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부엌 바닥엔
노란 리놀륨 장판이
깔려 있었다.
창문을 반쯤 열면
서울 여름의 바람은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찐득하고 눅진한 공기 속에
석유난로가 우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은색 냄비 안에 청국장이 뽀글뽀글 끓고 있었다.
“경화야, 저거 보글보글 소리 들리냐.
밥 때 다 됐다.”
할아버지가 말하며
밥상 위에 양은 대야를 턱 올려놓았다.
“오늘은 보리밥이야?”
내가 웃으며 묻자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고사리를 한 움큼 손에 쥐었다.
“쌀밥은 몰라도,
보리밥은 속이 든든하거든.
여름엔 말이야,
배보다 마음이 먼저 비니까
이걸로 채워야지.”
고사리, 취나물, 콩나물, 미역줄기를
하나하나 돌려가며 담고
고추장 한 숟가락을 뚝 올리시더니
마지막으로 노각무침을 얹으셨다.
그 빨간 무침 위엔 들기름이 반짝였고
나는 그 윤기만 봐도 군침이 돌았다.
“잘 보고 배워둬라.
밥상이라는 건 그냥 차리는 게 아니고,
‘차려내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게 뭐야, 할아버지.”
“너한테 맛있게 먹으라고
지금 이 밥상 차리는 내 마음 말이다.
이게 사람 사는 정이지.”
나는 조심스레 숟가락을 들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말했다.
“잠깐만, 그거 먼저 먹어야지.”
할아버지는 부엌 냉장고 문을 열고
묵직한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병 안엔 열무 물김치가
살얼음을 이고 서 있었다.
할아버지는 국자 하나로
물김치 국물을 먼저 떠주었다.
“자, 이건 여름의 물이다.”
한 입 마시자
혀끝이 깜짝 놀라고
등줄기로 서늘함이 스며들었다.
무보다 연한 열무의 잎이
숟가락 위에서 고요하게 떠 있었다.
“할아버지, 이거... 와,
너무 시원해요!”
할아버지는 흐뭇한 얼굴로
청국장을 난로에서 조심스럽게 내려
내 앞에 내려놓았다.
“물로 입 안을 씻었으니
이제 국으로 마음을 데워야지.”
두부가 큼직하게 들어간 청국장은
애호박이 흐물흐물할 정도로 푹 익어
국물이 걸쭉하고
구수한 냄새가 부엌 가득 퍼져 있었다.
“경화야,
밥은 그냥 먹는 게 아니다.
이걸 먹으며 니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는 거야.
그리고, 누가 널 사랑했는지도.”
나는 그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그저, 밥 한 숟갈.
나물과 노각을 골고루 얹고
입에 넣고 꼭꼭 씹었다.
그러고 청국장 국물을 한 숟갈 떴다.
그 순간,
세상이 멈춘 듯 고요했고
입안은 뜨거운데
가슴은 시원했다.
나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그 여름날,
석유곤로 위에서 천천히 끓던 청국장과
살얼음 동동 떠 있던 열무 물김치.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듯 밥상을 차려주던
한 사람의 손길.
눈물나게 아름다웠던 그 여름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