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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국물의 진실

by 마르치아


국물에 대하여


“경화야, 국물은 말이야

반찬이 다 지나가고 난 뒤에도

남아 있는 거여.”


할아버지는 숟가락을 들어

된장국을 한 모금 떠내셨다

나는 조심스럽게 따라 했다

작은 손에 쥔 숟가락이

국물 안의 파 한 조각을 데리고 올라왔다


“국물은 밥상에서 제일 마지막까지

있는 놈이여. 다른 건 다 사라져도,

국물은 남아서 속을 덥혀주지.”


나는 그 말이 이상했다

고기도 있고, 계란도 있고

심지어 김치도 맛있는데

왜 마지막까지 남은 국물이 제일

중요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때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뜨거울 땐 조심해서 먹고,

식으면 후룩 마시게 되는 게 국물이여.

그래서 사람 마음도 국물 같아야 해.”


나는 입을 조금 벌렸다

사람 마음이 국물 같다니?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셨다

“뜨거워도 다치게 하지 않고,

식어도 미워지지 않는 거

그게 좋은 국물이고, 좋은 마음이여.”


나는 된장국을 한 모금 더 마셨다

그 맛은 짰고, 구수했고,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숟가락을 국에 푹 담그셨다

“국물 없으면 밥이 목멜 거야

그건 밥상도, 인생도 마찬가지여.”


오래된 밥상 위엔

이미 고기와 반찬은 다 사라졌지만

그날 나눴던 국물의 맛은

아직도 내 기억 안에

뜨겁게, 조용히 남아 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떠올릴 때

나는 그들이 내게

국물처럼 있었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다 사라지고도

끝까지 내 곁에 남아 있었던 사람


그리고 나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그런 국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뜨겁지만 다치지 않게

식었지만 여전히 위로가 되는

한 모금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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