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과 차사의 힘

죽호

by 윙글

마침 정리를 끝낸 윤식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통, 통, 통...

도로 맞은편에서 바퀴가 통통 튀어 오르며 굴러오고 있었다.


'뭣이여! 바꾸가 왜 튀어와?'

망자들은 다급하게 몸을 웅크리며 머리를 감쌌다.

튀어오던 타이어는 망자들의 옆을 가까스로 스쳐지나 길 옆으로 튕겨 나갔다.


그 뒤로 살짝 기울어진 버스 한 대가 점점 속도를 줄이며 정차하고 있었다.

한쪽 타이어가 빠져있는 버스였다.


"하이고, 저 버스는 정비사 양반 편하라고 바퀴 굴리면서 왔는 갑소."

"... 웃으라고 한말이요?"

윤식은 말 많은 운전사를 돌아보며 대꾸했다.

그는 옅은 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바퀴가 빠진 버스는 12번 버스.

버스에서 내린 차사와 운전사는 앞에 서있는 또 다른 버스와 승객들을 보고 잠시 말을 잃었다.

고장 난 버스가 또 있다는 사실에 한 번, 타이어로 망자들을 날려버릴 뻔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라는 중이었다.


"괜찮습니까? 혹시 타이어에 부딪힌 분 계세요?"

12번 버스 차사가 앞에 있는 승객들에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근데 시커먼 게 날아오길래 저거 맞고 한번 더 죽는 갑다 했소. 껄껄껄..."

말많은 운전사는 그 특유의 여유로움을 보여주며 웃었다.

"허... 농담할 정신은 있으신갑네. 근데 어쩐 일로 서 있던 거요?"

"우리도 고장 나서 세웠죠. 이것들이 단체로 고장 나기로 약속이라도 했나? 허허..."

"저희는... 봐서 아시죠? 타이어가 빠졌네요. 이게 어디까지 굴러갔다냐...?"


두 버스의 운전사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12번 버스 차사가 작은 버스 한 대를 더 발견했다.

"저 버스는 뭡니까?"

"못 들었소? 출장 정비사 버스잖아요."

"그런 게 생겼습니까?"

"예! 오늘부터 생겼답니다. 이야... 김 차사가 복이 있네! 오늘부터 정비 시작했는데 어떻게 딱 정비사 앞에서 고장이 나나? 허허허..."

그는 12번 버스 차사와 운전사를 데려와 윤식을 소개해주었다.


"다행히 터진 것은 아니고 너트가 풀려서 빠져브렀는갑네. 터졌으믄 쇼바도 휘고 다 아작 났을 것인디 그냥 타이어 바꾸고 공기압 맞춰주믄 되것소."

타이어가 빠진 자리를 살펴본 윤식은 차사와 운전사에게 설명을 해주고 새 타이어를 가져왔다.

힘이 센 차사는 타이어를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윤식을 도왔다.


그 사이 안에 있던 승객들이 밖으로 나와 길거리를 돌아다니거나 길 한복판에 주저앉았다.

대부분은 죽음에 적응하느라, 또는 생을 돌아보느라 말없이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유독 시끄러운 망자가 한 쌍 있었다.

티격태격하는 듯 보이던 그들의 목소리는 차츰 커지더니, 모두에게 대화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쳐봐! 쳐봐! 이미 죽은 거 또 죽기밖에 더해? 치라니까! 어?"

"어휴! 저걸 그냥 콱!"

"콱 뭐! 해 그냥! 맘대로 하라고! 평생을 지 맘대로 했으면서!"

"내가 뭘 맘대로 해! 니가 사람 말을 개무시하니까 그런거 아냐!"


두 사람은 같은 날, 같은 시각 죽은 부부였다.

6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부부는 젊은 부부들 못지않게 힘차게 싸우고 있었다.

운명처럼 같은 시간에 죽은 부부는 외로운 저승버스에서 드물게도 함께할 동반자가 있었지만 그 시간마저 싸움으로 채우고 있었다.


여자는 독기 어린 눈으로 남편을 노려보다 그의 옷자락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너 죽고 나 죽자! 어? 이 화상아!"


"이미 죽었는디 죽자고 달라드네..."

타이어 교체가 끝나고, 부부싸움에 시선을 빼앗긴 윤식이 중얼거렸다.


"어우, 이걸 그냥 확!..."

남자의 움켜쥔 주먹이 부들거렸다.

12번 버스의 차사가 한숨을 내쉬고는 부부사이에 끼어들었다.

"두 분, 그만하시고 버스에 타시죠. 다른 망자들한테 피해..."


"내가 미친년이지... 내가 뭣하러 구급차를 같이 타가꼬... 너 같은 놈 뒤지든지 말든지 냅둬블것을!"

여자의 고성에 젊은 차사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옷을 붙잡고 흔들던 그녀를 참지 못한 남편이 그녀를 밀쳤다.

퍽!

버스에 부딪힌 그녀는 죽는다고 소리치고 남편은 죽으라고 소리쳤다.

그 옆에서 차사가 말려봤지만 전혀 듣지 않았다.


지켜보는 이들은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의 싸움이든 망자의 싸움이든 멈추지 않고 끝을 향해 달려서 좋을 리가 없었다.

힘으로라도 말려야겠다 생각한 차사가 남자를 뒤에서 붙잡았지만 발버둥 치는 남자와 함께 버스 옆면에 부딪혔다.


와장창!

버스 유리가 깨졌다.

깨진 유리 파편 사이로 고개를 든 남자의 얼굴에 표정이 사라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눈이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마치 눈 속에 가시가 퍼져나가는 듯 그의 눈동자에 뾰족한 붉은빛이 번지고 있었다.


그 눈을 본 차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서투른 차사는 이순간을 피하고만 싶었다.

그러나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망설이면 늦는다.


차사가 안주머니에서 작은 막대를 하나 꺼냈다.

대나무 마디를 정교하게 깎아 만든 손바닥만 한 길이의 작은 피리였다.

바깥은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고, 표면에는 얇게 먹빛이 스며들어 어둑한 푸른빛을 띠었다.

그 끝에는 짧은 붓털 다발이 검게 묶여 있었다.


차사가 곧바로 명부를 펼쳐 망자의 이름을 그 붓심으로 가볍게 쓸어내리니, 글자가 희미하게 흔들리며 피리 속으로 스며들었다.

곧이어 차사가 피리를 불었다.


피이이이이잉!

쇳소리와 바람소리가 뒤엉킨 듯한 날카로운 음이 울려 퍼지자 붉은 눈의 남자가 양쪽 귀를 틀어막고 웅크린 채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윤식은 난데없는 피리소리와 고통스러워하는 망자를 보며 버스 운전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저 피리가 뭣이다요? 그냥 피리 소리만 나던디 어째 저러고 꼬꾸라져브요?"

"저게 그냥 피리가 아니요. '저승 차사의 휘파람'이라고, 이름은 '죽호'라고 합디다."


차사가 가지고 다니는 죽호라는 피리는 명부의 글씨를 소리로 바꾸어, 망자의 침묵을 부르는 붓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간혹 분노에 휩싸여 원귀가 되려고 하거나 인간을 해하려는 망자가 있을때 사용한다.

명부의 이름을 흡수한 죽호를 불면, 그 이름을 겨눈 소리가 터져 나와 망자의 귀를 찢고, 목을 죄어 그 입에서 더 이상 말이 흘러나오지 못하게 된다.

한마디로 죽호는, 소리를 내어 소리를 끊는다.


운전사의 설명을 듣는 사이 고통스러워하던 남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남자의 입에서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켁! 컥!' 하는 숨을 토해내는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던 아내의 떨리는 눈에 눈물이 맺혔다.

눈앞에서 사라지면 속이 시원할 것 같은 인간인데 왜 이 꼴을 보는 것이 아픈것인가..


미운 사람.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사람...

그 긴 시간 상처 주고 무시하고 원망한 사람인데...

죽는 것을 보는 것은 못하겠다.

죽도록 괴로워하는 것도 못 보겠다.

이 마음은 대체 뭐라 해야 할까...

부부로 산지 40년.

그 시간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나 보다.

아내도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차사도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버스에 기대섰다.

누군가를 저렇게나 고통스럽게 만든 이가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사실.

그리고 처음 불어본 죽호의 힘에, 들고 있는 작은 피리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세 사람을 지켜보던 말 많은 운전사가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만 일어납시다. 남은 울화통은 삼도천에 도착해서 푸시요."

그는 다른 운전사와 함께 부부를 부축해 버스에 옮겨주었다.

그러고는 고통을 당한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운 얼굴을 한 차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지금 안 막았으면 저 망자, 더 고통스러웠을 거여. 잘했어, 잘했어."

따뜻한 그의 손길에 떨리던 차사의 어깨가 가라앉았다.


윤식은 깨진 유리창 너머로 찬바람을 맞지 않도록 12번 버스의 창을 막아 주었다.

임시방편으로 테이프와 비닐로 메운 엉성한 조합이었지만 추운 11월의 바람을 막아주기에는 훌륭했다.


정비한 두 버스가 떠나간 후 윤식 혼자 남았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자리에는 유리조각만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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