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삶의 또 다른 언어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준다?.”
이 말에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나 역시, 그 말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왜 좋은 일은 남들한테만 생기고…"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탓을 하는 나에게
운명은 진짜 힘든 게 뭔지 보여주려는 듯 어둠을 들이밀었다.
뒤이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은
쓰나미처럼 나를 덮쳤다.
‘두려움’그 짧고 단단한 등뒤로
마른풀처럼 바스러지는 "용기"의 눈망울을 보았다.
나는 신에게 속으로 울부짖었다.
“견딜 수 있다면, 당신이 한 번 견뎌보시지요.”
나는 내게 고난이 닥치면 먼저 세상의 문을 닫는다.
몸에 난 상처는 눈에 띄지만, 마음의 상처는 내면 깊숙이 숨은 아픔을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
그래도 된다고...
숨어 있어도 된다고.
그 지독하게 힘든 시간, 뜻밖의 ‘빛’ 같은 존재를 만났다.
유튜브 채널 미씽헤르츠(Missing Hearts)의 자연 영상이었다.
내 영혼이 무너진 채 고통 속을 헤맬 때...
지리산 계곡에선 비바람 속에서도 여린 진달래는 바람보다 빨리 눕는 법을 알려주었다.
농부의 논에서는 연둣빛 모가 발돋움한다. 여름 비에 흠뻑 젖은 연꽃과 연잎에 맺힌 빗방울은 상처 난 세포를 어루만졌다.
샛노란 은행잎은 소낙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설악의 암릉 사이에 붉은 단풍은 햇살 아래 별처럼 눈부셨다.
깊은 산 주름마다 넘나드는 몽환적인 구름은 하늘 바다로 흘러들고, 그 구름바다에 누워 또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상상은 오히려 황홀하였다.
모랫바람 이는 사구포 언덕에서도 갯메꽃은 꿋꿋하게 피어났다. 찬란한 일출보다 더 깊고 그윽한 낙조는 마음속 어둠을 다독이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아픔을 소리치지 않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 흘려보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눈물로 잠 못 들던 밤을 대신하여, 내 영혼은 새벽 별 아래 풀숲 사이를 맨발로 걸었다.
그렇게 서서히 이탈한 감정의 조각들은 본래의 자리를 되찾아 가고 있었다.
수많은 주옥같은 영상 중 나에게
특별히 가슴 벅찬 감동을 안겨준 영상은
"가을이 기다려지는 까닭" 이었다.
진안 주천 생태공원의 새벽,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는 그 신비한 시간.
한 계절의 끝에 다른 계절은 비처럼 스며, 새벽안갯속을 걷는 사람들은 그대로 영화의 한 장면이 되었다. 나무들은 가을의 화려함과 겨울의 서늘함 속에 서 있었다.
새벽의 숨결처럼 속삭이는 물소리,
그리고 배경에 흐르던 음악.
그 장면을 떠올리면 마치
TV문학관 한 편을 본 것처럼 먹먹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가을이 기다려지는 까닭"
수없이 재생하던 그 영상이 사라졌다.
가슴이 막히고 두통이 밀려왔다.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계속 떠나질 않았다.
누군가는
"고작, 영상 하나 때문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짝사랑하는 누군가를 보고 싶은
간절함이 이럴까?
영상에 삽입된 음원이라도 듣고 싶어서
기억을 더듬어 봤다.
“After all this time”
이 곡이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정확한 음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제작자에게 사적인 질문은 조심스러워 망설였다.
하지만, 너무 간절해서 문의를 드렸다.
그리고, 답이 왔다.
그 곡은 Ben Winwood의
<After All This Time>이 맞다고...
음악을 재생하자 다시는 듣지 못할 거 같던 막막함과 답답한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한 후련함이 밀려왔다.
그토록 아름답던 영상과 함께 들을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웠지만, 음악만으로 위로를 삼았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예술은 자신을 치유하는 동시에,
타인의 영혼을 살리는 빛이 된다.
한 줄의 고뇌 어린 문장,
천상의 선율 한 조각,
새벽을 걷는 한 예술가의 시선이
지친 마음들을 다독이고,
끝없는 어둠 속에서 길이 되어준다.
그들에게,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깊은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그리고,
섬세한 감성과 따뜻한 인간애로 자연을 재 탄생시켜 예술로 승화시킨 미씽헤르츠 님
덕분에 긴 터널의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수 있었다.
이 지면을 빌어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밥은
우리를 살게 하지만,
예술은
영혼을 치유하고 회복시킨다.”
After all this time
언제까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