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민주-자본주의 VS 공산-사회주의]

기울어진 저울을 수평으로 만드는 것이 첫 번째인 이유

카를 마르크스는

1818년 태생의 독일의 공산주의 혁명가,

혁명적 사회주의자, 철학자, 경제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 정치이론가, 언론인이다.

저서로 <공산당 선언>, <자본론>, <독일 이데올로기>, <철학의 빈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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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이미지 -카를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이전부터 내려오던 `공상적 사회주의`를 비판하면서


공상적 사회주의가 선호하는 소규모 사회주의 공동체는
주변부로 밀려나 빈곤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거대 규모의 경제체제 변혁이야말로 진정한 변혁을 이루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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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말한다.


`공상적 사회주의`는


이상적 사회주의 또는 초기 사회주의라 불리고 카를 마르크스 이전의
사회주의 사상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즉, 마르크스에 의해 논리를 갖춘 사회주의인 마르크스주의(과학적 사회주의)가 등장하기 이전에
존재하던 원류 사회주의를 일컫는다.

공상적 사회주의의 시초는 영국 노동운동가인 '로버트 오언'과 잉글랜드의 '토머스 모어'의
사회주의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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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인간을 착취하고 이익을 내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의 해악에는
민감하여 이를 저지할 열의가 강하나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게 아니라 기독교적인 이상 사회를 세우고자 했으므로
관념적이며, 영원한 정의나 성서에서 이론의 근거를 구하려 하기 때문에

그들의 논리는 종교적이기는 해도, 현실성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의 존재와 계급투쟁의 전망을 지니지 않았다.

또한 민중을 구제나 도움을 주어야 할 대상으로 볼 뿐이지
계급투쟁을 통한 역사 발전의 뿌리로 여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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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이다.


이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상품을 통해 생산의 사회적 관계(노사관계 등)를 조율하는데
이때 노동 역시 그 상품에 포함되며 시장에서 사고파는 대상이 된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누군가 자신의 노동을 스스로 소유하기를 포기하는 것은
스스로의 본성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며 정신적 상실이라 할 수 있는 심각한 일이다.
왜냐하면 노동력은 그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이 상실을 `상품 물신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삶과 움직임은 사실 상품에 의해 조정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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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주장한다.


또한 마르크스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며 자유롭고 생산적이며 창조적인 과업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강제적이고 탈인간적인 것으로 바뀌었으며
자본주의 체제는 그 경향의 첨단이다.

마르크스는 이것이 의도적인 과정이 아니며
개인이나 심지어 국가조차 이 경제의 힘에 거스를 수 없다.

[출처] 위키백과


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마르크스는


사회의 경제구조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면서
그런 까닭에 사회의 경제구조를 `토대`라 부르고
그 토대에 심어진 인간의 의식 형태, 곧 `이데올로기`가 `상부구조`로 `토대` 위에 서는 것이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출판-


라고 말하고


토대 또는 하부구조란 경제체제이며 상부구조란 문화정치체제이다.
마르크스는 경제적 토대와 사회적 상부구조의 괴리가 사회의 분열과 갈등의 주원인이다.

[출처] 위키백과


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비판을 강조하고 그것을 대체할 공산주의 사회의 도래를 논했지만
적어도 자본제 사회가 과거의 사회(노예제 및 봉건제 사회) 들보다는 진보된 것임을 인정

[출처] 위키백과


하고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점이

사유재산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 국가가 통제하는냐 통제하지 않는냐, 평등과 자유의 비중 등으로

구분하는데 요즘은 그 경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민주주의에서도 국가가 통제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어느 하나의 이데올로기만으로 현 상황을 표현하는 것은

여지를 남김없이 규정함으로써 발생하는 폐단을 모른체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 모든 이데올로기는 모두가 `잘 살기`위해서 일 것이다.

윗물들은 자신들의 그 무엇을 위해 머리를 짜내어 어떤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표면적으로는 모두가 `잘 살기` 위해서 한다고 하고 있다.


지금 현재 우리 사회는 `기울어진 저울`이다.


구글 이미지 -기울어진 저울-



기울어진 저울은 비정상이다.

저울이 한쪽으로 점점 기울어지다 보면 그 저울은 필히 넘어질 것이다.


기울어진 저울을 올바르게 하는 방법은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한쪽으로 치우친 것들을 다른 한쪽으로 옮기는 것뿐이다.


문제는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그 무엇을 아무도 옮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럴 것이다. 지금과 같은 현 상황에서는 내가 `더 가진 그 무엇`을 내놓을 마땅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 `부와 권력과 법 등`을 창출한 후

그 `부와 권력과 법 등`을 어떻게 분배했고 누렸고 판단해왔는지를 생각해 보면 답은 쉽게 보일지도 모른다.


아마 지금 윗물들은 `내가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이 맞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울은 기울어져 왔고, 기울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기울어질 것이고

그래서 결국 넘어질 것이다.


결국 마지막은 아무도 그 `부와 권력과 법 등`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


차라리 윗물들이 지금 그 `부와 권력과 법 등`을 저쪽으로 옮겨 수평을 만든 후

그때 윗물들이 다시 `부와 권력과 법 등`을 가져간다면


영원토록 `부와 권력과 법 등`을 움켜쥘 수가 있을 텐데 말이다.

윗물들이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영원한 `부와 권력과 법 등` 을 버리고 있는 형국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말하는

윗물들의 '더 가진 그 무엇'을 자연스럽게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상의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기울어진 저울이 자연스럽게 수평이 될 것이고


또한 이러한 '상상의 질서'가

윗물들이 `부와 권력과 법 등`을 영원히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니까 말이다.


아마 이 `상상의 질서`는

외계인이 침략해서 지구가 멸망당하는 상황 속에서

무기를 만들기 위해 윗물들이 가진 것을 모두 내놓을 수밖에 없는 시나리오외에는 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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