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철의 우리(Iron cage) VS 카리스마]

세종대왕의 `카리스마`가 대안이 되는 이유

막스 베버는

1864년 태생의 독일의 법률가, 정치인, 정치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이다.

저서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경제와 사회>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막스 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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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는


기독교가 금욕과 노동을 사명으로 하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의해
`탈주술화`되면서 근대 자본주의가 형성되었고
현대인들은 이 자본주의라는 `철의 우리cage`에 갇히게 되었다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으로 사회학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출처] 나무위키 -막스 베버-


고 한다.


이처럼 베버는 `종교 사회학`의 관점에서 연구를 시도하였는데

여기서 `프로테스탄티즘`은 개신교 곧 기독교를 말한다.


서양과 동양 문화가 각자 발전하는 방식의 여러 원인 가운데 `종교`가 한 요소였다고 주장하며,
금욕적 칼뱅주의라는 특정한 성격이
서구의 합법적 권위, 관료제, 자본주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출처] 위키백과 -막스 베버-


고 주장하고 있다.


말하자면


금욕적으로 직업 노동을 하는 것이야말로
신의 의지에 부합한다고 하는 `루터`의 직업관과 구원을 받을 자는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에

신에게 선택되고 싶어서 금욕적으로 직업 노동을 한다는 `칼뱅`의 예정설에서
축적한 부를 허투루 쓰지 않고 재투자함으로써 자본을 늘리게 된다는 것이 '자본주의 정신`이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라고 베버는 말하는 것이다.


보통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하면 이익만을 추구하는 탐욕적인 태도를 생각하는데

베버는 오히려 `소박함`과 `근면함`을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익 추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그저 근면하게 일함으로써 이익이 창출되지만

이익 추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고 베버는 강조하고 있다.


이는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종교와 논리, 정신 등은 이데올로기로서 상부구조에 속해 있으며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정신`은 경제적인 토대 위에서 규정된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는 유물사관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베버는 `합리주의`는 `철의 우리cage(쇠의 우리)`로 귀결할 것이라면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강대한 외부의 틀
곧 `우리cage`에 사로잡혀 지배를 받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면서

자본주의는 관료제 기구라는 `우리cage`에 갇히게 된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고 그 이유를 말하고 있다.


`철의 우리cage(쇠의 우리)`란

개인을 순전히 목적론적 효율성, 합리적 계산, 그리고 통제에 기반한 계 안에 가두어 둔다는
뜻이다.

[출처] 위키백과 -iron cage-


말하자면 합리주의는 효율성과 합리적인 계산 그리고

관료제의 시스템에 의한 통제가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we가 일을 좀 더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만든

시스템에 우리we가 갇힌다는 의미이다.


이에 막스 베버는


이 철의 우리cage 속에서 누가 살게 될지,
아니면 이런 희한한 역사 전개 과정의 끝에
아주 참신한 예언자들이 등장할지 또는 고대의 이념과 이상이 새롭게 만발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도 아니라면 기계화의 진행으로 마른 뼈처럼 되었으면서
언제나 강박적으로 '내가 최고'라고 착각하는 인간들이 등장할지도.

이런 식의 역사가 진행되면 이 긴 역사의 끝에
'말인末人'(the last humans)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 터이다.

얼이 없는, 좁아터진 전문가, 심장 없이 쾌락만 좇는 부류들,
그러나 이 문명은 자만심에 부풀어 인류 발전의 정상에 올랐다고 상상할 것이다."

[출처] 나무위키 -막스 베버-


라고 말하며


니체가 말하는 '말인末人'(the last humans)이라는 개념을 인용하여

`철의 우리cage(쇠의 우리)`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베버는

지배와 권위가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근거에 따라,

전통적 지배, 합법적 지배, 카리스마적 지배의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면서 '카리스마적 지배`를 주장한다.


'전통적 지배'는


예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왕위 계승은 장자가 해야 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장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을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옛날부터 해왔던 '전통'이기 때문이다.


'합법적 지배'는


법과 규칙에 따른 지배를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각자의 부문에서 전문가로 구성된 관료제는 이 합법적 지배의 가장 순수한 형태이다.


우리가 관료들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그것이 형식상 올바른 절차를 통해 제정된 규칙이고

그들이 제한적인 강제력으로 그 규칙을 전문적으로 실행하는 자이기 때문에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카리스마적 지배'는


추종자들의 믿음을 근거로 작동되는 권위이다.


우리가 어떤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에게 복종하게 되는 까닭은

그 지도자가 다른 사람들과 차별되는 능력을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 자격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출처] 나무위키 -막스 베버-


베버는 이러한 `카리스마적 지배`를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를 통해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선출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선출직 카리스마형 지도자'는 관료에게 전문적인 조언을 얻고
그 이해득실을 따져 정책적 가치판단을 내리며, 그 판단이 추종자들의 이익을 가져온다고 믿어질 때
그의 카리스마는 계속해서 유지된다.

따라서 현대 사회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카리스마적 지배를 파악하는 것은
아직도 유효하며, 오히려 필수적이다.

[출처] 나무위키 -막스 베버-


라고 설명하고 있다.


말하자면 니체가 `디오니소스`를 내세우는 것처럼

베버는 `카리스마`를 내세워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베버가 종교에서 출발하여 자본주의를 판단한다는 발상은

아주 참신하고 새로운 시도이다.


어쩌면 종교적인 신앙의 힘으로 자본주의의 폐단들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정신`이 올바르게 작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루터와 칼뱅에 의한 금욕적이고 근면한 생활 태도가 자본주의를 이끌어 간다면

축적한 부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을 것이고

또 축적된 부가 올바르게 분배되고

남은 이익금을 모두 재투자하게 되어 이익을 남김과 동시에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종교에 의해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그 당시에 정말로 센세이셔널할 만큼 충격적이면서 새로운 이론이었을 것이다.


이성에 의한 합리주의는

`철의 우리cage`로 사람들을 가둘 것이기에 베버는 종교적인 논리로 자본주의를 논한 것이다.


베버의 종교적인 금욕과 근면한 생활 태도로 임한다면

이론적으로는 자본주의에 의해서 인간들의 삶이 풍요로워질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인간들의 금욕과 근면한 생활이 깨어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그 결과는 인간들의 본성에 숨겨져 있는 욕심과 야망과 욕망에 의해 좌우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베버가 준비한 비장의 카드가 `카리스마적 지배`인 것이다.


카리스마 또는 아우라가 있는 지도자가 있다면


솔로몬과 같은 현명하고 억울하지 않은 판단이 내려질 것이고

창출한 이익을 분배함에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공평하고 공정하게 분배될 것이고

등등등


무언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기대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이런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라 할지라도

따르는 사람은 50%가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고 어떤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서도

찬반의 논란이 반반인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버가 말하는 `카리스마적 지배`의 이론은 우리들이 바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대중은 알튀세르가 말한 것처럼 자발적 복종을 바라기 때문이다.


베버가 말한 종교적인 금욕과 근면에 기초한 것이므로

도덕적 해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무위도식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무분별한 욕망에 의한 불균형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므로


지금까지의 대안 중 최고의 대안이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는 `도덕 자본주의`가 필요한 때이니까 말이다.


다시 한번 더 정리해 보면


'선출직 카리스마형 지도자'는

관료에게 전문적인 조언을 얻고 그 이해득실을 따져 정책적 가치판단을 내리며
그 판단이 추종자들의 이익을 가져온다고 믿어질 때 그의 카리스마는 계속해서 유지된다.

따라서 현대 사회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카리스마적 지배를 파악하는 것은 아직도 유효하며, 오히려 필수적이다.

[출처] 나무위키 -막스 베버-


이것이 이상적이고 이론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대로 하자고 한다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물론 베버에 대한 비판도 당연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더 좋은 대안이 있는가? 그러면 제시해 보길 바란다.


만약 독재를 염려한다고 한다면 이런 독재는 괜찮지 않냐고 묻고 싶다.


세종대왕의 재위 기간을 보면 1418년부터 1450년까지라는데

32년간 왕으로서 한 국가를 통치했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 후손들은 세종대왕을 독재자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세종대왕의 `카리스마적인 지배`가
현재 전 지구적으로 필요한 때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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