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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공중전화박스 옆 그녀

시장에 가면 그녀가 있다.

by 김사임



시장 어귀를 지날 때면
언제나 그녀가 서 있다.

검게 그을린 피부,
하늘색 아이섀도를 바른 눈가.
손목에 감긴 붉은 핸드백,
몸을 휘감는 화려한 원피스.
때로는 현란한 스타킹과 하이힐

그녀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시선은 한 곳에 고정돼 있다.

한눈에 봐도
이상하리만치 눈길을 끈다.
그런데도 쉽게 시선을 둘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어느 날,
호기심 많은 중년 남자가
그녀를 멀뚱히 쳐다보다 눈이 마주쳤고,
그녀의 외마디 외침은 진정한

기. 차. 화. 통. 의 의미가 뭔지 알게 해 주었다.


모두가 놀랐지만
그녀가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날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도 그런 일을 당할까 봐
힐끔거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 후로 나도
함부로 바라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가 보이지 않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두리번거리게 된다.




사진속 인물은 글 속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대부분,
시장 공중전화박스 근처에 있다.

마치, 전화 걸 일이 있는 것처럼

아님,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는 듯
거기 기대어 마치 돌부처처럼 서 있다.
그녀가 보이면 안도하는 나 자신이
놀라울 지경이다.

어느 날,
양파를 고르던 내 곁에
그녀가 조용히 다가왔다.

순간 멈칫했지만
그녀가 더 놀랄까 봐
별일 아닌 듯 농담을 건넸다.

그녀가 웃었다.
아니, 조금은 과하게 오버하며 웃었다.
기묘했지만…
화 안 낸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누구일까.
어떤 시간을 지나
이 자리에 머물게 된 걸까.



5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얼굴,
자식이 있다면 이미 장성했을 나이.
왠지 혼자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녀의 차림새는
마치 오래전 어느 날 데이트 가던 날

그 상태에서 멈춘 듯 보인다.
혹시,

지독한 실연의 아픔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러한 이유가 이후의 삶을
얼어붙게 만든 건 아닐까?


아마도 그 봄날 어느 순간의
기억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매일 같은 자리에 서 있어
피부는 검게 그을렸지만,
젊은 시절엔 그 누구보다 눈에 띄는
미인이었을 것이다.

혼자서만 추측이 난무할 뿐, 나는 정작
그녀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연민과 경계 사이를 오간다.
그녀는 늘 거기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긴 망설여지는 거리.

그럼에도
그녀를 발견하는 순간
왠지 모를 안도감이 스쳐간다.




사진속 인물은 글 속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살아가다
힘든 시련을 마주하면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더 빠르게 달리는 사람
더 느리게 걷는 사람
그 자리에 멈추는 사람

나는 어느 유형일까?

나는 오늘도
시장을 지나간다.

그리고
파란색 공중전화박스 옆,

그녀가 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곤
그녀를 향해
소리 없는 안부를 건넨다.




사진속 인물은 글 속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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