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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간장 비빔 국수

간장같은 사람

by 마르치아



“경화야, 이리 와서 면 불기 전에 얼른 먹어라.”

할아버지 목소리에 나는 발소리도 없이 달려갔다.

테이블 위에는 노오란 면발이 수북하게 담겨 있었고, 그 위로 간장이 조르르 뿌려져 있었다. 참기름이 살짝 돌고, 깨소금은 눈처럼 내려앉았고, 오이는 푸릇푸릇하게 웃고 있었다.


“이거 뭐야?”

젓가락을 들고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말했다.

“간장 비빔국수여. 경화 네가 좋아하는 거지.”


나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간장이랑만 비벼? 고추장은?”


할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고추장은 어른들 입맛이지. 너처럼 아직 속이 여린 애는 간장이 딱이여. 부드럽고, 짜지도 맵지도 않고, 그냥 착하지, 간장 국수가.”


“간장이 착해?”

나는 국수를 후루룩 먹다가 코끝에 면발이 닿았다. 할아버지는 웃으시며 손수건으로 내 코를 닦아주셨다.


“그럼 착하지. 간장은 절대 나서지 않아. 그런데도 다 살려내지. 오이도, 면도, 심지어 기분도 말이야.”


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또 물었다.

“할아버지, 간장은 어디서 나와?”


“간장은… 기다림에서 나오는 거지.”


“기다림?”


“응. 콩을 삶아서, 소금에 절여서, 오래오래, 아주 오래 두는 거야. 서둘면 안 돼. 그래야 저렇게 맑고 착한 간장이 나와. 그러니까 간장은 성질 급한 사람은 못 만드는 거지.”


나는 국수를 또 한 젓가락 먹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럼 간장처럼 되려면… 많이 기다려야 돼?”


할아버지는 웃으셨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 말을 아끼는 사람, 필요한 맛만 내고, 너무 짜지도 맵지도 않은 사람. 그런 사람이 좋은 사람이여. 간장 같은 사람.”


나는 그 말이 조금 어렵지만 왠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작게, 혼잣말처럼 말했다.

“나… 간장 같은 사람 될래.”


할아버지는 젓가락을 놓고 조용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될 거야, 경화는. 면도 조심조심 먹고, 코에 묻은 것도 부끄러워할 줄 아니까. 넌 참 착하디 착한 애여.”


창밖으로 바람이 불었다.

부엌에는 참기름 냄새가 살짝 떠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아직도 국수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간장 비빔국수를 먹고 처음으로 ‘착한 맛’이라는 게 뭔지, 아주 조금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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