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에 따른 해석이 다른 이유
프리드리히 니체는
1844년 태생의 독일의 철학자이자 작가이다.
주요 철학적 사상에는 신은 죽었다, 힘에의 의지, 위버멘쉬, 영원회귀, 운명을 사랑하라 등이 있다.
저서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비극의 탄생>, <아침놀>, <우상의 황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즐거운 학문>,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이 사람을 보라>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나무위키
니체는
도덕의 폐해를 강조하면서 도덕이나 진리,
정의 같은 것은 절대로 없으며 그 같은 개념의 뒤를 보면 어디나 어느 집단 또는
계급의 권력 의지가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
[출처] 권력의지 -니체, 부글북스 출판-
하고 있다.
또 니체는
초인超人 개념을 내세우며 개인주의자의 도덕을
옹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집단에게 어울리는 이상이 있다는 점을 니체도 인정한다.
다만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는
기독교의 이상의 ‘횡포’에 종지부를 찍고, 다른 이상들, 다시 말해 인간을 보다 강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이상들에게도 길을 열어주자고
[출처] 권력의지 -니체, 부글북스 출판-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즉 니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권력 의지는 생명체가 스스로를 보존하고 유지하고
발달시키려는 의지라면서 생존 본능은 권력 의지가 힘을 발휘한 결과이지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이미 이뤄진 상태를 말하는 ‘존재’보다
변화의 상태에 있는 ‘생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우리의 눈에 확인되는 그런 자연성을
인간이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출처] 권력의지 -니체, 부글북스 출판-
고 말한다.
이러한 니체의 권력에 대한 개념을 나치가 잘못 이용한 것처럼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하는 개념이다.
니체가 말하는 권력에의 의지는
자기 보존과 권력 상승에 대한 지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권력에의 의지를 통해 무엇인가를 지배해서 주인이 되고
그것을 자신을 위해 효과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인간에게 유용하도록 이용하기 위한 것이
과학기술을 연구개발하는 이유이고
이웃 사랑과 도덕과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도
주인이 되려 하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뜻하는 것이다.
이처럼 니체는 정치권력으로서의 권력이 아니라
세계의 근본적 원리로 권력을 이해했던 것이다.
니체는
인간 사회도, 자연계도 힘과 힘의 관계로 성립한다.
그러므로 모든 살아 있는 것에 권력에의 의지 또한 있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며 근대의 학문과 도덕을 해체하고 있다.
그런데 니체는 `도덕의 폐해`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자신의 책 <도덕의 계보>에서
도덕의 기원을 묻고, 도덕이 어디에서 발생했는가를 되짚어 올라간다.
여기서 니체는 `르상티망(원한, 복수심)`이라는 욕망에서
이웃 사랑을 설파하는 도덕과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가 탄생했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고 말한다.
이러한 `르상티망ressentiment(원한, 복수심)`이 나온 배경으로
귀족들에게 억압당하고 짓밟히고 능욕당한 자들은
무력감에서 비롯된 복수심 서린 간계로 자기들끼리
"우리는 저 악한 자들과는 다른 존재, 선한 존재가 되자!
선한 인간이란 능욕하지 않는 자, 그 누구도 해치지 않는 자, 공격하지 않는 자, 보복하지 않는 자,
우리처럼 인내하고 겸손하며 올바른 자이다."
[출처] 나무위키 -도덕의 계보-
라고 말할 정도로 무력함, 약함, 복수심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약한 자들은 르상티망을 가지고,
자신의 적과 정복자들의 가치를 철저하게 '악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고
이른바 노예도덕에서는
보복하지 못하는 무력함이 '선량함'으로 바뀌고,
겁에 가득 찬 비굴함은 '겸손'으로 바뀌며,
자신이 증오하는 자들에 대한 복종은 '순종'으로 바뀌고,
약한 자의 비공격성, 그가 풍부하게 지닌 비겁함 자체,
문 앞에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은 '인내'로 바뀐다.
여기에선 `복수할 수 없음`이 '복수하고 싶어 하지 않음`이라고 불리고
심지어는 `용서`라고까지 불린다.
[출처] 나무위키 -도덕의 계보-
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약함과 무력함과 비굴함과 복종과 공격하지 아니함을
승자 또는 귀족들의 미덕으로 바꾸어
약자들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도덕이고 종교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기독교는 증오심에서 발원한 위선 도덕이며,
강자를 약자에게 종속시키려는 도덕, ‘노예도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래의 고귀한 도덕은
자연스런 ‘귀족도덕(Junker Philosophie)’의 입장에서 구해야 한다고 보고
평등 이념에 의해 가치의 위계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인간을 평균화시키는 ‘이웃사랑’의 도덕에 대해서
강자의 전형인 ‘초인’의 육성을 목표로 노력하는
‘원인애遠人愛’의 도덕이야말로 참된 인도성人道性을 관철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출처] 위키백과 -도덕의 계보-
이처럼 약자들은 스스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도덕과 종교의 장치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뿐이라는 말이다.
약자들의 논리에 따라
어떤 보편적인 도덕과 종교의 진리가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도덕적이고 종교적으로는 무조건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뺨을 맞았다면
그때 생각하고 느껴야 하는 것은 다른 쪽 뺨도 내밀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이처럼 실제로 우리들은 똑같은 상황일지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철학과는 다른
너무나 동떨어진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편적인 도덕과 종교의 윤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니체가 말하는 것이다.
결국 어떤 상황에 대한 나의 `대처`(니체는 이것을 `충동`이라고 말하고 있다)에 따라
상황이 바뀌므로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말을 한 것뿐이지
실제로 신이 죽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누구에게나 똑같은 보편적인 진리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어떤 상황에 따른 `해석`뿐이다.
왜냐하면 똑같은 상황일지라도 각자의 상황에 따라 주어진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 따른 해석을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도덕과 종교적으로 해석하면
없던 것도 있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나는 되지만 너는 안 된다`는 이러한 확증편향적인 해석을 낳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 따른 `해석의 차이`를 `권력에의 의지`라고
니체는 말하고 있다.
여기서 권력이라는 말을 `내가 추구하고 있는 그 무엇`으로 바꾸면
니체가 한 말들이 모두 이해가 될 것이다.
한편으론 니체가 한 사람이 추구해서 이루어낸 어떤 것을
'권력'이라는 용어로 표현한 것이 잘못된 표현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히틀러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니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니체가 한 말들은 정치적으로 사람들을 선동하여
특정한 한 사람의 뜻대로 움직이도록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니체가 말하는 `권력에의 의지`는
한 사람이 추구하고 이루려고 하는 그래서 프로가 되어 무언가를 이루라는 뜻에서의
권력을 뜻한다.
이처럼 용어를 만들어 버리면 그 의미를 한정 짓게 되고
각 사람마다 그 용어를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므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니체의 권력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다.
니체는 르상티망(원한, 복수심)에서
도덕과 종교와 민주주의 같은 객관적인 체계가 탄생했고
이런 객관적인 체계는 다양한 시점과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고 말하면서
상황에 따른 해석이 다른 이유는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권력에의 의지`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곧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그 무엇에 대한 추구 또는 열정 또는 절박함`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