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의 공동체 VS 시민적 공동체]

`마이클 샌델`과 `장 뤽 낭시`의 <공동체 철학>을 융합해야 하는 이유


장 뤽 낭시는

1940년 태생으로 프랑스 보르도 근처의 코데랑 출신이다.

1968부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대학에서 철학과 미학을 가르쳤다.

헤겔과 니체, 하이데거 사상으로부터 출발해 독일 낭만주의를 계승, 재해석하며

지금까지도 정치철학과 미학 분야에서 독창적인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

특히 사회주의 몰락 이후에 가능한 공산주의와 공동체의 문제를 급진적으로 다루었다.

자크 랑시에르와 함께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들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무위의 공동체>, <복수적 단수의 존재>등이 있다.

[출처] 교보문고 저자 소개


구글 이미지 -장 뤽 낭시-



장 뤽 낭시는



`공존`이라는 말은 `하이데거`가 제창한 개념이지만

"대략적으로, 종속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면서

자기와 타자, 공동체까지 포함하는 `공존`을 전면에 내세우고 논의를 펼친다.


그렇게 하면 각자가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가령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해 보면

나는 여자(남자)이며, 학생(교사)이며, 자식(부모)이며, 프랑스인(한국인)이며 등등

이 중 어느 것을 취해도 늘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다.


공동체라고 해도 구성원을 `동질화한 단일한 통일체`를 만들 수 없는데

하나의 공동체가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낭시는 한편으로 개인주의적인 주체관을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체주의적인 사회관을 불식하고

새로운 '사회적인 존재론'을 제시하고 있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장 뤽 낭시는

<복수적 단수의 존재>와 <무위의 공동체>라는 책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사회적인 존재론을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낭시는 공동체 문제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데

‘공동체’를 사회와 일치시키려는 이상주의적, 전체주의적 시도를 비판하고,

사회 내로 환원되지 않는 또는 법, 이데올로기, 국가, 민족 등에 고착되지 않는

‘관계’ 자체에 주목한다.



그 `관계`는 단순히 반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진정한 조건이자 근거인

우리의 자연적인 `평등의 장소`이며 `소통의 장소`이다.

낭시는 그 장소를 ‘무위無爲’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또는


어떤 중심을 세우지 않고, 타자에게 기울며, ‘함께 함’이

곧 목적인 공동체를 낭시는 이를 ‘무위無爲’라 부른다

[출처] 무위의 공동체 -장 뤽 낭시, 그린비 출판 책 소개-



다시 말하면 <무위의 공동체>란 어떤 중심을 세우지 않고, 타자에게 기울며,

'함께 함'이 목적인 공동체이면서 `평등의 장소`이며 `소통의 장소`란 뜻이다.


쉽게 말하면

낭시가 말하는 '무위'는 마치 `노자`의 `무위無爲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노자`의 `무위無爲 사상`은 모든 거짓됨과 인위적인 것에서

벗어나려는 사상으로 현실과 괴리감이 있다.

무위無爲를 향해서 사회를 곧 공동체를 끌고 나가야 한다는 주장일 것이다.


아울러 낭시는



우리 시대에 여전히 개인주의를 넘어서는 공동존재와 공동체에 대한 요구가

취소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공동체가 `어떠한 종류로 구성된 사회`와도 일치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 `무위의 장소` 곧 어떤 중심을 세우지 않고, 타자에게 기울며,

‘함께 함’이 목적인 공동체가 있어야 할 장소가 결코 어떤 목적에 따라

규정되거나 고정되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라는 존재가 어떠한 것에도 종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낭시의 주장은 사회가 `무위의 관계`를 잊어버릴 때

곧 어떤 중심을 세우지 않고, 타자에게 기울며, ‘함께 함’이 목적인

공동체를 무시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파탄의 위험에 놓인다는 것이다.


`평등의 장소`이자 `소통의 장소`가 모든 사회의 모든 정치적, 경제적 관계의 중심에

`보이지 않게` 또는 `밝힐 수 없이` 놓여 있다는 것이 바로 `무위의 관계`라는 것이다.

[출처] 무위의 공동체 -장 뤽 낭시, 그린비 출판 책 소개-



여기서 `마이클 샌델`이 주장하는

연고적 자아로서의 `공동체 주의`와 연결 지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마이클 샌델은

`시민적 공화주의`를 주장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의 관점을 내세운다.




첫 번째는 자유의 이해이다.

단, 자유주의와 같이 자유를 `선택의 자유`로 보기보다는 `자기 통치(self-rule)`로

파악하고 있다.

('자기 통치'라는 용어가 거창해 보이는데 영어로 self rule인 것을 보면

자기 스스로 규칙을 지키려는 노력을 의미한다고 보면 되겠다.)


두 번째는 공동체에서 공유되는 `공동선`을 중시하고

이것을 사람들이 공동의 열의 안에서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 번째는 시민으로서의 `덕`을 정부가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어 센델은

세계화가 진전되는 가운데 개개인은 무력한 상태에 처해지고

희망을 잃어 가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적 공화주의`를 제창하고

공동체 주의를 근간으로 삼으며 살아갈 것을 호소하고 있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낭시의 `단수가 아닌 복수`로서의 개인과

샌델의 `연고적 자아`로서의 개인이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함께 살고 있는 `무리`이다.

이 `무리`가 `공동체`라는 것이고 낭시는 `무위의 공동체`를 주장하고

샌델은 `시민적 공화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낭시의 `무위의 공동체`는 너무 이상적인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고

샌델이 말하는 `시민적 공화주의`는 하나의 `무리`를 상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인이 속한 그 `무리`라는 것은 하나의 `무리`가 아닐 것이므로

낭시가 말한 것처럼 그 `무리`는 다양하게 형성될 것이다.


이 다양한 `무리`를 하나로 묶어서 지향해야 되는 `무위無爲의 공동체`가

낭시에게는 `새로운 사회적인 존재`로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말하는 것이다.


결국 개인이 속한 그 `무리`를 통합하는 과정이 시대의 과제이다.


그 `무리`라는 집단은 샌델이 말한 것처럼

자유를 지향하되 스스로 규칙을 준수해야 하는 자기 통치(self-rule) 가 있어야 하고

함께 속해 있는 무리와 무리들의 공동선을 중시해야 하고

이 `무리`의 화합과 통합을 위해 국가가 `무리`를 이루는 시민으로서의

`덕`을 가르쳐야 하고


그래서

낭시가 주장하는 어떤 중심을 세우지 않고,

타자에게 기울며, ‘함께 함’을 목적으로 하면서

`평등의 장소`이자 `소통의 장소`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상을

바랄 수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노자'가 말하는 '무위'의 '도'가 이루어진 공동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보다는 조금이나마 만족스러운 사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아울러

이렇게 탄생한 공동체가 '함께 함'을 내세우면서

평등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억압하고 침해하지 못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만일

역사와 철학이 전체에서 개인으로 흘러왔고

개인에서 다시 전체로 흘러가면서 순환하는 것이라면


그냥 단순히 변함없는 그대로의 순환이 아니라

인간이 원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진 순환이 될 것이다.


이렇게 다시 전체로 흘러가더라도 과거와는 달라져야 할 것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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