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삼도천 통제소 한쪽에 있는 정비소 안.
끼이이익.
육중한 나무문이 열리고 윤식과 직원이 안으로 들어섰다.
검은 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건물은 내부도 별다른 미장을 하지 않아 어둡고 묵직한 느낌을 주었다.
다만 천장이 뚫려있어 미약하나마 개방감이 들고, 촘촘한 선반에는 갖가지 부품과 정비 도구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소장님, 김윤식 씨 왔습니다."
소장이라고 불린 남자는 윤식과 비슷한 체형의 왜소한 중년 남자였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그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윤식을 맞았다.
정비사를 구하기 힘들다고 하던 수문장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닌 듯하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는 따뜻한 말과 함께 이제부터 윤식이 알아야 할 것들을 차분히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이게 있어야 정비사 인식을 해서 버스 운전도 가능하고 연락도 할 수 있어요."
가장 먼저 사원증처럼 생긴 목걸이를 윤식에게 걸어주었다.
윤식이 몰고갈 정비용 소형 버스와 필요한 부품들, 정비소와 연락할 수 있는 무전박스까지, 꼼꼼하게 알려준 그는 마지막으로 갈아입을 옷을 건네주었다.
"아무리 망자라지만, 환자복을 입고 정비할 수는 없잖아요?"
윤식의 등을 두드리며 웃는 소장의 주름진 얼굴은 마치 어린 손자를 보는 듯 흐뭇한 얼굴이었다.
"아저씨! 윤식아저씨!"
정비소를 뚫고 들어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두 사람은 유리 없는 아치형 창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창 밖에는 현미가 큰 소리로 윤식을 부르고 있었다.
"아저씨! 파이팅! 나중에 또 봬요!"
그녀는 윤식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래, 저 차사아가씨가 이리 만들었지.
이 모든 일의 화근!
"뭣허러 또 봐? 바쁜디 얼른 가!"
씨익 웃은 현미가 총총걸음으로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현미와 인사를 나눈 후 윤식은 바빠졌다.
정비소 직원들과 함께 밤새도록 미니버스 한 대를 개조해 수납공간을 만들고 차량 정비에 필요한 각종 기계와 부품, 오일 등을 실었다.
준비를 마친 미니버스 안, 윤식은 회색 작업복을 입고 운전석에 앉았다.
오랜만에 잡은 핸들의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
아직 실감은 나지 않았다.
얼떨결에 정비사일을 받아들여 버렸지만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으면 그냥 얌전히 삼도천 다리나 건널 것이지 괜한 짓 한 거 아닌가 싶었다.
그는 괜히 버스를 한번 더 둘러본 후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어슴푸레 밝아오는 햇살을 받으며 윤식의 정비 버스가 출발했다.
그가 출발한 지 두어 시간이 흘렀다.
윤식은 모처럼 느릿한 드라이브를 즐겼다.
곧게 뻗은 저승길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이어져 있었다.
막상 출장 정비사 일을 시작하고 보니 하루 종일 쫓기듯 일만 하던 때와는 달랐다.
혼자서 작은 버스를 몰고 고요한 시골길을 느긋하게 달리고 있자니 이것도 나쁘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아쉬운 것이 하나 있었으니...
'이럴 때 현인 노래를 틀어놔야쓴디... 노래 테이프가 없네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였다.
다급하게 출장 정비사를 찾는 연락이 왔다.
"치직... 칙... 김 씨, 김 씨, 들리십니까?"
무전 상자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소장에게 배운 대로 빨간색 버튼을 누르고 대답했다.
"에, 들립니다. 말씀하십시오."
"고장 난 버스 한 대있습... 칙... 보리밭 지나 첫 번째 언덕 넘어... 칙... 갈림길에서 오른쪽에 서있을 거예요. 번호는 20번입니다. 부탁합니다. 이상... 치직..."
"알겠습니다. 이상."
조금 더 여유를 즐기고 싶었지만, 이내 고장 난 버스를 찾아 부랴부랴 달렸다.
또 어디에선가 불쌍한 승객들이 지박령 방지 산책을 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언덕을 넘어 갈림길을 지나자마자 정차해 있는 20번 버스와 승객들이 보였다.
이미 이틀 동안 그 자리에 멈춰 있던 터라 길어진 억지 산책에 승객들은 지쳐있었고, 너도 나도 정비 버스를 반겨 주었다.
딱 한 사람만 빼고.
"하아... 정비사가 너무 늦게 오시네. 여기 다 기다리느라 지친 것 좀 보세요."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는 큰 키에 어깨도 넓어 존재감이 제법 있는 망자였다.
도착하자마자 들리는 불친절한 말에 윤식은 멈춰 섰다.
'이 놈 봐라?'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운전사와 차사가 잽싸게 다가와 윤식과 악수를 나누며 주위를 분산시켰다.
"핸들이 겁나게 빡빡하드만 어디서 쇠 갈리는 소리까지 나드라고요."
"... 파워오일이 새는 것 같은디 일단 좀 봅시다."
그들은 덩치 큰 남자를 외면한 채 엔진룸으로 향했다.
"무전 연락했을 때 오일만 가지고 바로 오셨으면 될 텐데 이렇게 오래 걸린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어느새 엔진룸 옆으로 다가온 남자의 노골적인 불만에 윤식은 고개를 들었다.
"오일만 가져오믄 된다고 누가 글등가요?"
"아, 당연히 오일 새는 것도 고쳐야겠죠. 그러니까 더 빨리 오셨어야 하고."
"내가 지금 어서 온지 알고 하는 소리요?"
"그거야..."
두 사람의 대화를 보던 차사와 운전사는 안 되겠는지 덩치 큰 남자를 양쪽에서 붙잡아 질질 끌고 갔다.
"뭐야? 이거 놔!"
남자는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차사와 운전사의 힘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내가 못할 말 했어? 뭐 얼마나 대단한 일한다고 이렇게 늦어서 기다리게 해?"
끌려가면서도 남자의 입은 쉬지 않았다.
오늘 막 출장 정비를 시작한 윤식에게 이곳 상황도 모르면서 보자마자 늦었다는 불만을 늘어놓는 이 순박한 망자를 때릴 수도 없고...
차사와 운전사는 남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한쪽에 고이 묶어두었다.
끌려가는 남자를 보며 한숨을 한번 내쉰 윤식은 버스 밑으로 들어갔다.
찢어진 튜브를 교체하고 버스 밑에서 빠져나와 오일을 보충했다.
시운전을 해본 운전사가 만족스럽다는 사인을 보냈다.
다시 출발할 수 있게 된 승객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한 사람만 빼고.
손발이 풀려난 남자는 윤식이 정비를 하는 사이 무슨 설명을 들었는지 군말 없이 꾸벅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특별한 사과의 말은 없었지만 윤식도 목인사를 했다.
어렵지 않게 첫 출장 정비를 마쳤다.
그런데 여기서도 입이 야무진 놈들이 있구나.
하긴, 그 놈들도 죽어서 오는 곳이니 당연한 일인가...
윤식은 멀어져 가는 그들을 바라보다 정비 버스에 올랐다.
유압잭을 치우고 교체한 튜브를 수거함에 집어넣다가 문득, 찢어진 튜브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찢어진 채 버려지는 튜브가, 다 쓰고 낡아빠진 이 모습이 참 익숙하다.
보이지도 않는 버스 밑에서 뜨거운 열기를 참으며 쓸모를 다 한 튜브가 나와 다를 게 무엇인가.
손끝 발끝 관절까지 휘어지도록 일을 했건만 그 끝은 허망함 뿐이었다.
해고는 아니었다. 정년을 다 채우고 맞이한 퇴직이었다.
지긋지긋한 정비를 안 해도 되니 속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하루아침에 더 이상 출근할 곳이 없다는 것은 가슴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바람이 휑하니 지나다니는 느낌이었다.
윤식은 밀려드는 헛헛함을 잊으려 더 보기 좋게 물건들을 정리했다.
한참만에 운전석에 앉은 그는 정비해 준 버스와 반대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