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쾌락보다 먼저 찾아온 감각
제9편. 의식은 고통을 줄이기 위해 진화했을까?
ㅡ 쾌락보다 먼저 찾아온 감각
기억은 언제나 공평하지 않다.
행복한 순간은 빠르게 지나가지만,
고통의 장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뇌는 왜 이런 선택을 반복해 왔을까.
왜 우리는 좋은 일보다
아픈 일을 더 오래 붙들고 살아갈까.
이 질문 앞에서 의식의 역할을 다시 보게 된다.
의식은 본래 고통을 감지하고 줄이기 위해
형성된 기능은 아니었을까.
1부에서 우리는 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폈다.
이번에는 그 기능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진화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되짚어본다.
그 출발점에는 언제나 고통과 쾌락이라는
두 감각이 놓여 있다.
다윈은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며 형태와 기능을 바꿔 왔다고 말했다.
신경과학은 여기에 하나의 공통된 패턴을 덧붙인다.
고통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행동을 즉각 바꾸게 만드는 가장 직접적인 신호라는 점이다.
불에 닿으면 생각보다 먼저 손이 움직이고, 상한 음식을 삼키면 위장은 판단 없이 반응한다.
집단에서 밀려났을 때 가슴이 실제 상처처럼 아픈 것도
같은 회로에서 비롯된다.
고통은 말을 배우기 이전부터 몸이 사용해 온 가장 오래된 의사소통 방식이다.
진화의 시간표를 거슬러 보면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회피였다.
위험을 피하는 능력은 생존의 최소 조건이었고, 쾌락은 그 이후에 행동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아주 오래전 단세포 생물에게는 뇌도 감정도 없었다.
그러나 해로운 환경을 피하고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능력은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
이 단순한 회피 반응이 점차 고통이라는 감각으로
정교해졌고, 이후에야 쾌락이라는 보상 체계가 그 위에 덧붙여졌다.
도파민 회로의 발달은 먹이를 찾고, 번식하고, 서로 협력하는 행동을 강화했다.
인간에게서 쾌락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음악을 들을 때의 전율, 함께 있을 때의 안정감, 창조에 몰입할 때의 기쁨은 도파민뿐 아니라 관계와 유대를 강화하는 옥시토신의 작용과도 깊이 얽혀 있다.
쾌락은 생존 이후의 사치가 아니라, 인간이 관계를 맺고 문화를 형성하며 삶의 반경을 넓히도록 만든 확장된 전략이었다.
고통이 생명을 지키는 방패라면,
쾌락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에 가깝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이 관계를 이렇게 정리한다.
“고통과 쾌락은 생명 유지의 지도이며, 의식은 그 지도를 읽는 독자다.”
이 문장은 고통과 쾌락이 먼저 경로를 만들고, 의식이 그 위에서 선택을 수행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의식은 아무 목적 없이 떠오른 부산물이라기보다, 끊임없이 위험과 가능성을 저울질하며 다음 행동을 고르는 탐색 기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많은 고통을 경험할까.
뇌는 현재보다 미래를 더 크게 계산한다.
예측 부호화 이론은 이 성향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뇌는 위험을 실제보다 크게 그려내는 편을
택해 왔다.
그 편이 살아남을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였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과거에는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다르게 작동한다.
알림이 없는데도 놓친 것이 있을 것 같고, 반응이 늦어지면 이유 없는 불안이 생긴다.
뉴스는 하루에도 여러 번 위험을 호출한다.
경계 시스템은 계속 울리고, 경보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
그 결과 위험이 없는 순간에도 불안은 자리를 잡고, 고통은 오래 머문다.
그럼에도 고통은 단순한 장애물이 아니다.
고통은 행동을 멈추게도 하지만, 방향을 바꾸게도 한다.
삶의 궤적을 전혀 다른 쪽으로 돌려놓는 힘이 되기도 한다.
예술과 철학, 새로운 사유의 많은 지점에는 상실과 결핍이 자리한다.
고통은 의식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의식을 깊게 만든다.
의식이 고통을 줄이기 위해 형성된 기능이라면,
중요한 질문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 기능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고통을 무조건 제거해야 할 신호로만
다루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볼 여유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쾌락은 고통의 반대편에 놓인 장식물이 아니다.
삶을 확장하는 또 하나의 언어다.
어쩌면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구분 자체가
고통과 쾌락의 흔적 위에
의식이 세워온 가장 오래된 무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무대 위에서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며,
‘나’라는 서사를 계속 이어간다.
〈같이 질문해보기〉
•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고통은 지금의 나에게 어떤 방향을 남겼는가?
• 쾌락보다 고통이 더 선명하게 남는 이유를 나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 고통은 줄여야 할 대상일까, 아니면 해석해야 할 언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