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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몰래 흐르는 눈물

by 마르치아


유독 눈이 크고 눈물이 많은 나는 울지 않는 날에도 눈물에 젖곤 한다. 바닥에 뉘어 볼 틈도 없이 귀하게 자란 나는 울 새도 없었다. 네 살 겨울 할아버지 손을 잡고 장충단 공원을 산책하던 날 한쪽에서는 투견 대회가 열려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나는 그 틈을 빠져 나와 보도블럭 사이에 피어난 샛노란 민들레 앞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보도블럭의 차가운 틈을 밀고 올라온 작은 꽃의 삶의 통증이 너무 생생히 다가와 나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꽃이 끙 하고 피어오르는 그 순간의 아픔이 마치 내 심장으로 곧장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생명의 통증이라는 것을 처음 배웠다. 아픔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깃드는 법을 내 작은 몸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할아버지는 놀라서 나를 번쩍 들어 안으며 물으셨다. “경화야 왜 울어 왜 그러니”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응 아파 꽃이 끙 했어 꽃이 너무 아파서 나도 울어 할아버지”라고 말했다. 그 말은 설명이 아니라 내 안쪽에서 밀려나온 진실이었다. 할아버지는 등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아이고 내 새끼 꽃이 끙하고 피느라 아픈 걸 니가 알아봤구나” 하고 말씀하셨고 나는 “응 그래서 나도 끙했어 그리고 어른 돼도 끙할 것 같아”라고 대답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말은 내 몸 깊은 곳에 새겨져 있던 운명 같은 예감이었다. 삶의 고통과 그 후에 오는 환희를 내 몸은 이미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기쁠 때마다 특히 그 기쁨이 자신도 모르게 거친 고통과 인내를 지나 겨우 도착한 것임을 알아챌 때마다 남몰래 마음에서 흐르는 눈물을 살며시 훔쳐내며 살아왔다. 그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고 가련함의 표시도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와 존재가 공명할 때 스스로 밀려 올라오는 깊은 떨림이었다. 나는 그 떨림을 내 삶의 진짜 살아 있는 증거처럼 느꼈다. 어른이 되니 세상에는 꽃처럼 끙하며 피어나는 존재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다. 아무 말 없이 견디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웃음 아래 쓴 눈물을 숨기고 버티는 사람들 그들의 어깨에서 나는 또 다른 민들레를 본다.


나는 살아오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울음을 손끝으로 만져 보았다. 누군가는 빛을 잃은 뒤에야 겨우 호흡을 되찾았고 누군가는 가장 아픈 날에 가장 넓은 웃음을 지을 줄 알았다. 그 모든 순간에 나는 마음속에서 작은 끙 소리를 들었다. 꽃이 또 피어나는 소리였고 누군가가 다시 생으로 돌아오는 소리였고 네 살의 나에게서 시작된 오래된 울음과 포개지는 소리였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기쁨 속에서 고통의 그림자를 알아보고 누군가의 미소 속에서 오래된 인내를 읽어낸다. 그 순간 내 마음은 조용히 젖는다. 눈물은 남몰래 흐르고 다시 고요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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