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순환대하여
어릴 적, 서울의 골목 안
주택에 살던 시절,
경화는 할아버지와 함께
마당에 쌀을 뿌리는 아침을 자주 맞이했다.
담벼락 아래 놓인 양은 쟁반 위로
할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쌀 한 줌을 털어냈다.
“할아버지, 왜 자꾸 쌀을 뿌려요?
새들이 다 와서 먹잖아요.”
경화는 그게 아깝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늘 웃으시며 말했다.
“그건 걔네 몫이야.
곡식에는 새들도 일정한 몫이 있거든.”
“우리가 먹으려고 산 건데…”
“그렇지.
하지만 세상은 혼자 사는 데가 아니잖니.
씨앗은 새들이 퍼뜨리는 거야.
우리 밥상도, 저 아이들 밥상도
서로 둥글게 돌고 도는 거지.”
"새들이 곡식과 야채 과일을 퍼뜨려 주니까
우리가 고맙게도 먹을 수 있는거란다.
경화는 그 고마움을 잊어선 안된다"
경화는 말없이 담장 위의 참새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톡톡, 재빠르게 낟알을 물고 날아가곤 했다.
마치 작은 배달부처럼,
누군가의 내일을 배달하듯.
그날 오후,
경화는 밥을 다 먹고 남은 몇 알을
작은 종지에 담아 마당 끝에 놓았다.
“이건… 오늘 새들 밥.”
하고 말하며,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제주에 살고 있다.
서울의 마당은 오래전에 철거되었고,
할아버지도 더 이상 세상에 없지만
그때의 쟁반 한 장면은
경화 안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다.
제주의 집 마당은 돌담이 둘러싸고 있고,
오후가 되면 멧비둘기와 직박구리가
감나무에 날아든다.
경화는 아침마다 작은 바구니에 쌀을 담아
담장 아래에 두고 말한다.
“이건 너희 몫.
나는 내 몫만 먹었으니까.”
텃밭에서는
가장 연한 상추잎은 일부러 남겨둔다.
벌레가 먹어도, 새가 쪼아도 괜찮다.
누군가가 다녀간 흔적이
자연의 순환을 이어가는 증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동네 아주머니가 물었다.
“마당에 그건 왜 자꾸 놓우꽈?
다 쪼아 먹어버릴텐데.”
경화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건 걔네 밥상이에요.
우리가 먹는 밥만 밥이 아니잖아요.”
그 말을 하고 나니
할아버지 목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곡식에는 새들의 몫도 있어.”
서울의 골목 마당과
지금의 제주 마당,
두 밥상이
경화라는 삶을 사이에 두고
조용히 이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