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말하지만, 아무도 닿지 못하는 그 단어

이현승의 마케팅 인사이트 ep.08

by 이현승


진정성이라는 단어는 이제 마케팅 업계에서 너무 흔해졌습니다. 브랜드 철학을 말할 때, 콘텐츠 기획 회의에서, 심지어 보고서의 결론에도 단골처럼 등장하죠. "우리는 진정성 있게 접근했다"는 문장은 너무 자주 쓰이다 보니, 그 자체로도 진정성을 잃어버린 역설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진정성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그 '전달'의 감각이 콘텐츠마다 천차만별이라는 거죠. 더 심각한 문제는 많은 마케터들이 진정성을 '기법'으로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마치 SEO나 타겟팅처럼 배우고 적용할 수 있는 기술로 착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소비자의 눈은 생각보다 정확합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감각이 있어요. 특히 Z세대와 알파세대는 더욱 예민하죠. 그들은 브랜드의 진심을 '읽어내는' 세대입니다.



콘텐츠는 말보다 '결'로 읽힌다


예전에 한 피부과 브랜드의 SNS를 기획할 때였습니다. 브랜드 철학이 너무나 훌륭했어요. '고객이 스스로를 좋아하게 만드는 곳'이라는 콘셉트였죠. 그래서 브랜드 영상에 그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런데 초기 영상은 예상만큼 퍼지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진정성'을 말했지만, 소비자는 그 말을 '느끼지' 못한 거예요. 문제는 우리가 브랜드의 관점에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일방적 소통이었던 거죠.


이후에는 영상의 주어를 바꿨습니다. "저희는~" 대신, "당신도 이런 날 있으셨죠?"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델이 아닌 실제 고객의 목소리를 담아냈습니다. 대본 없는 인터뷰, 거울 앞에서 울먹이던 장면, 병원을 나설 때의 한숨 같은 디테일들이 진정성을 말하지 않고, 보여준 거죠.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어요. 한 고객이 "처음에는 화장으로 가리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냥 나가도 괜찮아요"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담담함' 안에 모든 이야기가 들어있었어요. 그 콘텐츠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말했느냐는 점입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전달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병의원 콘텐츠에도 '결'이 있다


병의원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직하게 진료합니다"라는 말보다 "의료진의 눈빛에서 믿음이 느껴졌다, 원장님이 친절하다."는 후기가 더 설득력 있어요. 병원 콘텐츠는 이성보다 감정에 먼저 닿아야 하거든요.


제가 컨설팅한 치과 중 하나는 처음엔 시술 설명 중심의 콘텐츠만 올렸습니다. 장비, 결과, 비교 사진 위주의 '정보형 콘텐츠'였죠. 물론 정보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환자들은 오히려 진료 대기실 풍경, 조용히 의자에 앉은 보호자 모습, 치료 전 상담실에서 나눈 짧은 대화 같은 장면에 더 반응했어요. 말보다 분위기, 설명보다 맥락이 전달한 것입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한 원장님이 진료 중 환자에게 건네는 작은 배려였습니다. "혹시 불편하시면 말씀해 주세요"라는 자연스러운 한마디가 담긴 영상이었어요. 기술적인 설명은 전혀 없었지만, 그 말투에서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디테일에서 진정성이 느껴지는 거예요.


의료 마케팅에서 가장 큰 실수는 '전문성'만 어필하려는 것입니다. 물론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사람'이 느껴져야 해요. 환자는 치료를 받기 전에 먼저 '이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를 판단하거든요.



진정성은 전략이 아닙니다. 태도입니다.


많은 브랜드가 진정성을 '전략'으로 접근합니다. "우리도 진정성 마케팅을 해보자"는 식으로요. 하지만 이건 근본적인 오해입니다. 진정성은 기법이 아니라 태도예요.


태도란 무엇일까요? 브랜드가 평소 어떤 마음으로 고객을 대하는가, 어떤 가치를 진짜로 믿고 있는가, 그리고 그 믿음이 일상의 작은 행동까지 일관되게 스며들어 있는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카페가 "환경을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일회용 컵을 계속 쓴다면? 소비자는 그 모순을 알아챕니다. 반대로 별다른 말 없이 텀블러 할인을 당연하게 제공하고, 매장 곳곳에 화분을 두고, 직원들도 자연스럽게 환경 친화적 선택을 한다면? 그때 비로소 진정성이 '전달'되는 거예요.


이는 단순한 마케팅 메시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브랜드의 전체적인 일관성, 즉 '브랜드 통일성(Brand Consistency)'의 문제예요. 소비자는 브랜드의 모든 접점에서 경험하는 것들을 종합해서 판단합니다.



진정성은 '표현'이 아니라 '발견'이다


진정성을 연출하려 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옵니다. 감정에 억지로 말을 붙이면 사람들은 그것이 가짜라는 걸 알아차립니다. 오히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건네는 장면, 긴 설명 없이 한 장의 사진이 진심을 전달하기도 하죠.


한 번은 원장님의 진료 철학을 담기 위해,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그대로 녹취로 풀어 콘텐츠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화려한 말 없이 "환자가 입을 열지 않아도 걱정을 먼저 읽고 싶은 마음이에요"라는 말 한 줄.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문장이 기억에 남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자연스러움'입니다. 억지로 만들어낸 감동이 아니라, 원래 그 사람 안에 있던 진심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죠. 이런 순간들은 기획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입니다.


진정성은 발견되는 감정입니다. 소비자는 그 '결'을 알아채고, 그 결에 반응합니다. 그리고 이런 반응은 단순한 '좋아요'를 넘어서 실제 행동 변화로 이어집니다. 브랜드에 대한 신뢰, 재방문, 추천으로 연결되는 거죠.



디지털 시대의 진정성, 더 까다로워진 기준


디지털 환경에서 소비자들은 더욱 예민해졌습니다.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브랜드의 과거 행적도 쉽게 확인할 수 있거든요. 한 번의 실수가 브랜드 전체의 신뢰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진정성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어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진정성에 대한 강박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콘텐츠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진짜인지 보여주자"는 마음이 과도한 연출로 이어지는 거죠.


진짜 진정성은 과시하지 않습니다. 그냥 존재할 뿐이에요. 고객이 그것을 알아채도 좋고, 못 알아채도 상관없어요. 왜냐하면 그게 진짜니까요.



말하지 말고, 스며들어야 한다


디지털 환경이 정교해질수록, 마케팅은 더 감정적인 일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데이터를 보고 타겟팅을 하지만, 결국 그들의 마음에 닿는 건 숫자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진정성은 언어가 아닙니다. 구조이자 분위기이며, 그 브랜드가 평소 어떤 식으로 존재해 왔는지를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건 설계되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입니다.


10년이 넘는 긴 시간 마케팅을 진행해 오며 느낀 것은 이것입니다. 바로 마케터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진정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는 것. 브랜드가 가진 진짜 이야기를 찾아내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죠.


감정을 건드리는 콘텐츠는 많지만, 감정을 남기는 콘텐츠는 적습니다. 병의원도 브랜드입니다. 말보다 태도가, 연출보다 결이, 숫자보다 기억이 남는 콘텐츠. 결국은 그런 콘텐츠가 살아남습니다.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도 성과가 없다면, 그건 ‘실행’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어디부터 어긋난 건지, 제가 직접 진단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액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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