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인
다음 버스를 만난 것은 2시간이 지난 후였다.
유난히 안개가 자욱한 비탈길에 11번 버스가 멈춰서 있었다.
망자들이 모두 버스 밖에 나와있었고 그 무리 안에 덩치가 제법 큰 운전사도 보였다.
검은 옷을 입은 젊은 차사는 막 버스 뒷문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아이고, 정비사님 오셨구나! 인제 됐네, 됐어! 이쪽으로 오시요."
부산스러운 말투로 윤식을 맞이하는 운전사.
"... 아주 대포 소리가 나고 연기도 나고 난리도 아니었다니까요."
윤식이 묻기도 전에 그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여기부터 한 번 봅시다.”
엔진룸을 열고 살펴보는데 옆에서 운전사가 말을 이었다.
“이것이… 연기가 나는 것도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다던데…”
그의 말은 끝이 없었다.
대충 대꾸를 하면서 엔진룸을 훑어봤다.
"내가 저승 버스 운전이 인제 20년 다 돼 가는데 이놈의 운전도 하루 이틀 이제, 잠도 안 자고 할라니까..."
조잘 대는 운전사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고 노력하는데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윤식은 원래 말이 많은 사내를 싫어했다.
말이 많을수록 가벼운 놈이라는 게 윤식의 지론이었다.
남자란 자고로 말없이 무게감이 있어야지.
저 운전사처럼 가벼운 놈들은 남자로 취급 안 했다.
“버스 안에도 어디 고장나븟소?”
웅성거리는 소리에 윤식이 고개를 내밀었다.
“아뇨, 고장난데는 없고… 망자 하나가 적응하기 어려운갑서… 허허…”
“하긴…”
저승 버스를 타고 달리다 보면 오만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윤식은 엔진룸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정비 버스로 향했다.
버스 밑을 확인하려고 유압잭을 꺼내와 11번 버스 앞에 내려놓는 순간, 열린 뒷문 사이로 쪼그려 앉아있는 남자가 보였다.
환자복을 입은 남자는 윤식과 동년배로 보였는데 의자 뒤에 숨어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때, 윤식과 눈이 마주친 남자가 갑자기 소리치기 시작했다.
“총… 총 들고 온다. 저기 군인들, 숨어야 쓴디! 오메, 쏘믄 어찌까!”
남자는 눈동자를 굴려가며 무어라도 붙잡으려는 듯 이리저리 손을 뻗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과 다급한 목소리.
그의 눈빛은 분명 과거 어느 시간에 갇혀 있었다.
“여기 올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버스에서 대포 소리 난 뒤부터 많이 불안해하더라고요.”
어느새 다가온 운전사가 말했다.
“아무래도 젊었을 때 뭔 일이 있었나 봐.”
"도대체 뭔 일이 있으믄 총든 군인을 헛것으로 본다요?"
“이 동네 망자가 저 나이 때면... 5.18이거나 월남전 정도 되겠지...”
월남전은 윤식과 상관없었지만... 5.18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때 윤식이 대학생은 아니었지만, 계엄군이 광주에 들어온 후로는 이미 대학생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전화도 끊기고. 시골집에 안부를 물을 수가 없는데 차를 탈 수도 없었다.
급한 대로 자전거를 탔다.
시외까지 거리가 솔찬하겠다 싶었지만 자전거로 가면 걷는 것보다는 빠르겠지 싶었다.
그런데…
이리가도 방어선, 저리가도 방어선.
사방에 깔린 총을 든 군인들 때문에 광주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근디… 죽었으믄 좋아져야 하는 거 아닌가? 죽고 나서도 이렇게 정신줄을 놓을 수가 있다요?”
그 물음에 대해서는 유압잭을 함께 들고 온 차사가 답을 했다.
“저건 섬망증세예요. 사람이 생전에 많이 아프면 저럴 수 있더라고요. 보통 죽기 전에 몸에 있던 문제들은 다 사라지는데 아주 가끔 저런 섬망증세가 남아있는 경우가 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될 정도면 아마도 몸이 아니라…”
차사가 가슴을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렸다.
“영혼에 새겨졌기 때문일 겁니다.”
차사의 말을 들은 윤식과 운전사가 남자를 바라봤다.
죽어서도 겁을 잔뜩 집어먹고 웅크린 남자를 보고 있자니 명치가 답답해진다.
순간, 윤식과 눈이 마주친 남자가 갑자기 버스에서 내려와 엎드리더니 바닥을 기듯이 다가왔다.
“하… 한 번만 봐주쇼… 나는 아무 상관도 없당게요… 제발… 한 번만 봐주쇼…”
윤식의 바짓자락을 잡고 애처롭게 매달리는 남자를 내려다보는 마음이 무언가에 짓이겨지는 기분이다.
윤식은 버스를 고쳐야 할지, 벌벌 떨고 있는 남자를 달래야 할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저 남자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버스 운전사가 잔잔한 웃음을 띠고, 어린아이를 달래듯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보세요, 잘 봐봐요. 군인들? 어허… 내 눈에는 직장인들만 보이는데? 여기 이 아저씨 위아래 옷 색깔이 같아서 군인 같아 보여도 그냥 직장인이여!
운전사는 주름진 얼굴에 어울리지도 않는 윙크를 윤식에게 날리며 말을 이었다.
“이 양반이 우리 버스 고쳐줄라고 온 정비사 양반이니까 걱정 말어요! 군인은 무슨… 덩치도 작어가지고 지나가는 토깽이 한 마리도 못 잡게 생겼구만.”
‘뭐라고?’
덩치 큰 운전사는 어이없는 표정의 윤식을 한 손으로 툭 밀어버렸다.
힘 없이 밀려난 윤식을 그대로 둔 채, 그는 무릎을 꿇고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여기는 총알도 못 들어오는 노선이야. 게다가 이 버스는 말이지, 방탄 버스여서 총알이 와도 다 튕겨 나가요.”
그는 여전히 헐떡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니여, 난 알어. 저놈들, 저놈들이 다 보고 있어…”
운전사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호통치지도 않았다.
“그때 많이 무서우셨죠. 죽을 뻔했잖아요. 그게 아직도 발목을 잡고 있네. 근데… 지금은 통근버스 타신 거예요. 여기선 다 종착지가 같으니깐, 그저 편히 계시면 됩니다. 여긴 군인도, 총도 없어요. 내가 책임지고 모셔다 드릴 테니 걱정 붙들어 매세요.”
운전사의 넉살은 겁먹은 영혼의 공포도 조금씩 누그러트렸다.
“… 진짜로, 괜찮은 거요?”
운전사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암요. 여기는 내가 운전하는 길이니까. 손님은 이제 걱정 말고, 마음 편히 가는 것만 신경 쓰시면 돼요. 누가 오든 간에 내가 지켜드릴 테니까.”
그제야 망자의 어깨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이제 그에게 시골길의 안갯속 그림자들은, 퇴근길 인파처럼 보였다.
운전사는 남자와 함께 방탄 버스라 말한 곳으로 들어갔고, 그 안에서도 수다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저 양반은 도대체 군인이랑 뭔일이 있었다냐... 그나저나 운전사 잔소리 듣느라 돌아오던 정신도 도망가겄네…’
피식 웃은 윤식은 잔잔하게 이어지는 그들의 말소리가 싫지 않았다.
가볍게만 보였던 운전사는 그 가벼움으로 고장 난 영혼의 마음을 열었다.
말 많은 놈들이랑은 상종도 하기 싫었는데, 이렇게 보니 꼭 다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닌가 싶다.
윤식은 말없이 차사와 함께 버스를 고쳤다.
"마후라가 부식되 갖고 터져브렀네요. 교체해야 겄습니다."
한참 후, 차사와 함께 버스 정비를 마치고 도구들을 정리할 때가 되어서야 운전사가 버스 밖으로 나왔다.
그는 다시 윤식과 차사의 옆으로 와서 또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승 차사는 운전사의 수다가 익숙한 듯 표정이 없었다.
통, 통, 통...
'응? 뭔 소리여?'
운전사의 말소리 사이로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