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의식이 만든 ‘과거-현재-미래’
행복할 때는 눈 깜짝할 새 시간이 지나가고,
지루할 때는 1분이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진다.
게임에 몰입하다 보면
4~5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지지만,
바닥에 엎드려 플랭크를 할 때는
30초가 30분처럼 늘어진다.
왜 우리는
같은 시간을 이렇게 다르게 경험할까.
우리는 늘
“시간이 흐른다”고 말한다.
손목시계를 보지 않아도
과거를 떠올리고,
현재에 서 있으며,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 익숙한 감각은
외부 세계의 본질이라기보다,
의식이 스스로를 조직하기 위해 만든
하나의 구조에 가깝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시간은 우리가 체감하는 시간과 다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시간은 절대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빛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하면 시계는 느리게 가고, 중력이 강한 블랙홀 근처에서는 시간이 늘어진다.
시간은 속도와 중력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더 흥미로운 점은 양자역학의 기본 방정식에는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는 방향성이 없다는 사실이다.
전자 하나의 움직임은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같은 방식으로 계산된다.
영화를 되감기해도 장면이 물리적으로는 문제없이 이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즉,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법칙 속에는 우리가 체감하는 ‘시간의 화살’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른다는 감각은 어디에서 만들어진 걸까.
신경과학은 그 답을 뇌에서 찾는다.
뇌에는 시간을 직접 감지하는 전용 기관이 없다.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은 사건과 사건 사이의 변화, 그리고 그 간격을 해석한 결과다.
공이 떨어지는 속도를 예측하고, 기다림이 길게 느껴지고, 몰입하면 시간이 사라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과정에는 신경전달물질이 깊이 관여한다.
도파민은 몰입과 보상 상태에서 분비되어 시간을 압축시킨다.
그래서 즐거운 순간은 짧게 느껴진다.
반대로 위험이나 긴장 상황에서는 노르에피네프린이 증가하며 감각이 예민해지고 시간은 늘어진다.
불안한 순간이 유난히 길게 기억되는 이유다.
뇌는 이렇게 감정과 각성 수준에 따라
시간의 밀도를 조절한다.
그리고 이 조절을 바탕으로 사건들을 엮어
‘과거–현재–미래’라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시간을 흐르는 강처럼 느끼는 것도 이런 뇌의 연출 덕분이다.
앞선 9편에서 살펴본 고통과 쾌락 역시 시간 감각과 분리될 수 없다.
고통은 오래 남아 미래의 위험을 예측하게 하고, 쾌락은 짧게 스쳐가며 현재의 행동을 강화한다.
이 불균형 위에서 의식은
과거를 저장하고,
현재를 판단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시간의 무대를 세운다.
시간 감각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고통과 즐거움을 조직하기 위해 진화한 생존의 도구다.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지나간 과거와 다가올 미래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감각은 실제로는 0.1~0.3초 늦게 도착한다.
‘지금’이라 부르는 순간은 이미 지나간 자극을 뇌가 묶어 재생한 결과다.
현재란 순수한 점이 아니라, 기억과 예측이 겹쳐진 하나의 경험이다.
그럼에도 이 구조 덕분에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계획하며, 현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세운 좌표계에 가깝다.
우리는 육체라는 틀 안에 있기 때문에
시간을 직선처럼 경험한다.
그래서 시작과 끝, 이전과 이후를 나누고
삶을 이야기로 만든다.
이 구조 덕분에 우리는 희망을 품고,
후회를 배우며, 방향을 선택한다.
시간은 외부에 고정된 흐름이 아니라,
의식이 스스로를 조직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간을 만든 걸까,
아니면 시간이라는 구조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 온 걸까.
〈같이 질문해보기〉
• 나는 시간을 흐르는 강처럼 느끼는가, 아니면 겹겹이 쌓인 층처럼 느끼는가?
• ‘현재’라는 순간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기억과 예측이 만나는 지점일까?
• 내가 시간을 느끼는 방식을 바꾼다면, 삶의 속도와 밀도도 달라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