후 엔진룸을 살펴보았다.
'뭔 놈의 저승 버스가 사람 타는 버스랑 똑같네이...'
평생 기름밥으로 살아온 윤식에게 차량 정비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이 짓을 죽어서 다시 할 줄은 몰랐을 뿐.
"냉각수 경고등에 불 들어온 것 보고 멈췄는디 어디서 새는지도 모르것고 답답허요..."
태주의 말을 듣고 윤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화장실이라도 가서 수돗물 좀 받아오시요."
"수돗물은 지난번에도 보충해 줬당게요. 망자들 태우기 전에도 경고등에 불 들어오길래 보충해 줬는디 새는 데를 못 찾응게 또 이라고 부족해브요."
"새는 데는 내가 찾을 랑게 수돗물 좀 떠다 주쇼."
"찾을 수 있것소? 아따, 그라믄 떠와야제!"
"아뇨 아저씨, 제가 떠올게요."
다행히 이제 막 도심을 벗어난 터라 공중화장실이 멀지 않았다.
현미가 자청해서 수돗물을 뜨러 간 사이 윤식은 부품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금이 간 튜브를 찾았다.
숨어있는 누수 위치를 찾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교체할 튜브가 없으니 임시방편으로 테이프를 감았다.
'어떻게든 도착만 하게 해 주믄 거그서 해결하것지.'
그사이 현미가 수돗물을 가지고 돌아왔다.
"아니...!"
그녀의 양손에는 물이 가득찬 20리터짜리 말통이 각각 들려있었다.
"버스가 살수차도 아니고 뭣을 그렇게 많이 떠왔다요?"
"하하하... 얼마나 필요할지 몰라서..."
"몰라서가 아니라, 그 무거운 것을 여자 혼자 들고 왔다니까 놀래서 안 그요."
"아, 원래 차사들은 힘이 좀 세요. 아저씨 몸에서 영혼 떼 낼 때 기억 안 나세요?"
"그것이 힘으로 하는 거였어?"
"네! 그런데 어디다 부으면 돼요?"
눈을 빛내는 이 순박한 차사를 그냥 두면 엔진룸이 물바다가 될 판이었다.
"쪼끔...... 덜어서 부읍시다."
그녀가 가져온 물의 10분의 1만 덜어서 냉각수 탱크에 보충했다.
"고생하셨어요."
"물 떠온 사람이 고생했제. 차사 양반 고생했소. 그러고 봉께 이름이 뭐시요?"
"아, 저 송현미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수돗물을 부어도 되는 건가요?"
"원래는 냉각수가 따로 있는디 지금 여기서 구할 수도 없고, 이대로 가믄 폭발해브니까 일단 이렇게 가고 나중에 교체하믄 돼요."
"포... 폭발이요? 버스가 폭발한다고요?"
"그럴 수도 있다고요. 안 그렇게 만들어놨응게 걱정 말고."
태주는 얼른 시운전을 해보겠다고 버스에 올랐다.
부릉! 부우우우웅.
버스는 힘 있게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냉각수 경고등도 꺼져 있었다.
"아따 한방에 해결해블구마이. 얼른 타시요!"
환하게 웃는 태주의 얼굴을 본 윤식은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30년 넘게 기름밥 먹었다드마 다르긴 다르요잉."
"아따, 전문가니까 다르것제! 덕분에 지박령은 안 되것네요. 고생하셨소."
면박을 주던 어르신들이 이제는 윤식의 노고를 치하해 주기 바빴다.
"아따, 평생 밥 먹고 한 짓이 이 짓거린디, 이것도 못하믄 쓴다요..."
윤식은 별것 아니라는 듯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저 누수된 곳 하나 찾았을 뿐인데 오랜만에 듣는 칭찬세례에 입꼬리는 내려올 줄 몰랐다.
다시 조용히 달리는 저승버스는 산길을 올랐다가 넓게 펼쳐진 풀밭 사이를 달리기 시작했다.
달빛이 비치는 조용한 시골길은 윤식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고향생각나네...'
어릴 때 깨복쟁이 친구들과 모닥불에 고구마를 굽다 코가 검게 그을린 일을 떠올린 윤식은 혼자 피식 웃었다.
그뿐이던가, 봄에는 꽃을 꺽어 꿀을 쪽쪽 빨면서 산길을 오르고, 여름에는 형들을 따라 홀딱 벗고 개울물에 뛰어들었더랬다.
짧디 짧은 어린 시절이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술을 배워야 먹고 산다고 도시로 올라와 버렸으니...
그렇게 삼도천으로 가는 버스안은 누구나 생각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고요한 저승버스는 승객들의 상념들을 흩날리며 하룻밤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