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
가장 먼저 시선을 빼앗는 것은 시커멓고 거대한 다리였다.
웅장한 다리가 주는 위압감과 끝없이 흐르고 있는 삼도천을 구경하느라 망자들은 입이 벌어지는 줄도 몰랐다.
"앞에 보이는 다리가 삼도천 다리입니다. 이제 통제소에서 마지막 신분 확인을 하고 다리를 건너시면 됩니다. 급할 것 없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순서대로 차분히 따라오세요."
현미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망자들이 줄을 이어 통제소에 다다랐다.
삼도천의 습기가 올라오는 데다 희뿌연 안개까지 끼어있어 그 공기가 굉장히 눅눅했다.
다리 바로 앞에 세워진 통제소는 마치 성곽 같았다.
검은색 돌을 쌓아 만든 긴 성벽이 둘러져 있었고 일정한 간격으로 아치형 출입구가 만들어져 있었다.
가운데에는 성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넓은 팔작지붕이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검은색 통제소 건물과 검은 옷을 입은 직원들이 내뿜는 묵직한 분위기는 갓 도착한 망자들의 기를 죽이기에 충분했다.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는 윤식의 순서는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앞에 서있는 망자들은 무사히 신분을 확인하고 하나 둘, 다리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 곧 윤식의 차례다.
그가 차례를 기다리는 사이, 현미와 통제소 직원 간에 업무보고가 이뤄졌다.
미간을 찌뿌리며 현미의 보고를 듣던 통제소 직원은 윤식을 한번 쳐다보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뭐여, 뭔 일 생기는 건 아니것제?'
통제소 직원의 눈빛이 영 찜찜해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그 불안은 곧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김윤식 씨, 잠깐 이쪽으로 오시죠."
윤식은 코앞에 통제소를 두고 줄을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직원을 따라 어둡고 좁은 돌계단을 지나 성의 지휘소에 올랐다.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탁 트인 시야에 수많은 망자들과 버스들이 보였다.
"망자들이 꽤 많죠? 인구가 많아지니 덩달아 망자도 많아집니다. 허허..."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윤식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 키가 190은 되어 보이는 남자가 서있었다.
하얀 백발을 깔끔하게 빗어 넘긴 남자는 다른 직원들처럼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다만, 한쪽 허리에 긴 장검을 차고 있었다.
그는 먼 곳에 시선을 둔 채로 뒷짐을 지고 있었다.
"누구... 신지...?"
"아, 저는 이곳 통제소를 책임지고 있는 수문장입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아, 예. 처음 뵙겠습니다. 김윤식이라고 합니다."
악수를 나누는 동안 수문장의 눈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오는 길에 버스를 고쳐주셨다 들었습니다. 저희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아닙니다..."
손사래를 치는 윤식에게 수문장의 말이 이어졌다.
"솔직히... 저승에 이르는 중대한 일을 하는 자들이 무슨 일을 이렇게 허술하게 하는가 싶으시죠?"
"...아니요, 그런 생각은 해보도 안했어요."
'그런 생각 할 겨를도 없었다고 해야겄지. 글고, 내가 뭐시라고...'
"이게 사실... 원래부터 이렇지는 않았습니다."
어딘가 억울하다는 듯한 그의 말에 윤식은 가만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옛날에는 망자들이 이곳까지 걸어오는 방식이었죠. 그저 차사가 망자를 데리러 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버스도, 정비소도 필요 없는 시대였죠"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저승이나 이승이나 매한가지인가 보다.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는 수문장의 눈에 그리움이 묻어났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망자가 급격히 많아졌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모두 데려오기엔 시간도, 차사도 부족해졌죠. 우리는 고민했습니다. 차사를 많이 뽑을 것이냐, 탈것을 준비해 빠르게 데려올 것이냐... 그리고 우리는 선택을 했습니다. 차사도 많이 뽑고 탈 것도 준비하기로요. 너무나 급격한 인구증가는 한 가지 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할 수 있는 건 다 시도했다는 말을 참 길게도 하는 수문장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저승 운송 체계의 변화는 몇 가지 문제점을 낳았습니다. 그중 한 가지가 버스의 정비였지요. 부랴부랴 정비사들을 뽑아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아시겠지만 버스 정비일은 점점 기피하다 보니 정비사를 두는 것도 쉽지 않지요..."
길어지는 수문장의 말에 윤식은 차츰 불안해지고 있었다.
특별할 일 없이 그저 남들처럼 저 밑에서 성문을 통과하고만 싶었다.
"이곳 정비소에서 나름대로 정비를 하고 있지만 한 번에 들여온 버스들이 비슷한 시기에 고장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버스를 전부 회수해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새로 들여오기로 한 버스들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바람에 그것도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흘끗, 수문장을 한 번 바라본 윤식은 일부러 성 아래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왜 이렇게 서론이 길까 싶으시지요? 허허... 대강 눈치채셨겠지만, 김윤식 씨에게 부탁을 드려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말이 길어졌습니다."
느긋한 말투의 수문장은 윤식에게 얼굴을 고정한 채, 눈가를 보기 좋게 휘었다.
"그... 저승 버스의 출장 정비사를 맡아서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정비를 부탁하는 그의 몸이 윤식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허리에 찬 장검의 손잡이가 반짝였다.
"제가 뭐라고 이런 부탁을 하신당가요... 정비사 망자도 많을 것인디... 저는 특별히 잘난 것도 없고요..."
윤식은 장검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마지막 발악처럼 말을 뱉었다.
"생각보다 실력 있는 정비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허풍만 떨 줄 알고, 어떤 이는 아무 의지가 없고, 어떤 이는 아직 살아있지요. 허허..."
수문장의 한쪽 손이 장검의 손잡이에 얹어졌다. 다시 한번 손잡이가 반짝였다. 그 빛에, 윤식은 눈이 부셨다.
"김윤식 씨처럼 현장경험이 많고 능숙한 정비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지요. 돌발 상황에 대처를 해야 하는 출장 정비사로 제격입니다. 만약, 김윤식 씨가 거절하신다면..."
꿀꺽. 윤식의 목울대가 울렁였다. 장검은 뽑지도 않았는데 목이 서늘한 기분이다.
"... 이대로 통제소를 지나가시면 됩니다. 얼마든지 거절하셔도 되지요. 단, 이것은 알고 계시지요? 다리를 지나는 그 순간부터 심판이 시작됩니다. 뭐 심판과 동시에 여러 가지 지옥과 형별이 종류별로 있지요. 그 첫 번째가 소중한 인생을 허비한 망자들을 위한 나태지옥이었던가...? 뭐 어쨌든, 김윤식 씨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엠병…'
못 박힌 듯 그 자리에 굳어버린 윤식은 수문장의 면상에 대놓고 하지 못한 말을 속으로 삼켰다.
"그러믄... 만약에 제가 출장 정비사를 한다고 하믄..."
"아, 이걸 말씀 안 드렸네요. 참고로 저승 버스 출장 정비사를 맡아 주시면 저승 심판을 받을 때 정상참작이 된답니다. 봉사를 하셨으니 그만큼 지은 죄도 탕감을 해드려야겠지요."
씨익, 입꼬리를 올리는 수문장의 미소는 더없이 사악해 보였다.
'나는 이놈의 저승에서도 못 쉴 팔잔갑네...'
눈을 질끈 감았다 뜬 윤식은 수문장의 장검이 아닌 그의 얼굴을 보며 대답했다.
"그놈의 출장 정비사, 해볼랍니다. 뭐 어떻게 하믄 된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