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 돈 번다고 했다.

by 하루



그 시절,

부동산 열풍은 미쳤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서울에선 6억 이하 아파트는커녕 9억 이하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지방도 마찬가지였다.

한 달에 천만 원, 이천만 원 오르는 건 예삿일이었고,

그게 뉴스가 아니라, 일상이었다.


무주택자들은 말 그대로 벼락거지가 되어갔다.

상대적 박탈감은 일상이었고,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뒤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유튜브에는 비트코인, 부동산, 지방 다주택자들의 성공담이 넘쳐났고,

“가만히 있으면 벼락거지 된다”는 말은 더 이상 자극적인 문구가 아니라 팩트 그 자체였다.


어느날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어떤 강사를 알게 됐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동 A단지 아시죠? 놀이터 옆 골목에 김밥집 있는데, 거기 진짜 맛있어요.”

살지도 않았던 지역을, 마치 수년간 살아본 사람처럼 말했다.

디테일이 살아 있었고, 그 말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나는 끌렸다.

현장을 진짜 아는 사람처럼 보였고, 그래서 그 사람의 강의를 찾아 듣기 시작했다.


이미 수백 명이 수강 중이었고, 강의실은 열기로 가득했다.

기초반부터 차근차근 따라갔다.

단순히 데이터가 아니라, 직접 현장을 발로 뛰며 배우는 방식이었다.

“답은 현장에 있다.”

그 말이 반복될수록, 나도 그렇게 믿게 됐다.


나는 매 주말마다 지방으로 내려갔다.

울산, 전주, 대구... 전국을 돌며 임장을 다니고, 아파트 단지를 샅샅이 살폈다.

나중에는 무릎 보호대까지 차고 걸었다.

물집은 일상이었고, 하루 5만 보 이상 걷는 것도 익숙해졌다.

지하주차장, 놀이터 바닥, 상가 공실 여부, 주차 동선까지 확인했다.

‘아파트를 사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를 해부하는 일’ 같았다.


임장 후에는 항상 보고서를 썼다.

단순한 메모가 아니었다.

PPT로 2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단지 사진부터 인구통계, 학군, 상권, 전세가율까지 모두 정리했다.

한 지역에 하나, 한 달에 하나.

그렇게 3년 동안 40개가 넘는 보고서를 썼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깊이 있는 투자자’가 되라는 분위기 속에서,

매주 책도 읽고, 동료들과 줌 회의도 했다.

단톡방에서는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고, 서로 피드백하고, 서로 박수 쳐줬다.

내 하루는 ‘회사 → 임장 → 보고서 → 커뮤니티 활동’로 이어졌다.

친구도, 연인도, 취미도 없었다.

지금은 오직 공부해야 할 시기라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아파트 세 채를 샀다.

모두 지방이었다.


매매가는 2억에서 3억 사이,

전세가율은 80% 수준.

적게는 3천만 원에서 많아도 7천만 원 정도면 한 채를 살 수 있었다.


총투자금은 약 1억 중후반.

내가 20~30대를 버티며 모은, 피 같은 돈이었다.

그래도 빚을 낸건 아니었기에 리스크도 적다고 생각했다.


직장인으로서 월급을 모아 한 채씩 사들이고,

전세를 회수하고 그 돈으로 또 채수를 늘리고,

결국에는 시세차익을 얻는 구조.

강의에서 말한 '소액 투자로 부자가 되는 정답지'에 올라탄 기분이었다.


실제로 2021년, 2.8억 하던 아파트가 3.2억에 거래됐다.

한 달에 천만 원 오르는 건 예삿일이었다.

나는 이 시장이 2~3년은 더 갈 거라 믿었다.


“전세가는 크게 빠지지 않는다. 전세가율이 곧 안전마진이다.”

강사들은 그렇게 말했다.

입주장이 아닌 이상 20% 이상 빠진 적 없다는 데이터를 보여줬다.

그 말도 믿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2022년 말,

전세가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금리는 오르고,

전세 사기 뉴스는 쏟아졌고,

건설사는 지방 곳곳에 아파트를 뿌려대더니 파산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전세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나는 수천만 원의 역전세를 물어줘야 했다.

물론, 집값도 끝없이 떨어졌다.

나는 그 모든 구멍을 메워야 했다.


알고 보니 강사들은 같은 아파트를 오르기 전의 금액으로 매수를 했었다.

같은 매매 가격이 아니었음에도,

그들은 '상대적 저평가'와 '안전마진'이라는 단어를 쓰며 여전히 싼 구간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안전마진의 벽인 전세가가 무너지자

전국 어디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집값이 떨어졌고

‘집이 집을 낳는 구조’는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다주택 시스템은 처참히 붕괴되었다.


나는 빚더미에 앉게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현장을 아무리 많이 돌아다녀도, 보고서를 아무리 써도,

그건 결국 ‘과거의 데이터’ 일뿐이었다.

지하주차장도, 놀이터의 모래도...

아파트 가격을 결정짓는 요소는 아니었다.


부동산은 구조와 수치가 아니라,

사람들의 심리와 돈의 흐름이 만드는 게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흐름에 완전히 잘못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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