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자유주의 VS 공동체주의]

'나의 능력'이 '나의 노력'때문만이 아닌 이유


'존 롤스'의 <자유주의>



존 롤스가 말하는 자유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 번째 원칙은 '기본적 자유'에 관한 것으로

롤스는 자유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원칙은 '차등의 원칙'이다.

이 원칙을 통해 롤스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사회라면


그러한 사회는 약자에게 유리해질 수 있게 개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불평등의 시정을 촉구한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이러한 원칙을 위해 롤스는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고 하는데

'무지의 베일'을 통해서 불평등을 시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지의 베일'이란

자신과 타인의 개인 정보를 가리기 위한 것이다.

즉 자신이 사회에서 어떤 지위인지,

자산과 능력은 어떠한지와 같은 정보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을 말한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그러한 조건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인지를 생각하자'라고

존 롤스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의 <공동체주의>



마이클 샌델은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을 적용하게 되면

개개인의 구체적인 상황

곧 지위와 신분, 성별과 경제 상황, 타고난 자질 등을 일절 무시한 후

이러한 상황에서 개개인이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가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여기서 규정된 인간에게는 '무연고적 자아'만이 남는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라고 주장한다.


마이클 샌델은

1953년 태생의 미국의 정치철학자이다.

그는 온라인 수강이 가능한 하버드 교육 강의 'Justice'로 익히 알려진 바 있으며,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1982년)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오늘날 대표적인 공동체주의자, 공화주의자이며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가로 유명하다.

그는 현재 미국 예술 및 과학 아카데미의 특별 연구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 하버드 대학교수로 재임 중이다.

[출처] 위키 백과


구글 이미지 -마이클 샌델-


마이클 샌델은

존 롤스가 말하는 '무연고적 자아'와 대비되는 <연고적 자아>개념을 주장하는데

인간은 혼자서 자족하며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므로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그만큼 그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상황을 무시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이처럼 샌델은

한 개인의 재능을 개인과 떼어 내서 생각할 수 없다고 보고

그 재능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지지와 원조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한 까닭에

재능의 성과를 한 사람이 독점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샌델은 개개인을 <연고적 자아>로 파악하는데

이는 공동체 안에서 인간의 정체성이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동체 중심을 '공동체주의'라고 한다.


공동체주의는 자유주의에 반대되는 정치사상으로, 20세기 후반에 등장하였다.

마이클 샌델, 앨러스터 매킨타이어, 마이클 왈처, 찰스 테일러 등이 대표적인 학자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자유주의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의 입장을 절충한 입장을 말한다.


또한

공동체주의는 '미덕' 혹은 '덕성'이라 불리는 가치를 중시하는 인간 중심적 이론이다.


에치오니 등이 주창한 공동체주의는

개인의 자유보다는 '평등'의 이념

권리보다는 '책임'

가치중립적 방임보다는 '가치판단적 담론'을 중시한다.

[출처] 위키백과




'세계화'와 '디지털 권력'으로 인해 나타나는 부의 편중으로 인한 '빈부격차'

과정보다는 '결과 중심적인 시각과 사회적인 분위기'

도덕적 의무와 책임보다는 '권리'

일반 상식과 도덕보다는 모든 것을 아우르지 못하는 '불완전한 법'

AI 의 등장으로 인한 '일자리 상실'

'미래에 대한 공포'

......


이러한 것으로 인해 개개인은 무력화되어 버렸고 희망이 상실되었다.

그리하여 개개인은

무분별하게 자기 계발에 열을 올리며 높이 올라가기 위해

자신을 학대하고 비관하고 있으며

1등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시각이 개개인을 더욱더 병들게 하고 있다.


어떤 공동체라는 무리에 속해 있으면서도

나만 먼저 생각하고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나 자신도 문제가 있겠지만 이렇게 되도록 한 사회적 문제도 있는 것이다.


`무연고적 자아`이든 `연고적 자아`이든

우리는 살면서 두 가지 모두를 접하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서로 간에 어떤 맺어진 관계가 있든지 없든지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므로 두 가지의 특질을 모두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특히 지금 우리들은 1등만 너무 높여주고 추켜주는 이런 분위기이다.

예를 들면 올림픽에서 금은동메달을 딴 선수만 높이 추켜 세워주는 그런 분위기,

프로 스포츠에서 경기에 영향력 있는 선수만을 너무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

그래서 오늘 못하면 내일은 추락하는 분위기,

등등


이제는 개선할 때가 되었다.

1등이 되어 '이룬 자'도 결코 혼자서 모든 것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룬 자'가 알든 모르든

결과 중심의 사회 분위기는 `이룬 자`가 '이룬 자'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4등, 5등, 6등...... 은 주눅 들 수밖에 없는 이러한 분위기를

사회가 먼저 나서서 깨뜨려야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나의 능력'이 '나의 노력'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이룬 자' 외에 '이루지 못한 자'도

정말 성실하게 노력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니 올림픽에서 4,5,6,7,8,9,10등의 선수들은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10등 안에 있는 선수들이다.

이들은 이룬 자들이다.


서울대가 세계에서 몇 위인지 생각해 보면 느끼게 될 것이다.

일단 100위권 밖이다.

그런데도 모두가 서울대를 외친다. 국내 1위다.


그러면 올림픽 4,5,6,7,8,9,10등은 얼마나 대단한 쾌거인가.

이들을 인정하고 보여주는 기능을 사회가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예능 방송에서 금은동메달 선수만 초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의 선수들도 초청해서 그들이 노력한 수고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비록 이들이 메달권에는 못 들었지만 메달권 선수와 똑같은 양의 훈련과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메달권 선수들은 1% 아니 0.1%의 운運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방송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방송을 통해 자연과 우주의 세상은 운運이 작용하여 천지불인天地不仁일지라도

인간들의 세상은 운運이 작용하지 않아서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 노력과 정신력만으로도 그들을 인정하고 공감하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세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1등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이런 편향적인 사고는 사라질 것이고

공동체주의가 제창하는 이론들이 조금은 실현되는 발판이 마련될 것이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개선하다 보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자유 속에서 '평등'을

권리 속에서 '책임과 의무'를

법속에서 '도덕과 상식'을


먼저 찾는 이러한 사회적인 `아우라`가 형성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내적>으로는 평등, 책임과 의무, 도덕과 상식을 내세우면서

이루지 못한 자들도 아우를 수 있는 사회적인 아우라를 만드는 반면에


<국제적>으로는 큰소리칠 수 있도록 자유와 권리와 법을 내세워야 한다.

지금 우리는 안에서는 큰소리치고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못하는대주의적인 자세인데

국제적으로는 모든 나라가 자국중심을 내세우면서 큰소리치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우리가 휘말려서는 안 될 것이고 당당하게 대한민국을 내세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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