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도심 한곳에 위치한 요양병원의 집중치료실.
갑자기 간호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침대 사이의 커튼을 전부 닫아 시야를 차단한다.
삐-
꺼져가는 듯 힘겨운 숨을 한번 뱉어낸 환자 하나가 그대로 생을 마감했다.
침대맡의 두 딸들은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고, 지켜보던 당직의사의 사망선고가 이어졌다.
"2017년 11월 12일 1시 12분, 김윤식 씨 사망하셨습니다."
덥석!
누군가 윤식의 손목을 잡더니 몸을 잡아끌었다.
철퍼덕!
"오메!"
맨발로 침대 옆에 내려앉은 윤식은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니, 환자를 이렇게 하믄 쓴다요..."
뭐 하는 짓이냐 화를 내려다 툭툭 털며 몸을 일으키고 보니 여간 신기한 게 아니다.
이렇게 몸이 가벼운 것이 얼마만인가 모르겠다.
갑작스럽게 발견한 간경화로 병원을 오가며 투병한 지 6개월.
간경화를 처음 진단받았을 때부터 이미 의사는 힘들다 말했고, 복수는 차오를 대로 차오른 상태였다.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 희미해져 가는 의식을 붙잡고 있던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김윤식 씨, 1951년 5월 2일 생, 김윤식 씨 맞으시죠?
"예? 아니, 예..."
위아래로 검은색 옷을 입은 여자가 다짜고짜 이름을 묻는다.
윤식은 어쩐지 알 것만 같은 이 상황을 애써 부정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침대에 누워있는 윤식 자신과 울고 있는 두 딸,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까지.
'저게..., 저게 나라고...?'
그의 두 눈은 자신의 얼굴에 못 박힌 채 떨어질 줄을 몰랐다.
어느 누가 인생의 마지막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윤식 또한 그랬다.
그도 죽음은 처음이니까.
익숙한 망자의 반응을 보며 저승차사 현미는 준비한 말을 전했다.
"2017년 11월 12일 오늘, 김윤식 씨 사망하셨습니다.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시간이 별로 없으니 지금 바로 저를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늦지 않게 탑승하려면 지금 나가야 합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서두르지 않아도 되지만, 이렇게 서두르지 않으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망자들이다.
"아..., 예."
윤식은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홀린 듯이 여자를 따라나섰다.
몇 달간 침대에 누운 채 오고 가던 복도를 지나 처음으로 병원 밖에 제 발로 섰다.
고개를 들어 병원 건물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별 특별한 기억도 없는 낯선 이곳에서 내 인생을 마감했구나.
요양병원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몇 명 더 있었다.
부우우웅 쉬익, 익숙한 배기음이 들렸다.
돌아보니 병원 앞에 시내버스 한 대가 멈춰 서있었다.
외형은 그냥 시내버스와 똑같이 생겼다.
다른 것이 있다면 흰색과 검은색으로만 칠해져 있는 외관, 그리고 시내버스에서 흔히 보던 광고가 없다는 점이었다.
버스 번호는 01, 종착지는 삼도천이었다.
"이 버스에 타시면 됩니다."
윤식은 여자가 시키는 대로 버스에 올라탔다.
대충 둘러보니 버스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생전 습관대로 앞자리에 앉으니 여자의 짧은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 저승버스에 탑승하셨습니다. 이 버스는 도심 근방 다른 망자들을 더 태운 뒤 삼도천 다리로 향할 예정입니다. 삼도천 이후의 상황은 종착지에 도착 후 일괄적으로 안내해 드릴 예정입니다. 질문 있습니까?"
"아... 그......"
"그럼, 출발합니다. 기사님, 출발해 주세요!"
대답할 틈도 없이 출발한 버스는 그대로 새벽 도로를 가로지르며 출발했다.
떠난다는 사실은 전혀 실감 나지 않는데 이미 그는, 저승 버스 안이었다.
도로에는 분명 다른 차들도 지나다니고 있었지만 저승버스가 주행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니, 대체 길이 넓어지는 거여, 버스가 작아지는 거여?'
윤식은 눈을 비비며 창밖을 살폈지만 그 원리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요술을 부리는 저승버스는 밤새도록 몇 개의 병원 앞을 더 거쳐갔다.
그때마다 저승차사는 새로운 망자 손님을 태웠다.
날이 밝고 다시 해가 저물어가도록 버스는 멈추지 않았다.
보슬비가 내리는 창밖.
노을지는 지평선 주변에 희끄무레한 구름들이 모여 제 몸도 같이 물들이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은 어둑해져 가고 옆자리에는 서류를 내려다보는 저승차사의 고개가 한껏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먼지처럼 흩날리는 창밖의 비를 보며 윤식은 생각했다.
'애들 얼굴이나 한번 더 보고 올 것을 그랬네이... 우리 아들 얼굴도 못 봤구만..."
윤식은 요양병원로고가 자잘하게 인쇄된 환자복을 내려다봤다.
64세.
아직은 아니다.
아직 죽기에는 너무 빠르다 생각했다.
평생 그래왔던 것처럼 강한 의지로 열심히 치료받으면 몇 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가 환자복 차림으로 저승버스에 앉아 있는 신세라니...
허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버스 좌석은 망자들로 가득 찼다.
그때부터 버스는 도심을 벗어나 시골길로 향했다.
"잠시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저희 저승버스는 승객을 모두 태웠으니 이제 삼도천으로 향하게 됩니다. 지금부터 가는 길은 인간들이 만든 도로가 아니기 때문에 다소 어둡고 생경한 느낌이 드실 수 있으나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삼도천으로 출발하겠습니다."
버스는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길을 따라 안개가 자욱한 산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아따, 사람 죽으믄 바로 저승 가는 줄 알았드만 오래 걸리네이..."
"뭔 저승 가는 길이 이렇게 멀다요? 산에 가서 한번 더 죽일랑갑네!"
망자들의 불만을 예상했다는 듯, 저승차사 현미는 차분하게 버스 안을 한 번 훑어본 뒤 말을 덧붙였다.
"그나마 버스로 가니까 편한 거지 옛날에는 다 걸어갔어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아요."
그녀는 저승과 이승을 여러 번 왕복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자신 있게 말했다.
푸쉬이이익.
그때, 저승버스가 멈춰 섰다.
"어...?"
"뭐시여? 벌써 도착해븟어?"
"여기가 삼도천이여?"
두리번거리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정된 정차가 아닌 듯 당황한 현미가 운전사에게 물었다.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어째 아까부터 속도가 잘 안나드만 경고등에 불이 들어와브네..."
"네?"
"아무래도 내려서 좀 봐야것어..."
자리에서 일어난 운전사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현미도 일어났다.
두 사람이 버스에서 내리고 모두의 시선이 창 밖으로 향했다.
윤식도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들은 버스 뒤에 있는 엔진룸의 덮개를 열고 이리저리 살펴보는 듯했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해결되는 것이 없었다.
"아니, 엊그제도 보충했는디... 자꾸 이러네이... 이거를 어째야 쓴다냐..."
운전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창문을 닫은 윤식은 눈을 감고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일찍 가긴 글러부렀구만...'
그렇게 20분쯤 흘렀을까...
버스에 올라탄 현미가 버스 운전석 옆에서 누군가와 무전을 하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예, 보충했대요. 그래도 소용없대요. 태주아저씨가요. 예, 그러지 말고 누구라도 좀 보내주세요, 네?"
도움을 청하는 현미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어디가 문제인지 알지도 못하는데 뭘 챙겨가겠냐, 가는 것만으로도 오래 걸린다'였다.
현미는 무전을 끊고 고개를 푹 숙였다.
일개 저승 차사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지우는 게 아닌가...
낙담하던 그 순간,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휙, 고개를 돌린 현미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윤식의 옆에 섰다.
"... 김윤식 씨."
"... 예?"
고개를 드니 저승 차사가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 저승 버스를 좀 고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