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자리가 따로 있단다
오늘도 혼자 밥상을 차린다.
무심코 국을 가운데 놓고
나물과 볶음 반찬을 꺼내는데
손이 자연스레 방향을 기억한다.
동쪽엔 나물,
남쪽엔 볶음,
서쪽엔 멸치,
북쪽엔 물김치.
할아버지가 계시던 그 자리.
그때의 말이
오늘따라 자꾸 떠오른다.
“경화야,
밥상은 그냥 차리는 게 아니란다.
방향이 있어야 해.
사람이 어디에 앉느냐,
무엇을 먹느냐,
그게 다 기운을 따라야 하는 거지.”
“네가 앉는 동쪽엔
푸른 나물이 잘 어울린다.
목(木)의 기운이 흐르거든.
미나리, 시금치, 숙주 같은 게
너한텐 좋지.
어린 사람은 푸른 걸 먹고 자라야 한다.”
“남쪽은 화(火)의 자리다.
불을 다루는 자리니까
감자볶음이나 버섯볶음 같은
볶은 반찬이 어울리지.
엄마가 앉는 자리였지.”
“서쪽엔 금(金)의 기운이 흐른다.
마른 멸치나 생선,
말라서 단단한 것들.
그 자리는 아무도 안 앉아도 괜찮아.
자리는 사람보다 먼저 있어야 하거든.”
“북쪽은 수(水)의 기운.
말이 적은 자리,
생각이 고요한 자리.
그래서 나는 거기 앉았단다.
물김치 같은 걸 먹으면
속이 잠잠해져.”
“가운데엔 흙에서 난 걸로 끓인 찌개를 두는 거야.
감자, 무, 마늘, 호박, 된장…
그게 토(土)의 기운.
이 상의 중심이지.
사람들이 서로 덜어 먹는 찌개는
중심을 공유하는 일이거든.”
“경화야,
밥상에서 제일 먼저 배우는 건
반찬 이름이 아니라
자기 자리지.
그리고 그 자리에 맞는 걸
고요히 먹는 거야.”
그때는 어려서 몰랐다.
그 말들이
그저 어른들의 습관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
혼자 상을 차리며
무심코 방향을 지킬 때마다
나는 알게 된다.
그 말들은
기억이 아니라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질서였다는 걸.
나는 아직도
그 자리를 잃지 않으려 애쓴다.
이젠 할아버지 없이도
상 하나를 반듯하게 차릴 수 있게 되었다.
말은 없지만
이 모든 것이
그분이 남긴 유산이다.
오늘도 나는
가운데 찌개를 올리고
그분의 자리에
물김치 한 종지
조용히 놓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한다.
“할아버지,
이제 저도
밥상을 제 자리에 놓을 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