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윤식은 코끝을 훔치며 버스에 오르는 승객들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가 타고 온 버스 승객 중에도 어린아이가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의 곁에 부모는 없었다.
"차사 양반, 우리 버스에 애도 있었소?"
"네? 아, 네. 아이 하나 있었어요."
"오메... 혼자 어떻게 타고 왔을까...?"
"그러게요... 너무 조용해서 저도 잊고 있었네요..."
"그러믄... 혹시 부탁하나 하믄 안되까?"
"부탁이요?"
"아까 7번 버스에 있는 애 엄마한테 한번 물어봐가꼬 괜찮하다고 하믄 그 애엄마랑 딸내미랑 우리 버스로 델꼬 오믄 어떠요? 내 자리 내줄랑게."
"좋은 생각이네요! 그런데... 저 아이를 7번 버스로 보내는 게 낫지 않나요? 자리도 그렇고..."
"에헤이... 애가 기껏 적응해논 버스를 또 나가라고 하믄 짠허잖어. 저기는 그래도 엄마랑 있응게 괜찮제..."
"아...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한번 물어볼게요!"
총총 달려가는 현미를 보면서 윤식은 짐작했다.
아이 엄마는 허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애 키우는 부모가 혼자 있는 어린아이를 모른척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의 예상대로 손을 꼭 잡은 모녀는 윤식의 버스에 올라탔다.
이제 1번 버스에는 아이가 둘이다.
혼자 있던 아이는 8살, 이름은 지아였고 엄마와 함께 있던 아이는 5살, 이름은 하율이었다.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예쁘장한 지아는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오랫동안 소아암으로 투병하다 저승버스를 탔다고 했다.
차분하게 설명하는 아이의 얼굴은 담담하기만 했다.
어린 나이에 많은 것을 알아버린 아이는 이미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어른들의 마음은 아려왔다.
하율이는 언니를 만나 수다가 많아졌다.
"언니, 언니 그거 뭐야?"
지아의 손에 들린 풀들을 보며 물었다.
"응, 이거 반지..."
"반지? 그거 반지 아닌데...? 풀인데?"
"지금은 풀이지만 이렇게 하면..."
지아는 하율이의 통통한 손가락에 꽃반지를 만들어 매듭을 지었다.
"우와! 엄마, 엄마, 언니는 이런 것도 만들 수 있대!"
신이 난 하율이를 보며 지아도 엄마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지아는 하율이의 손목에 팔찌도 만들어 주었다.
하율이 엄마는 지아에게 반지와 팔찌를 만들어주었다.
두 아이의 손을 나란히 놓고 보니 영락없는 고사리손이다.
윤식은 아이들의 오밀조밀한 손을 보다 두 딸들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퇴근하고 돌아온 저녁, 딱 저만한 나이의 딸내미들이 엄마 옆에 웅크리고 앉아 다라이에 산더미처럼 담긴 도라지를 작은 손으로 벗기고 있었더랬다.
도라지를 한포대씩 가져와 껍질을 벗기고 가늘게 잘라 다시 가져다 주는 것은 집사람이 종종 집에서 하는 부업이었다.
"아따 고사리손으로 뭣을 그렇게 까냐?"
딸아이의 손이 어찌나 귀여운지 절로 고사리손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사실, 두 딸들이 막 태어났을 때에는 병실에 올라가 보지도 않았더랬다.
딸이라는 말에 굳이 산모들 있는 병실에 남자가 들어갈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았다.
아들을 기다리던 마음에 서운한 것도 사실이었다.
셋째를 낳자마자 아들이라는 소식에 처음으로 산모 병실에 들어갔다.
힘없이 지쳐 누워있는 집사람의 손을 잡고 '고생했다...!' 토닥거렸다.
젖이 잘 나오라고 보약도 해 먹였다.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 우리 부부가 해야 할 큰 숙제를 한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아들에게 치우친 기다림이었지만, 막상 키울 때에는 어느 하나 이쁘지 않은 놈이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무너질 것 같은 어깨도 반겨주는 아이들이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것 같았다.
세 아이는, 내가 죽을 만큼 힘이 들어도 버텨내야만 하는 이유였다.
그렇지만 그때는 먹고사는데 급급해 아이들과 함께 보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때의 아이들 손을 한 번이라도 잡아 보고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손이 뻗어나갔다.
그 순간 아이들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어느새 키가 훌쩍 자란 자식들의 눈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살갑지 않았던 시간만큼 아이들과는 멀어져 있었다.
그렇게 금방 지나가 버릴 줄 몰랐다. 그렇게 멀어져 버릴 줄도 몰랐다.
마지막에는... 자식들과 데면데면한 채로 생을 마감해 버렸다.
고사리손으로 떠올린 자식들 생각은 결국 씁쓸함만 남겼다.
지아와 하율이는 풀 몇 개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었다.
하율이의 엄마는 아이들이 놀기 좋게 버스 바닥을 한번 닦아 주고 아이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여러 가지 놀이를 했다.
지켜보는 어른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재잘대는 아이들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때만큼은, 저승버스가 아니었다.
구름사이로 환하게 뜬 햇살이 기차처럼 연결된 버스 두대를 비춰주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두 버스는 함께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아이 엄마의 목소리가 조곤조곤 들려오기 시작했다.
"반지, 반지는 바에 니은 받침을 하면..."
"... 이렇게?"
"응! 그리고 이건 지읒인데..."
승객들은 아이를 가르치는 그녀의 목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아무도 그것을 제지하거나 방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마음속으로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미...
저승으로 가는 길인데, 지금 가르치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학교에 갈 것도 아닌데...
궁금증을 참지 못한 한 아주머니가 물었다.
"애기엄마, 이미 죽…, 아니 거시기 했는디 지금 갈쳐서 뭣 헌다요?"
그녀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답했다.
"가르치는 동안에는... 저는 엄마고 아이는 자식일 수가 있잖아요. 망자가 아니라."
승객들은 모두 말문이 막혔다.
아이 엄마의 애잔한 마음이 묵직하게 전해졌다.
아무 쓸모없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두 사람의 존재감을 바로 세워주었다.
흔들리지 않도록, 무너지지 않도록 두 사람을 붙잡아 주고 있었다.
"... 엄마, 망자가 뭐야?"
"응, 이 버스를 타고 삼도천이라는 곳으로 가는 사람들을 망자라고 해."
"삼도천이 뭐야?"
"응, 삼도천은... 또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경계선이야."
"경... 계선?"
끝없이 이어지는 아이의 질문에 엄마의 대답이 이어졌다.
아이를 안심시키려 애쓰는 엄마처럼 승객들도 스스로를 다독였다.
쓸모없는 생각이나 행동이라 할지라도, 나를 안심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쓸모가 충분했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버스에서 망자들은 각자 나름대로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처음 겪어보는 죽음의 여정은 누구나 두려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무거운 버스 안의 공기처럼 자욱하게 깔린 안개를 뚫고 주행은 계속되었다.
어둡고 생경한 공간을 달린 끝에 드디어, 저물어가는 태양빛을 반사하는 커다란 물줄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우우웅 쉬익.
버스가 정차하자 저승 차사 현미를 시작으로 승객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윤식도 버스에서 내렸다.
삼도천이구나.
윤식은 귓가에 울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