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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기상#3 - 지구의 커다란 숨, 태풍

지구는 숨을 쉬고 있었을 뿐.

by 과커콜라

*사진 2018년 제25호 태풍 '콩레이'"


비가 그치고, 하늘이 잠깐 열렸다.

잔뜩 흐려 있던 며칠 사이, 풀은 더 자랐고, 바람은 한결 더 후끈해졌다.

'이젠 좀 끝났나?'

우산을 접고 돌아서던 찰나,

뉴스 속 기상캐스터가 외친다.


"올해 첫 태풍이 북상 중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다시 긴장하게 된다.

문단속을 확인하고, 창틀에 비가 새는지 확인하고,

창문에 덕지덕지 신문지와 테이프를 붙인다.

어느 정도 익숙하기는 하지만 매번 궁금하다.


"태풍은 왜 생기는 걸까?"

"왜 빙글빙글 돌아서 북쪽으로 오는 걸까?"

"태풍이었다가 태풍의 눈에 들어가면 정말 화창한데 왜 그럴까?"


장마가 '공기의 줄다리기'였다면,

태풍은 그 줄다리기의 끝에서 날아온 폭풍의 화신이다.

뜨거운 바다, 몰려드는 공기,

그 속에서 태풍은 조용히, 그러나 거대하게 숨을 쉰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숨결에 흔들리는

지구 위에 살고 있다.


그래서 "태풍 너 뭔데?"

"나? 태풍은 과학이야!"


태풍이 생기기 위해서는 기본 조건이 필요하다.


1. 해수면 온도가 26.5℃ 이상 '따뜻한 바다'

2. 뜨거운 공기가 위로 상승하면서 주변 공기와의 온도차이로 인한 '대기 불안정'

3. 지구 자전에 의한 회전력. '코리올리 힘'

4. 고도에 따른 바람의 방향/속도 변화 '바람의 차이가 적을 것'

5. 작은 규모의 저기압 소용돌이 즉, 회전의 씨앗이 필요 '열대요란'


정리를 하자면, 따뜻하게 데워진 바다에서 수증기가 생겨서 올라간 상태에서

여러 회전력과 온도차이의 대기 불안정으로 인해서 공기가 모여들게 된다.


태풍의 연료는 '바닷물'이 아니다.

바닷물이 증발해서 생긴 수증기가 공중에서 물방울로 바뀌면서 내놓는 에너지.

네이버 블로그 '랩 사이언스크럽' 발췌

바다에서 태양 에너지로 인해 증발한 수증기가 높이가 올라갈수록 온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수증기(기체)가 공기 중에서 물방울 덩어리(액체)로 변할 때,

에너지를 밖으로 방출하게 된다. 그것을 '응결잠열'이라고 한다.


위의 과정을 거치는데, 수증기가 많을수록 더 많이 뭉치게 되고, 더 많은 열을 방출하게 된다.

이것으로 인해, 공기는 계속 상승하게 되면서 아래에는 공기가 많이 없어지게 돼서 기압이 낮아진다.

기압이 낮아지면 더 많은 공기가 모여들게 되고, 수증기가 더 많이 공급된다.


이것이 긴 시간에 걸쳐서 일어나서 뭉쳐지는 것을 '태풍'이라고 한다.


태풍의 다른 이름은 '열대성 저기압'.

태풍의 중심부는 기압이 매우 낮기 때문에 저번에 배웠던 것처럼

기압이 낮은 곳으로는 공기가 몰려들려고 한다.

빈자리가 있으면 채워야 하는 것이 공기의 흐름이다.

하지만 공기는 직진을 못한다.


왜냐하면 아까 배웠던 '코리올리의 힘' 때문이다.

지구는 자전하고 있다.

그래서 지구의 자전 때문에 움직이는 물체는 직선으로 못 가고 휘어버린다.

우리나라가 포함된 북반구에서는 오른쪽으로 휘고,

호주나 뉴질랜드가 포함된 남반구에서는 왼쪽으로 휜다.

즉, 북반구 태풍은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 남반구 태풍은 시계 방향으로 회전한다.


하지만, 태풍의 눈 안에 들어가면 언제 비가 왔나 싶을 정도로 고요하다.

이유는 공기가 위로 솟구치고 난 뒤, 상공에서 식으면서 다시

천천히 가라앉기 때문이다.

즉, 태풍의 눈에서는 공기의 흐름이 상승했다가 하강하는 구간이기 때문에

바람은 약하고, 하늘이 잠깐 맑아지는 것이다.


태풍.jpg
2018년 제25호 태풍 '콩레이' 이동경로 및 위성사진

2018년 제25호 태풍 '콩레이' 우리나라를 비스듬히 스쳐가긴 했지만 엄청나게 많은 피해를 안겼던 태풍.


태풍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

말 그대로 태풍은 스스로 추진할 수 있는 힘이 없다.

결국 외부의 힘에 의해서만 움직일 수 있다.


첫 번째 태풍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북태평양 고기압'이다.

고기압에서는 바람이 밖으로 불어 나간다고 했다.

그 바람에 의해 태풍의 가장자리에는 약한 바람의 흐름이 있는데,

이 바람을 따라 이동하게 된다.


위의 왼쪽 사진에서 점차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부는 바람에 실려서 이동하는 것이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약한(5~6월) 때는 태풍이 우리나라보다는 일본 바다 쪽으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북쪽으로 확장하지 않고, 남쪽에 확장하게 되면 필리핀 등의 동남아 지역으로 가게 된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가장 활발한 7월 말에서 8월에는 우리나라 및 중국 쪽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제주도 남쪽 바다를 기점으로 갑자기 U턴을 하게 된다.

우리가 저번에 배웠던 것처럼 북위 30도부터는 '편서풍'이 불게 된다.

그래서 태풍이 우리나라 제주도를 기점으로 올라오다가 갑자기 일본 쪽 또는 '대한해협'쪽으로

빠르게 슝!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모두 '편서풍'때문이다.


지구는 1시간에 약 1,670km의 속도로 자전하고 있다. 서울을 기준으로 하면 약 1,330km이다.

그래서 편서풍은 지상 부근에서는 1시간당 평균 20~50km의 속도로 불고,

고도가 높은 곳(지표면으로부터 10~12km)에는 제트기류

즉, 엄청난 바람이 부는데 최대 300~400km의 속도로 바람이 분다.

이 바람을 이겨낼 수 있는 태풍은 없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태풍을 생각해 본다면 그 조건은

1. 북태평양 고기압이 우리나라까지 확장되어야 함

2. 편서풍이 적절하게 우리나라 위로 불고 있어야 함

이 두 가지의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우리나라에 '상륙'할 수 있다.

그러나, 위의 조건이 맞춰지기란 쉽지가 않다. 어떻게 보면 일본과 중국, 동남아로 훨씬 많은

태풍이 지나간다.



태풍은 종종 '자연재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비를 퍼붓고, 바람을 휘몰아치며,
도시를 물바다로 만들기도 한다. 수많은 재산피해와 인명피해를 발생시키는
태풍이 미워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구의 시선에서 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지구는 커다란 생명체이다.

우리 몸이 음식을 먹고, 에너지를 내는 것처럼, 지구 또한 에너지의 순환이 발생한다.

그중에 하나가 태풍인데, 태풍은 지구의 '열에너지를 고르게 나누는 역할'을 한다.


열대 지방 즉, 적도에는 축적된 열이 너무 많다. 태양의 에너지를 가장 많이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일 년 내내 고온다습 하며, 에너지 과잉 지역이 많다.

또한, 극지방에는 태양 에너지가 너무 부족하다. 태양의 에너지를 가장 적게 받는 곳이기 때문에

온도가 매우 낮으며, 에너지 부족 지역이 많다.

그래서 지구는 높은 에너지를 낮은 쪽으로 에너지를 옮기는 시스템을 발동시킨다.

1. 대기 대순환

지구의 자전을 통해 공기의 흐름으로 열을 이동시키는 방법이다.

위도 0도에서 30도에 부는 '무역풍'

위도 30도에서 60도에 부는 '편서풍'

위도 60도에서 90도에 부는 '극동풍'

열을 계속 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다.




2. 해류 순환

따뜻한 바닷물과 차가운 바닷물의 순환을 만들어 낸다. 적도 쪽의 따뜻한 바닷물이 극지방의 바닷물 쪽으로, 극지방의 차가운 바닷물이 적도 쪽으로 열을 이동시키는 방법이다.





3. 기상 시스템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

아까 배웠던 '응결잠열'을 기반으로 폭발적으로 에너지를 방출시키는 방법이다.

적도 근처의 과잉된 에너지를 중위도까지 밀어내는 강력한 메커니즘이다.


이것을 조금 디테일하게 들여다보면,

뜨거운 해수면에서 발생한 수증기를 상승시켜서 고위도 지역으로 '열을 수송'한다.

대기 중 수분을 빠르게 응결시켜서 방출하는 과정에서 공기가 식게 되는데, 이를 '강수 유도'라고 한다.

정체된 공기를 수직/수평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공기 순환 가속'을 한다.

마지막으로 고기압이 강화된 지역에 저기압을 보냄으로 압력차이를 완화시키는 '압력 평형화'이다.


태풍은 단지 파괴자가 아니라
적도의 열을 고위도로 옮겨주는 거대한 열순환 장치다.
공기를 섞고, 바다를 식히고, 지구의 숨통을 틔워주는
필수적인 환기 시스템이자 지구의 자가조절 본능이다.

태풍은 우리에게 재난이다.

가로수를 쓰러뜨리고, 전봇대를 부러뜨리고

지붕을 날리고, 삶을 집어삼키기도 한다.


그러나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태풍은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다.

적도의 뜨거운 공기를 끌어올리고,

그 열을 중위도와 극지로 옮기며,

한쪽으로 몰린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지구의 거대한 숨결이자

열의 순환을 유지하는 자가조절 장치다.


그 숨결이 너무 거세서, 우리가 흔들렸을 뿐이다.


그런데, 그 숨결이 이제는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다.

그건 정말로 지구 때문일까?

어쩌면 태풍이 강해지는 것은 우리가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들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바람은 예전보다 더 뜨겁고,

바람의 길은 더 불안정하며,

태풍은 더 자주, 더 세게 우리를 덮친다.


지구는 예전과 똑같이 숨을 쉬었는데, 우리가 쌓아 올린 열기 때문에
그 숨이 거센 바람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우리는 태풍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원리를 이해하고, 그 흐름을 읽고,
그에 맞춰 공존하는 법은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지구가 거세게 숨을 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


태풍은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물음표다.

너희가 쌓아놓은 열기, 이걸 어디로 풀까?


지구는 지금도 숨을 쉬고 있다.

그 숨결 위에 서 있는 우리는, 이제 그 바람의 의미를 진지하게 바라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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