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인터스텔라〉의 유령, 사실은 ‘나’였다
인터스텔라 속 ‘유령’은 누구였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
쉽게 잠들지 못하던 밤이면
눈을 감은 채 수많은 장면과 감각 속을 떠돌곤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나는 누구일까?
왜 여기 있는 걸까?
2005년, 죽음을 가까이에서 마주한 순간이 있었다.
그 일을 겪은 이후 세상은 이전과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살아 있다는 감각은 더 또렷해졌고,
‘나’라는 존재가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철학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이것은 삶을 견디기 위한 하나의 방식에 가까웠다.
어떤 고통은 이 세계 너머의 구조를 이해하려 애쓰지 않으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의식이란 무엇일까.
죽음 이후에도 남는 것은 있을까.
지금의 나는 진짜 나일까,
아니면 어딘가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자아가 존재할까.
이 글은 정답을 제시하려는 글이 아니다.
그저 함께 질문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작은 탐색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제1편. 다차원 속 또 다른 ‘나’는 있을까?
ㅡ 〈인터스텔라〉의 유령, 사실은 ‘나’였다
시간 너머에서 나를 지켜보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누구일까?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유령’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주인공 쿠퍼는 블랙홀의 특이점에 도달한 뒤 5차원 공간을 통해 과거의 딸에게 신호를 보낸다.
딸 머피가 오랫동안 ‘유령’이라 불러왔던 존재는 사실 미래에서 시간을 건너온 아버지, 즉 쿠퍼 자신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SF적 설정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장면은 자꾸 마음에 남았다.
그건 정말 영화적인 상상에 불과했을까?
아니면 시간의 벽 너머에서 또 다른 ‘나’가 지금의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현대 물리학은 다차원의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끈이론(String Theory)은 우주가 10차원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3차원 공간과 1차원의 시간은 그중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가장 작은 단위는 점이 아니라 ‘끈’이다.
끈이 어떻게 진동하느냐에 따라 전자나 쿼크 같은 서로 다른 입자가 나타난다.
다만 이 모델이 성립하려면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추가 차원들이 필요하다.
그 차원들은 매우 작게 말려 있는 형태로 존재한다고 설명된다.
또 다른 가설인 ‘브레인 월드(Brane World)’ 이론은 우리 우주가 3차원의 막, 즉 ‘브레인’ 위에 놓여 있으며 더 큰 고차원 공간인 ‘벌크’ 안에 떠 있다고 말한다.
만약 이 설명이 맞다면 우리 우주와 아주 가까운 곳에 전혀 다른 우주가 나란히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이론들은 아직 실험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라기보다는 현대 물리학이 수학적 일관성 속에서 제시한 가설의 단계에 가깝다.
우리는 지금, 우주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가능성의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스텔라》 속 5차원 공간은 완전히 허구라고만 치부하기에는 과학이 허용하는 상상과 꽤 닮아 있다.
“우리는 지금 몇 차원에 존재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런 물음으로 이어진다.
자아는 정말 이 3차원 세계에만 머무는
존재일까?
살다 보면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들을 마주한다.
처음 만난 사람인데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 처음 가본 장소인데 이상하리만큼 익숙한 골목, 꿈에서 본 장면이 현실에서 겹쳐지는 경험.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분명 처음 발을 디딘 공간이었는데, 마치 이미 알고 있다는 확신이 먼저 들었다.
기억이라고 하기에는 근거가 없고, 상상이라고 하기에는 감각이 너무 또렷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종종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느끼는 기시감은 단순한 착각이나 기억의 오류가 아니라, 아직 언어로 설명되지 않은 다른 차원의 정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이 생각은 신비주의라기보다 과학과 철학의 경계에서 조심스럽게 던져볼 수 있는 질문에 가깝다.
‘유령은 나였다’는 설정은 단순한 반전을 넘어선다.
그 문장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자아가 스스로에게 신호를 보낸다는 상징처럼 느껴진다.
우주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결국 ‘나’라는 존재를 이해하려는 과정과 닮아 있다.
어쩌면 우리가 반복해서 던지는 질문들은
이미 먼 차원에서 울려온 자아의 메아리에 대한 응답인지도 모른다.
<같이 질문해보기>
• 우리는 지금 몇 차원에 존재하고 있을까?
• 낯익은 장면은 과거의 기억일까, 아니면 다른 차원의 흔적일까?
• 내 삶을 멀리서 지켜보는 또 다른 ‘나’를 느낀 적은 없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