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은
1949년 태생으로 아직 현역이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대륙 철학자이자 헤겔, 마르크스, 자크 라캉 정신분석학에
기반한 비판이론가이다.
그는 정치이론, 영화이론, 이론 정신분석학에 공헌을 해왔다.
1989년 국제적 명성을 안긴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을 세상에 내놓은 이후,
급진적 정치이론, 정신분석학, 현대철학에서의 독창적 통찰을 바탕으로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대중문화를 자유롭게 꿰어내며 전방위적 지평의 사유를 전개하는 독보적인 철학자로 자리매김했다.
저서로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새로운 계급투쟁> 등이 있고, 공저로 <거대한 후퇴>, <지속 가능한 미래>,
<나의 타자>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yes24 저자 소개
구글 이미지 -슬라보예 지젝-
사상가로서의 지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포스트모던 시대의 공산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다.
포스트모던으로 대표되는 현대 세계를 이해함으로써
공산주의자로서 거기에 대항할 방법을 찾는 것이 지젝의 전략이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슬라보예 지젝은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에서
지금까지 몇몇 사회분석가와 경제학자들이 주장했듯이
우리 시대에 폭발적으로 치솟은 경제 생산성으로 인해
우리는 80 대 20 법칙의 극단적 실례와 마주하게 된다면서
다가오는 세계 경제는 단지 20%의 노동력이
필요로 되는 모든 일을 해 낼 수 있는 상태를 향해 갈 것이며
따라서 80%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그리하여 잠재적 실업상태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 논리가 극단에 이르면
"그것을 자기부정으로 이끄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즉 80%의 사람들을 무의미하고 쓸모없게 만드는 체제는
그 자체가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것이 아닌가?"
[출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슬라보예 지젝 지음, 창비출판-
라며 문제점을 던지고 있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라는 책은 2010년에 출간되었다.
2010년에 분석한 시대 상황이
2025년의 시대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쩌면 더 심화되었을지도 모른다.
서브 프라임 사태, 리먼브라더스 부도 등
금융 신자유주의로 인해 발생한 미국 발 금융위기는 문제를 일으킨 주범으로 지목된
거대 금융기관들은 비록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난을 받기는 했어도,
오바마 정부의 구제금융 안을 통해 손실을 입지 않도록 최대한 보호되었고
따라서 이윤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히려 위험에 노출된 이들은 금융 붕괴로 인해 직업과 저축을 잃은 수많은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이 실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맹목적 운명”처럼 전가된 위험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이 보장된 것처럼 ‘믿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결국 소수만이 `선택하기(choosing)`를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기(risking)`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마치 자유로운 듯이 살도록 강요”당하며 살아갈 뿐이다.
[출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슬라보예 지젝 지음, 창비출판-
또 특히
`자본가의 재산 축적`이 `자유의지로 행한 결과의 성공`으로 둔갑시킨다고 주장한다.
빈곤과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부를 하는
`빌 게이츠`와 같이 새로운 유형의 선하고 ‘쿨한’ 자본가를
선망과 존경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빌 게이츠`의 사회적 자본 독점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출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슬라보예 지젝 지음, 창비출판-
`위기`는
사람들을 뒤흔들어 자족성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자기 삶의 근본원리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강제하는 게 사실이나
가장 자발적인 최초의 반응은 `패닉`이며 이는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이어진다.
이러한 `위기`에서지배 이데올로기의 기본적 전제들은
의문에 붙여지기는커녕 훨씬 더 극렬하게 강조된다.
현재 진행되는 이러한 `위기`가
`나오미 클라인`이 말한 ‘충격 원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용될 것이라는 데 있다.
말하자면
금융위기가 발휘하는 일차적 효과는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의문이라기보다
더 심도 있는 ‘구조조정’을 강제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초석을 닦는 것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출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슬라보예 지젝 지음, 창비출판-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문제점을 거론한다는 것은
역사의 ‘객관적 경향’을 따르고 역사적 필연성의 기차에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필연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젝은 말하고 있다.
그것은 “순수한 주의주의”
즉 “역사적 필연을 거슬러 행동하려는 우리의 자유로운 결정”이라는 것이다.
이 자유로운 결정을 하는 자를 지젝은 ‘주체’로 표현하고 있다.
[출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슬라보예 지젝 지음, 창비출판-
말하자면
역사는 승자독식으로 흘러가는 것이 필연이므로
역사는 승자의 과거이다.
이처럼 역사는 정의, 옳음, 아름다움, 추함, 거짓 등이 없이
오직 살아남은 자가 승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필연이라고 지젝은 말하면서
“역사적 필연을 거슬러 행동하려는 우리의 자유로운 결정”
이 필요하고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결국 지젝이 하고 싶은 말은
`몫이 없는 부분`이자 `배제된 자`들이 바로 `우리`라는 점을 깨닫고
`우리`를 대신할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비로소 알게 될 때
‘출구 없음’의 문제, 즉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패권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지젝이 강력하게 주문하는 것은 `주체`의 전면적 재무장이다.
[출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슬라보예 지젝 지음, 창비출판-
그래서
`슬라보예 지젝`은 세계에서 가장 도발적인 철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모든 학자들의 논지가 비슷한 이유
모든 철학자들이 하는 논지가 거의 똑같다.
학자들의 지금 보고 있는 세상이
세계가 이렇게 흘러왔고
앞으로 세계가 흘러가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위험에 빠졌고
부가 한쪽으로 쏠려서 인간이 인간을 농장화하여 부역시키고 있고
환경, 기후 같은 자연재해가 인간에게 다가오고 있고
인간이 만든 AI 가 오히려 인간에게 위협이 되고 있고
......
이러한 위험이 앞에 산적해 있다.
그래서 학자들이 이러한 비슷한 논지를 주장하게 되는 것이고
그들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함께 연구하고 토론한 것이 아니기에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뿐이다.
이들의 연구를 `하나의 이론체계`로 구체화시키는 것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방패가 될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의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있다.
자본주의 내에서도 무상급식을 하는 것은 사회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공산주의, 우파, 좌파와 같은 용어에 얽매이면
그 용어를 벗어난 논지는 딜레마에 빠져 버리게 된다.
그래서 결국 정작 중요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을 용어가 아닌 `내용`만을 놓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정답에 가장 근접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