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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를 사람 손으로 터네

by 지구지고


방글라데시는 모내기와 벼 베기, 탈곡, 벼 말리기가 같은 시기에 모두 존재한다.

방글라데시의 농촌은 70년대다. 하지만 시끌벅적은 없다. 한국의 70년대 농촌이 공동 작업이었다면 방글라데시의 지금은 가족 작업이다. 1년에 두 번 모내기하고 두 번의 벼 베기를 하는 방글라데시는 공동 작업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모내기하는 시기도 모두 다르다. 11월에 모내기하는 동네가 있는가 하면 12월에 벼 베기를 하는 집도 있다. 11월에 모내기를 하기도 하고 1월이나 2월에도 모내기를 한다. 한국에서처럼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일이 아니기에 천천히 해도 될 일이다. 개인이 큰 농지를 가지지 않았으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모내기를 하지 않아도 될 터이다. 넓은 농토에는 농기계 하나 보이지 않는다. 벼를 베는 일은 꼬마들까지 손에 낫을 쥐고 나섰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벼 포기를 한 줌 움켜쥔다. 그리고 낫으로 벼의 밑동을 자른다. 집집마다 자르는 위치가 다르다. 바닥에 가깝게 싹둑 자르는 집이 있는가 하면 30센티미터 정도 남기고 자르기도 한다. 보통 집에 소나 염소가 있는 집은 벼의 그루터기를 많이 남기고 논에 소를 풀어놓기도 한다. 벤 벼는 한 뭇씩 묶어 놓는 데 예닐곱 포기를 한 뭇으로 묶어낸다.


보통 수확한 벼는 논에서 말린다. 한국처럼 줄을 세워 말리지는 않는다. 단지 하루 정도 놔두는 것으로 말리는 것을 완료하고 탈곡 작업을 거친다. 탈곡하는 모습은 가지각색이다. 논에 커다란 포장을 깔고 드럼통에 두드려서 탈곡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천칭이나 홀태 같은 것을 이용해 훑어서 탈곡하기도 한다. 여기서 조금 발전된 것은 와롱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대개의 와롱기는 전기 모터를 이용한다. 벤 벼를 한곳에 모아 쌓아 놓고 와롱기 바닥엔 커다란 포장을 깐다. 포장 위에서 와롱기를 돌리고 돌아가는 와롱기의 볼록볼록 삼각형으로 튀어나온 굵은 철사에 낟알이 떨어진다. 와롱기를 이용하는 농가는 대농이다. 대농인 만큼 수북하게 쌓이는 낟알도 빠르게 쌓인다. 드럼통에 두드리는 것은 떨어진 낟알이 멀리까지 튀어 포장을 넓게 깔아야 한다. 너무 세게 두드리면 쌀알이 깨지기도 한다. 농부는 멀리 튀지도 않고 깨지지도 않도록 힘 조절을 한다. 홀태를 이용하는 것은 조금 느리긴 하지만 홀태의 발 사이에 벼 포기를 끼우고 잡아끌 때마다 수북하게 쌓이는 낟알을 보면서 농사의 보람을 느낄 수 있으리라. 조금씩 홀태 발에 끼우고 잡아당기지만 힘든 건 마찬가지다.


수확이 끝난 논은 곧바로 갈아엎고 모내기를 준비하기도 한다. 논에 물을 자작하게 넣고 경운기 로터리를 이용해서 논 쓴다. 농기계를 이용하지 못하는 논에서는 괭이를 이용해서 논을 갈아엎는 몸 작업이 시작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작업이지만 이들은 완료해 본 경험이 있다. 사람의 힘은 위대하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니 시작하면 된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은 아니어도 시작하면 끝을 볼 수 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말이 있으니 꾸준히 하면 모내기에 맞춰 논은 모내기할 수 있는 논으로 바뀔 수 있다는 신념이 있으니 가능한 것이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에게 ‘이걸 어떻게 다 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사람의 힘으로 해 온 터다. 모내기 풍경은 한국의 옛날 모내기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다. 모를 찌는 일은 못자리에서 이루어진다. 못자리의 모를 조금씩 뽑아서 둘레가 2리터 물병만 하게 묶어서 모내기할 논으로 나른다. 한국의 못자리가 물못자리라면 방글라데시 못자리는 마른못자리다. 그렇기에 바닥에 엉덩이를 바짝 대고 쪼그리고 앉아서 모 찌는 일을 한다. 이렇게 쪄놓은 모는 모쟁이에 의해 모내기 논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모내기는 시끌벅적한 한국의 옛날 모내기와는 사뭇 다르다. 한국의 모내기가 못 줄을 띄우고 마치 군부대 군인들 사열하듯 오와 열을 맞춘 것이라면 방글라데시 모내기는 심는 사람의 기준에서 줄을 맞추고 간격을 띄우는 모내기다.


한국의 모내기가 동네 사람들이 여럿 모여 시끌벅적하고 노래이며 웃음이 오가는 농요 같은 모내기였다면 방글라데시의 모내기는 내 논은 내가 모내기해야 하는 가족의 먹거리를 위한 생존의 작업이다. 모내기 모습도 다르다. 모를 심는 가족들이 나란히 서서 심어 가는 것이 아니다. 세 방향, 네 방향에서 심어 나오는 방식이다. 그러니 줄이 맞아도 이상하다. 물론 논의 크기에 맞게 모를 꽂아 넣을 수 있는 길이가 정해지지만 혼자 하는 작업이니 빨리해야 할 이유가 없다. 늦게 한다고 소리치는 사람도 없다. 내 논에 내가 모를 심으니 수확이 많이 나기만 바랄 뿐이다. 서넛이 모를 심으니 시끌벅적할 이유도 없으며 웃을 일도 벼랑 없다. 모를 심다 못 심으면 내일 또 이어서 심으면 그만이고, 그다음 날 심어도 그만이다.


학생들은 모내기 때문에 학교를 가지 않기도 한다. 먹을거리가 먼저인지 배움이 먼저인지는 그들이 생각할 일이다. 아마 이들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리라. 방글라데시의 농촌엔 모내기와 벼 베기, 탈곡, 벼 말리기가 같은 시기에 모두 존재한다. 그리고 탈곡한 볏짚은 땔감이 되고 가축의 먹이가 되기 위해 예술적인 모습으로 다시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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