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눈물과 기쁨, 자아의 출발점
어느 날, 우연히 클래식 음악을 듣다 눈물이 났다.
이를테면 프레데리크 쇼팽의 야상곡 같은 곡이었다.
처음 듣는 멜로디였는데도
이상하리만큼 슬픔이 밀려왔다.
오래전에 느꼈던 따뜻함과 외로움이
동시에 가슴 깊은 곳을 두드리는 느낌이었다.
이유를 떠올리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고,
감정은 나를 흔들어 그 자리에 멈춰 세웠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감정이야말로
의식이 남긴 가장 오래된 흔적이 아닐까 하고.
우리는 흔히 생각하는 존재로 자신을 인식한다.
하지만 자아가 또렷해지기 훨씬 전부터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그 근원을 따라 뇌의 깊은 층으로 내려가면 ‘판단’이나 ’사고’보다 먼저 작동하는 원초적인 회로들이 나타난다.
신경과학자 야크 판크세프는 모든 포유류의 뇌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본능적 감정 회로들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배우기 이전부터 무언가를 갈망하고, 위험을 피하고, 상실 앞에서 고통을 느끼며, 관계를 맺고 싶어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감정들은 개인의 경험 이전에 이미 존재하며, 진화의 과정 속에서 오랫동안 보존되어 온 감정의 기반이다.
그래서 우리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불안해지고, 외로워지고, 설명할 수 없는 기쁨에 잠기기도 한다.
감정은 의식이 알아차리기 전에 몸을 먼저
움직인다.
감정은 단순한 기능이 아닌, 자아 이전부터 울려온 하나의 파동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는 슬프다”, “나는 기쁘다”라고 말할 때 그 ‘나’는 언제 등장한 걸까?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이 지점에서 감정(emotion)과 느낌(feeling)을 구분한다.
감정은 심장이 빨라지고, 근육이 긴장하고,
눈물이 흐르는 몸의 반응이다.
느낌은 그 변화를 ‘나’라는 자아가 인식하는
순간이다. “지금 나는 불안하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상태 말이다.
즉, 감정은 먼저 일어나고, 자아는 그 뒤에 도착한다.
자아는 이미 일어난 감정의 흔적을 뒤늦게 읽어내며 자신의 자리를 만든다.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어떤 인터뷰를 앞두고 심장이 빨라지거나 손에 땀이 차기 전, 먼저 “아, 긴장된다”는 자각이 찾아온 순간이었다.
몸의 반응보다 자아가 먼저 도착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경험은 하나의 질문을 남겼다.
감정이 자아를 만든 걸까,
아니면 이미 있던 자아가 감정을 먼저 불러낸 걸까?
감정은 원초적 회로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은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윤리로 해석하며, 철학으로 성찰한다.
감정은 우리를 움직이고, 의식은 그 감정을 멈춰 바라본다.
그 멈춤의 순간, 감정은 언어가 된다.
아팠다는 말, 그리웠다는 말, 용서하고 싶다는 말.
언어가 된 감정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다시 이야기로 남는다.
그렇게 축적된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자아 서사, 즉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감정은
의식보다 먼저 그려진 지도였고,
자아는 그 위에 남겨진 발자국이었다.
그 길 위를 걸으며
느끼고, 기억하고, 존재한다.
어쩌면 감정은
‘나’라는 파동이
처음으로 흔들린 울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잔물결 위에서
우리는 오늘도
‘나’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같이 질문해보기>
• 나는 어떤 감정을 가장 자주 기억하고 있을까? 그 감정은 지금의 나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 감정은 정말 내가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나’를 만들어낸 힘 그 자체였을까?
• 자아가 생기기 전에도 감정은 이미 나를 움직이고 있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