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에 대하여
내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처음 느낀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수업 시간에 책상 위에 '죽어죽어죽어죽어'라고 쓴 적이 있었다. 그 '죽어'야 하는 대상이 나인지 타인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초등학교 6학년이 많을까? 6학년 가을에 갑작스럽게 할아버지 장례를 치루면서, 죽음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인식된 것 같다. 그리고 그때가 내 인생이 종종 아주 깊이 '불행'했다는 것에 시작점이다.
처음은 작은 장난에 불과했다. 또래보다 큰 덩치로 인해서 주변 남자애들한테 놀림을 받았다. 소아비만이었던 사람들은 누구나 가졌을 법한 별명, '돼지'! 지금은 돼지가 얼마나 똑똑하고 깔끔한 동물인지 알아서 들으면 땡큐를 외치겠지만, 나는 그 별명이 무진장 싫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에 머리를 레드와인 색으로 염색했는데, 그때부터 돼지 앞에 '빨간'이라는 형용사가 붙었다. 초등학생들의 네이밍 센스는 거기서 거기라지만, 그게 때로는 순수한 만큼 잔인하게 들리기도 한다. 나는 내가 사람 취급을 못 받는 것 같아서 때때로 서글펐다.
지금도 약간의 외향적 성향이 존재하지만, 난 어린 시절엔 파워풀 외향인이었다. 안녕하세요,라고 건네는 인사에도 음절마다 음정이 들어가 있었다. 안-녀엉↑하세-요! 지금은 어딘가 음습한 어른이 되어있는데, 그때는 밝고 쾌활하고 명랑한 꼬마 여자아이였다. 학교 가는 길에 빽빽이 자리하던 나무 냄새를 맡는데도 웃음이 나왔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내가 어쩌다 염세주의자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차차 얘기하도록 하고…. 아무튼. 그런 성격을 반기는 사람이 있고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지 않는가? 안 좋은 일로 인상 깊게 기억하는 사람들 중 몇몇은 그런 나의 성격을 감당하기 어려워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 그럴 만두.
여러분은 '떡딸'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보면 뭐가 연상되시나? 나를 진득히도 싫어했던 무리들이 나를 '떡딸'이라고 불렀다. 떡딸의 의미는 아직도 파헤치지 못하고 있다. 떡볶이집 딸처럼 분식을 먹어대서 떡딸인 건가?라는 추측이 있을 뿐이다. 혹시 '떡대 장난 아닌 김 모 씨의 딸'이라서 떡딸인가? 진짜 의미가 무엇일지 다른 분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도대체 이 별명이 뭐라고, 아직까지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픈지 의문이다. 지금의 내가 학창 시절의 나를 어떻게 보느냐면… 사랑받으려고 엄청 애쓴 아이! '떡딸'이라는 별명이 나를 안좋게 지칭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그 친구들과 잘 지내보려고 무던히 애썼다. 결과적으론 장렬히 실패했다! 물론, 지금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필요가 없다는 걸 잘 안다.
내가 지금부터 써 내려갈 글쓰기는 대체로 이런 내용일 것 같다. 살아왔던 인생, 살아갈 인생에 대해서 쓸 거다. 글을 써가며 세운 목표는 단 두 가지. 하나, 내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위안과 즐거움을 주는 것. 가장 중요한 둘, 내가 한 뼘 더 성장하는 인간이 되는 것.
초짜 작가 지망생의 여정의 첫 발자국에 함께해 주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어쩔 땐 이상한 놈 같고, 어쩔 땐 짠한 놈 같고, 또 엉뚱한 곳에서 웃길 나의 이야기. 잘 지켜봐 주시길 부탁한다.
2025년 6월 16일
까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