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이름은 '전체(Pan)'였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팬데믹(Pandemic)'이라는 단어의 지배 아래 살았다. 여기서 접두사 'Pan-'은 그리스어로 '전체(All)'를 의미한다. 모든(Pan) 사람(Demos)에게 퍼진 병이라는 뜻이다. '파노라마(Panorama)' 역시 전체(Pan) 경치(Horama)를 본다는 뜻이다.
이 '전체'라는 거창한 접두사의 기원은 그리스 신화 속의 반인반수 목신, '판(Pan)'에게서 비롯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전체'를 뜻하는 이 신의 이름이 오늘날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심리 상태인 '패닉(Panic)'의 어원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전체'와 '공포' 사이에는 어떤 함수 관계가 있는 것일까.
신화에 따르면 판은 헤르메스의 아들로, 태어날 때부터 염소의 다리와 뿔, 털북숭이 몸을 가진 기괴한 모습이었다. 그의 친어머니조차 공포에 질려 아이를 숲에 버렸다. 어머니(인간성)에게 버림받은 이 괴물을 거둔 것은 아버지 헤르메스와 올림포스의 신들이었다. 특히 광기와 술의 신 디오니소스는 이 우스꽝스럽고 본능에 충실한 아이를 몹시 아꼈다.
판은 이성(Logos)보다는 본능(Physis)에 가까운 존재다. 그는 숲 속을 뛰어다니며 님프를 쫓고, 주체할 수 없는 성적 욕망을 발산한다. 문명화된 인간의 눈에 그는 혐오스러운 괴물이지만, 신들의 눈에 그는 생명력 그 자체인 '자연의 전체성'을 상징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판의 이야기는 욕망의 좌절에서 예술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아름다운 님프 시링크스를 욕망하여 쫓아다녔지만, 그녀는 판을 피해 갈대로 변해버린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판은 그 갈대를 꺾어 피리를 만든다. 이것이 바로 '팬파이프(Pan Flute)'다.
그가 부는 피리 소리는 갈대가 된 님프의 비명이자, 짝사랑의 슬픔이 승화된 소리다. 거칠고 투박한 반인반수의 입술에서 가장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온다는 설정은 아이러니하다. 이는 예술이 종종 결핍과 상실의 자리에서 피어남을 보여주는 알레고리다.
판은 평화로운 목신이지만, 동시에 군중을 미치게 만드는 공포의 신이다. 인적 없는 깊은 숲 속에서 갑자기 느껴지는 원인 모를 두려움, 혹은 군중 속에서 이성을 잃고 휩쓸리는 집단 히스테리를 고대인들은 판의 장난이라고 믿었다. 여기서 '패닉'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철학적으로 해석하자면, 패닉은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전체(Pan)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공포'다. 인간은 논리와 이성으로 세상을 조각내어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대자연의 압도적인 힘이나, 통제 불가능한 군중의 광기처럼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전체'가 닥쳐올 때, 인간의 작은 이성은 붕괴하고 만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판'을 마주한다. 바로 '정보의 홍수'다.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쏟아지는 개인이 도저히 처리할 수 없는 '전체 정보'는 현대인에게 만성적인 불안과 인지적 패닉을 유발한다.
우리는 판의 두 얼굴 사이에 서 있다. 한쪽에는 욕망과 생명력이라는 '전체성'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그것이 가져오는 무질서한 '공포'가 있다.
어머니처럼 판을 혐오하고 버릴 것인가 아니면 신들처럼 그 생명력을 껴안을 것인가.
해답은 판이 들고 있는 피리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욕망이 좌절된 자리에서 갈대를 꺾어 피리를 불었다. 혼돈과 공포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아름다운 선율로 바꾸는 힘.
우리 시대의 불안(Panic)을 잠재우는 방법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 불안의 갈대를 꺾어 자신만의 연주를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마주한 공포가 '전체'라면, 우리가 연주할 음악은 그 전체를 아우르는 '조화'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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