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자 VS 호모 사케르]

우리 모두가 `호모 사케르`가 될 수 있는 이유


조르조 아감벤은

조르조 아감벤은 1942년 태생의 현역으로 이탈리아 철학자이다.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철학자로는 마르틴 하이데거, 발터 벤야민, 미셸 푸코가 있다.
90년대에는 독일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정치철학적인 글들을 쓰기 시작했으며,

그는 이후 일련의 <호모 사케르> 작업을 통해서 "최근 몇 년간 내가 많이 배운 학자"라고 부르는
푸코의 '생명정치'의 개념을 확장시키는 작업에 열중했다.

최근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건축대학 디자인예술학과 교수, 미국 버클리대학교 방문교수,
프랑스 파리국제철학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저술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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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아감벤은

1995년에 <호모 사케르>를 출간하면서 누구나 호모 사케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호모 사케르(Homo Sacer)`란


'신성한 인간'이라는 뜻의 라틴어 어휘로
고대의 로마법에서 누구나 죽여도 살해의 책임을 지진 않지만,
희생물로는 바쳐질 수 없는 존재를 가리키던 단어다.
[출처] 나무위키


아감벤은

`카를 슈미트`의 `예외`에 대한 주장을 도입하여

`호모 사케르`를 `예외 상태에 있는 삶`이라고 말한다.


`카를 슈미트`는

"독재"라는 개념을 둘러싼 금기시를 제거하고 의회정치와 관료제의 수단을 통해
권력이 행사될 때마다 이 개념이 암묵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였다.

국가의 헌법이 민주적이라면,
민주적 원칙을 예외적으로 부정하는 모든 행위, 다수의 승인 없이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모든 행위를 독재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한다.

슈미트에 따르면 결정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모든 정부는
헌법 내에 독재적 요소를 포함해야만 한다.

독일어에서 Ausnahmezustand라는 말은 "비상사태"나 "계엄"으로 번역될 수 있지만
문자 그대로는 "예외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는 슈미트에 따르면 일반적인 모든 법적 제약으로부터 행정부를 해방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외"라는 용어의 사용은 여기서 강조되어야 한다.
[출처] 위키백과


카를 슈미트의 `예외 상태`의 이론을 바탕으로 아감벤은

죄인이 폴리스(사회)에서 추방당하는 것은
그 당시에는 '살아 있어도 사는 것이 아닌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과 같다고 본 것이다.

여기서 추방령을 당한 상태의 사람은 '호모 사케르'가 되며,
추방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닌 자를 두고는 '주권자'라고 정의한다.
이 `주권자`는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감벤은 과거에는 독재자가 주권자였지만 지금 시대의 주권자는 '국가'라고 주장한다.
국가는 수용소를 통해 '주권자'가 되고,
반대로 수용소에 갇힌 사람은 `호모 사케르`가 되는 것이다.

수용소는 죄를 지은 사람을 형법에 따라 가두는 '감옥'과는 다르다.
수용소는 죄가 있는지 없는지 모호한 상태에서 사람을 구금하는 것이다.

수용소에서는 국가 안보에 위험한 사람이라고 규정되면 어떤 기소나 재판도 없이
일단 가두어 놓는다. 국가 안보라는 명목으로 인신을 구속하는 초법적인 형태의 시설인 것이다.
여기에는 테러리스트도 있겠지만, 억울하게 구금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수용소는 법의 보호를 받게 할 것인지 받지 못하게 할 것인지가 결정되는 곳이며,
이것이 국가가 '생명'을 '관리'하면서 권력을 유지하는 핵심이 된다고 아감벤은 주장한다.
[출처] 나무위키


이처럼 `호모 사케르`는 고대 로마법이 통용되는 시대만이 아니라

현대사회 도처에서도 볼 수 있다.


강제수용소나 난민 수용소, 입국 보류 구역 등에서 사는 사람들은
`호모 사케르`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또 아감벤은 `안락사`나 `뇌사`같은 현대 의료에서도이 `호모 사케르`를 확장하여 적용하고 있다.
안락사로 죽음을 앞둔 사람이나 뇌사한 몸은 이미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삶`으로 인식되어
살해되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그러므로


"아감벤은 누구나 `호모 사케르`가 될 수 있다."

고 주장한다.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미국 LA 시위 사태가 `호모 사케르`를 잘 말해주고 있다.


미국 LA 시위 사태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단속 및 추방 정책을 둘러싼
캘리포니아주 최대 도시 로스앤젤레스(LA) 시위 사태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차기 잠룡'이 충돌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으로 차기 대선 후보군에 포함된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위 진압을 위한 주방위군 배치를 명령한 것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뉴섬 주지사의 체포를 지지하고 나섰다.
[출처]연합뉴스 -트럼프, LA 시위에 "뉴섬 지사 체포 지지" vs 뉴섬 "트럼프 제소"(종합)


불법 이민자들이 궁극적인 `호모 사케르`이지만

이 사건의 영향으로 LA 시민도 `호모 사케르`가 되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트럼프의 주방위군을 투입함으로써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어쩌면 `호모 사케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정도면 '주권자'일 텐데도 말이다.


쉽게 말하면

"주권자는 트럼프 한 사람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호모 사케르` 이다."
를 말해주는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이 정책을 밀어 부칠 수 있는 이유는

불법으로 자행되어 온 관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법 이민자는 문제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사회 전반적인 문제점으로 모든 것이 구조적으로 얽혀있는 먹이 그물과 같다.

미국에 있는 불법 이민자들도 문제이지만

그들이 자신의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한

그 나라의 사회도 문제점을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들이 미국에 들어온 과정과 계속 체류해도

별문제가 드러나지 않도록 한 미국의 행정도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이 맞물리면서 수 년 혹은 수 십 년 동안의 세월 동안 고착화 되어진

이민자 곧 불법 이민자들을 지금 갑자기 어떤 정책 하나로 강제로 쫓아내는 것도 문제이다.


가만히 있을 때는 언제고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고 180도 다른 정책을 취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사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어 버리는 이런 얄팍한 정책은
우리 모두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주권자 자신을 위한 정책일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예외 상태`이며 곧 `호모 사케르`와 같다는 것이다.


어쩌면 주권자마다의 정책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50%를 넘어선 지지율도 아닌 경우가 더 많으므로

주권자의 생각대로 하는 것은 주제를 넘는 것이다.


국가는 백년지 대계百年之大計의 큰 줄기를 따라서

정책을 취해야 하는 것이 자명할 것이다.


나라의 일이 4년 5년마다 바뀐다는 것은 한편으로 동네 구멍가게와 무엇이 다른가.


상황에 따른 변화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고 전면적으로 바꿔 버리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만 아니라 최고로 어리석은 판단이다.


그동안 해온 시간 동안 무언가 뿌리내려져 온 것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주권자`가 우리 모두를 `호모 사케르`로 만들지 않는 방법]


`호모 사케르`는 우리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다.

`주권자`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주권자는 양지와 음지의 `상생 관계`를 보고 배워야 한다.


양지가 펼쳐지다가 음지와 만나는 순간

섞이면서 타협하다가 어느 한쪽이 양보를 하게 된다.

그때 섞이게 되는 것이다.

양보 없이는 절대로 섞일 수가 없다.


양지가 음지의 특징 앞에서 고개를 숙여주고 받아주기 때문에

섞이게 되는 것이다.


이 섞이는 과정을 통해 양지가 펼쳐질 수도 있고

음지가 펼쳐질 수도 있는 것이다.


양지가 펼쳐지든 음지가 펼쳐지든

섞이는 과정은 없을 수가 없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러므로 이 섞이는 과정이야말로 주권자가 보고 배워야 한다.


이처럼 무언가 다른 정책을 취하려면

타협하면서 고개 숙이고 양보하면서 행해야 한다.


지금 LA 시위처럼 어느 날 갑자기 정책을 바꾸어 시행하게 되면 거부감이 커져

저항이 심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권자는 기존의 정책을 바꾸려고 할 경우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접근해가야 한다.

강하게 해서는 안 되고 부드럽고 온유한 모습으로 설득하고 타협하고 양보해야 한다.


주권자가 먼저 들어주고 타협하고 양보하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도 들어주고 타협하고 양보하게 되어질 것이고
또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


양지만 양보하면 절대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양지와 음지 둘 다 동시에 양보하기 때문에 섞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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