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승의 마케팅 인사이트 ep.07
병의원 콘텐츠 중 종종 감정에 호소하는 문장들을 봅니다. “저희는 정직한 진료를 합니다” “누구보다 따뜻하게 환자를 대합니다” 같은 문장들이죠. 말 자체는 틀리지 않지만, 감정의 ‘연출’이 느껴질 때, 사람들은 오히려 거리를 둡니다. 그 감정이 진짜인지, 누군가 설정한 시나리오인지 의심하게 되는 거예요. 일종의 신파죠.
제가 브랜딩을 맡았던 한 병원에서는, 원장님의 진료 철학을 있는 그대로 담은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한 번 다녀오면 다시 오고 싶어지는 치과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 말 한 줄이 콘텐츠의 핵심이었습니다. 억지 감정은 없었지만, 오히려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감정은 ‘강요’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진심’ 속에서 전이되는 겁니다.
얼마 전 퇴근 후 마신 맥주 한 잔을 떠올려봅니다. 사실 맥주를 산 게 아니라, 해방감과 보상감이라는 감정을 샀던 겁니다. 소비자는 늘 제품보다 먼저 감정을 소비합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국내에 론칭한 볼보 EX90 캠페인은 '아이를 위한 첫 차'라는 콘셉트로 기획됐습니다. 단순히 스펙을 나열하지 않았죠. “사고가 나도 아이를 보호할 수 있다”는 메시지 한 줄이 부모들의 마음을 건드렸고, 단기간에 대기 수요가 몰렸습니다. 다시 말해, 안전 기능이 아니라 ‘부모로서의 감정’을 팔았던 겁니다.
광고는 제품의 정보보다, 그것이 불러오는 감정의 시뮬레이션을 먼저 설계합니다. 소비자는 ‘무엇’이 아닌, ‘어떤 느낌’을 구매하는 존재니까요.
사실 감정적 소비는 지금에 갑자기 생긴 개념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감정적으로 소비합니다. 슬프면 인형을 사고, 기분 좋으면 초콜릿을 사죠. 이성적 근거는 없습니다. 감정이 먼저입니다.
성인도 다르지 않습니다. 요즘 MZ세대 사이에서는 월요일 오전에 항공권 예약량이 집중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울한 출근길에, 탈출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구매는 늘 감정의 배경에서 작동합니다.
제가 인하우스 마케터로 일할 때였어요. 병원 협업을 위해 여러 연예인을 대상으로 직접 손편지를 작성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메일도 전화도 아니었습니다. 손편지. 그 방식이 유치해 보일 수 있었지만, 실제로 수많은 연예인과 브랜드 협업이 이루어졌고,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그 경험 이후로 저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마케팅은 수치보다 태도이고, 콘텐츠는 형식보다 진심입니다. 단 한 줄이라도 감정을 유발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전략이라는 걸요.
많은 병의원이 ‘불안’을 중심에 둔 카피를 사용합니다. “이 증상, 방치하면 큰일 납니다” “시간이 지나면 뼈가 녹을 수 있어요” 같은 문장들이죠. 클릭률은 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담 예약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적습니다.
한 클라이언트 병원에서는 “잇몸이 붓는다면 이미 시작된 병일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 대신, “양치할 때 피가 나도 무심히 넘기셨죠. 저도 그랬거든요”라는 문장으로 바꿨습니다. 환자의 감정을 따라가게 된 거죠. 불안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과 유대감을 만든 겁니다.
병원은 트래픽이 아니라 신뢰를 쌓아야 하는 공간입니다. 특히 치과처럼 치료 기간이 길고, 고비용 결제가 수반되는 진료일수록 감정적 설계는 단기 클릭보다 장기 관계에 집중해야 합니다.
마케팅의 데이터는 점점 더 정밀해지고 있고, 클릭과 전환은 실시간으로 측정됩니다. 하지만 수치는 잊혀질 수 있어도, 감정은 오래 남습니다. 어떤 콘텐츠는 잊혀지지만, 그 콘텐츠를 보고 느꼈던 기분은 오래 뇌리에 각인되거든요.
그리고 감정을 각인시킨 브랜드만이 살아남습니다. 병의원도 예외는 아닙니다. 감정을 읽고, 감정을 설계하는 병원. 결국은 그 병원이 기억되고 선택받습니다.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도 성과가 없다면, 그건 ‘실행’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어디부터 어긋난 건지, 제가 직접 진단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액 무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