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물려준 살림이라는 이름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 살림이란다

by 마르치아



엄마가 가르쳐준 살림의 정의


“경화야, 살림이 뭔지 아니?" 엄마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살림은…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거잖아.” 엄마는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그렇지. 그런데 그건 눈에 보이는 살림이고, 진짜 살림은 말이야… 사람을 살게 하는 일이란다.”


사람을 살게 하는 일이라고? 나는 잘 이해되지 않아 다시 물었다. 엄마는 찬장을 열어 쌀을 꺼내오시며 말했다. “쌀을 씻을 때 첫물은 버리고, 두 번째 물부터는 조심히 씻어야 해. 그건 쌀이 깨어나고, 숨 쉬기 시작하는 시간이거든.” 나는 쌀 씻는 엄마 옆에 서서 뽀드득 소리 내는 쌀알을 들여다봤다. “그럼 밥은 숨 쉬는 거야?” “그럼, 밥도 너처럼 살아 있는 거야. 그래서 정성을 다해야 해. 쌀 한 톨도 소중하게 여기면, 그 밥을 먹는 사람 마음도 따뜻해지거든.”


엄마는 된장국을 끓이며 말씀하셨다. “살림은 기다림이야. 무가 국물 속에서 달큰해질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것처럼. 뒤집개 들고 성급히 휘저으면 맛이 달아나.” 나는 그 말이 마치 사람을 대하는 법 같다고 생각했다. “그럼 사람도 휘젓지 말고 기다려야 돼?”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경화야. 살림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면, 조금 덜 다그치고, 더 다정해지지.”


빨래를 널던 날, 엄마는 햇살을 올려다보며 말씀하셨다. “이 냄새 맡아봐. 이게 바로 햇살 냄새야. 살림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들을 지키는 일이야. 햇살이 드는 자리, 바람이 지나가는 길, 누가 다녀가도 어지럽지 않은 마음.”


“엄마, 살림은 꼭 여자만 해야 돼?”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물었다. 엄마는 빨랫줄에 수건을 하나 더 널며 대답하셨다. “살림은 사람이면 누구나 해야 해. 살림을 안 하면 말이지, 몸은 버틸 수 있어도 마음은 병이 들어. 살림은 집을 닦는 게 아니라 마음을 닦는 일이야.”


“그럼 나중에 나도 잘할 수 있어?” 엄마는 내 눈을 마주보며 웃으셨다. “너는 벌써 하고 있어. 추운 날 내가 감기 걸릴까 봐 손수건을 내 무릎에 덮어줬지? 그게 바로 살림이야.”


살다 보니 이제야 알겠다. 엄마의 살림이 단지 집안을 돌보는 일이 아니었다는 걸. 그건 사랑을 다루는 일이었다. 물건이 아니라 마음을 정리하고, 먼지를 닦는 게 아니라 삶의 틈 사이에 스며드는 고독과 고단함을 닦아내는 일이었다는 걸.


어느 날 늦은 밤,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그릇 하나를 내려놓고 울었다. 엄마가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소리 없이 눈물을 삼켰다. 삶은 생각보다 지저분하고, 사랑은 생각보다 자주 깨지고, 그 깨진 조각을 주워 닦는 일이 살림이란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엄마가 포장해 두었던 리본이 생각났다. 복숭아병을 씻어 말려 잼을 담고, 붉은 체크무늬 리본을 묶어놓으시던 그 손길. “경화야, 누가 오든 갈 땐 빈손으로 보내지 마라.” 그 한마디가, 살면서 내가 품어온 가장 오래된 신념이 되었다. 그건 선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존중이었다는 걸 시간 지나 알게 되었다.


어릴 적 엄마는 늘 살림을 하며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쳤다. 하지만 말로 알려준 건 많지 않았다. 거의 모든 것이 그녀의 손과 시간과 냄새와 기다림 속에 있었다.


지금 나는 쌀을 씻으며, 찌개를 끓이며, 조용히 먼지를 닦아내며 그 시간을 이어 살고 있다. 그리고 종종 속으로 말한다. 이 쌀도 숨을 쉬는 거야. 부드럽게 씻어야 해. 그래야 밥이 고운 숨결을 품지.


그리고 마음속으로 덧붙인다.

"엄마, 나도 당신처럼 살고 있어요.

당신이 내게 물려준 살림,

이제 내 하루의 방식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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