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승의 마케팅 인사이트 ep.10
"보자마자 알았어요. 그게 제가 찾던 거라는 걸."
이 말, 어디서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쇼핑 후기일 수도 있고, 한 브랜드를 떠올릴 때 느끼는 짧은 감탄일 수도 있죠. 우리는 종종 '이유' 없이 어떤 브랜드에 끌립니다. 그것이 논리적인 설명 때문이 아니라, '느낌' 때문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압니다.
이때의 느낌은 대개 '시각'보다 앞서 '인지'됩니다. 놀랍게도 우리는 브랜드를 보기도 전에, 이미 그 분위기와 감정을 읽고 판단을 시작하죠. 심지어 단 0.05초 만에요.
이건 단순히 '첫인상'이 아닙니다. '무의식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지금의 마케팅이 말보다 결, 카피보다 맥락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2009년, <더 원 Show> 수상작 중 하나였던 펩시 광고를 기억하십니까? 광고 속에 등장한 건 단순한 실루엣, 몇 개의 색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는 순간, 전 세계 사람들은 그게 코카콜라를 풍자한 광고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펩시의 이미지가 '젊고 유쾌하게' 각인됐죠.
말이 없었는데 왜 그 광고는 정답 같았을까요?
답은 인지 프레임에 있습니다. 우리는 브랜드를 '정보'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프레임'으로 소비합니다. 프레임은 낯설고 길게 설명하는 대신, 이미 익숙한 감정을 불러와 소비자의 판단을 단축시켜 줍니다. 그래서 설명은 줄어들고, 감정은 증폭되며, 결정은 빨라집니다.
병의원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밀진단", "최신장비", "의료진 경력"이라는 정보는 소비자의 머리를 설득하려 합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머리보다 심장입니다. 그리고 그 심장을 움직이는 건 언제나 이미 아는 듯한 분위기에서 출발하죠.
제가 컨설팅했던 한 병의원에서는 오랜 시간 '경력과 전문성'을 강조한 콘텐츠를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콘텐츠의 반응은 생각보다 낮았죠.
그래서 시선을 바꿔봤습니다. 병원 입구를 찍는 대신, 문 앞에서 망설이는 환자의 뒷모습을 담았습니다. 의료진의 프로필이 아니라, 진료 후 조용히 어깨를 두드려주는 간호사의 손을 비추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병원 앞에서 멈춘 적이 있다'는 감정, '내가 위로받았던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장면.
그 순간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이 병원은 뭔가 다르다", "가는 길부터 위로받는 느낌이었다"는 피드백이 쏟아졌습니다.
우리가 제공한 건 정보가 아니라 프레임이었습니다. "병원은 차가운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병원은 조용히 기다려주는 곳"이라는 감정의 프레임으로 바꿔낸 거죠.
한때 어느 치과에서는 "우리 병원은 최신 장비를 갖춘 디지털 치과입니다"라는 메시지를 계속 발신했습니다. 하지만 환자들의 반응은 냉담했죠. 그래서 우리는 접근을 바꿨습니다. "요즘은 아무도 제 이를 눈치채지 못해요"라는 한 문장으로 바꾼 거죠. 누구나 한 번쯤 그런 걱정을 해본 적 있기에, 그 문장은 긴 설명보다 훨씬 강하게 '예감'을 남겼습니다.
강력한 콘텐츠는 소비자가 읽기도 전에 무언가를 '예감'하게 만듭니다. 이 병원이 줄 수 있는 진료의 감도, 이 브랜드가 믿고 있는 삶의 태도, 이 콘텐츠가 끝내 전달할 정서의 결까지.
이런 예감이 가능하려면 우리는 콘텐츠를 더 '짧고 진하게' 구성해야 합니다.
한 정형외과에서는 "관절 수술 후 재활 프로그램의 체계성"을 설명하던 것을 "계단을 오르며 다시 한 번 느낀 일상의 소중함"이라는 감정으로 바꿨습니다. 수술의 결과보다 회복된 일상의 느낌을 먼저 전달한 거죠.
또 다른 피부과에서는 "레이저 장비의 우수성"을 강조하던 것을 "거울 앞에서 처음으로 웃어본 날"이라는 순간을 담았습니다. 기술보다 감정을, 설명보다 체험을 먼저 제시한 것입니다.
마케팅은 언제나 '먼저 가는' 사람이 이깁니다. 그 '먼저'란 정보가 아니라, 감정입니다. 무의식 속 예감을 먼저 건드릴 수 있는 브랜드가 다른 어떤 메시지보다 빨리, 오래, 깊게 남습니다.
그리고 그 브랜드는 '딱 보면 느낌 오는' 브랜드가 됩니다.
소비자는 이제 정보에 설득당하지 않습니다. 예감에 끌리고, 분위기에 반응하고, 감정으로 남는 브랜드를 선택합니다. 특히 의료 서비스처럼 신뢰가 중요한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료진과 장비를 갖춰도, 환자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병원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첫 접촉'입니다. 환자가 병원을 처음 떠올렸을 때의 그 감정, 그 예감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그 병원이 얼마나 좋은 치료를 하는지, 얼마나 훌륭한 장비를 갖췄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입니다.
그 병원이 주는 분위기, 그 병원을 보는 순간 느껴지는 결, 그 병원을 처음 떠올렸을 때의 예감.
결국 마케팅은 '첫 장면'에서 결정납니다. 그리고 그 첫 장면이 말보다 앞서 감정을 건드릴 때, 브랜드는 살아남습니다.
그 광고가 정답 같았던 이유는, 이미 내 마음 안에 정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브랜딩은 그 정답을 떠올리게 만드는, 아주 잘 설계된 예감입니다.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도 성과가 없다면, 그건 ‘실행’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어디부터 어긋난 건지, 제가 직접 진단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액 무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