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김까밀
중학교 3학년, 부모님과 선생님은 광진구에 있는 곳 아니면 인천에 있는 고등학교를 쓰라고 하셨다. 둘 다 원서를 넣지 않은 이유는, 전자는 나에겐 좀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후자는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과 또 지내기 싫어서였다.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학교는 성남에 있는 학교였는데...! 거기는 통학하기도 힘들고, 부모님이 완강히 반대하셔서 시험을 못 봤다. 부모님이 선택지로 준 학교는 모두 가기 싫어서... 어느 학교에 원서를 넣을지 고민하다가 강서구의 학교에 지원했다. 그곳이 내가 나온 모교다.
여러분은 아직까지 고등학교 입학식을 기억하시는지? 나는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옹기종기 모여서, 비둘기 색 교복을 입고 교가를 처음 배웠다. 내 앞에 서있던 친구가 누구였는지도 생각이 난다. 여중을 다니다가 남녀공학을 간다고 하니, 전국에서 못생긴 것으로는 50위 안에 들었던 교복을 입더라도 처음엔 신나게 다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았다. 몇 명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중학교 내내 그 개뼉다구 같은 인간을 보다가 진짜 어른을 만나니까 나름 행복했던 것 같다.
1학년 1학기는 제법 순조로웠던 것 같다. 인생 처음으로 반장을 하게 되어서 정말 열심히 학교를 다녔다. 공부를 열심히 한 건 아니다. 그냥 그때를 충분히 즐겼던 것 같다. 실기 시험을 말아먹어서 대성통곡도 해보고, 학교에 환경미화 대회라는 게 있어서 밤 10시까지 남아 교실 꾸미기도 해 보고. 내 인생에 청춘! 하고 물으면 곧바로 열일곱 살 봄과 여름~ 하고 외칠 수 있겠다.
그렇지만 몰랐지. 2학기 때 너무 힘들어질 줄도 모르고... 가을학기가 되고 나서 같이 다닌 친구들과 틀어지게 됐다. 그때 내 무리는 4명이었는데, 나머지 3명이 나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뭔가 소외시킨다는 느낌이 들자마자 바로 한 명에게 얘기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단톡방에 초대하더라. 그래서 얘기를 해봤는데 그때도 약간 이해가 안 갔지만 지금은 더 모르겠다. 사실 대화하면 풀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어떤 걸 예로 들어볼까... 아, 그래. 내가 장난으로 한 대씩 치는 게 아프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꺼낸 애는 우리 학년에서 가장 힘이 세고, 그녀에게 한 대 맞으면 꽤 오랜 시간 아픈 걸로 유명한 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다. 지금 누가 누구를...! 너 이 색히 가만 안도.
나머지 둘은 그냥 그렇다 치는데, 한 명은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는다. A. 내가 유난히 더 좋아했던 친구다. 나름 관심사도 비슷하고, 잘 맞았었다. A의 얘기로는 내가 누군가에게 그 애의 험담을 했다고. 혹은 평가라던가. 좋아했던 만큼 A랑은 얘기를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사실은. 이젠 돌이킬 수 없겠지만 말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실기 성적이 나오는 날이었는데, A는 정말 잘하는 친구였는데 자기가 시험을 잘 못 봤다고 겸손을 떨었다. 그리고 역시나 결과는 1등. 이 자식이...! 하는 마음으로 의자 던지는 시늉을 했다. 의자를 진짜 던지진 않았지만, 그게 A에게는 아주 위협적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건 미안하다. 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내가 좀 심한 장난을 치긴 했으니까. 문제 제기를 할 만하다.
내가 풀고 싶었던 오해는 험담에 관련한 거였다. 나는 맹세코 걔를 안 좋게 얘기한 적은 없다. 이해가 안 간다, 사실은. 나는 그 학교에서 제일 좋아하던 사람이 걔였는데. 누가 그렇게 전달했을지 예상은 가지만 추측에 불과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평가를 했다는 부분에선, 왜 그렇게 생각했을지 이해는 간다. 어쩌면 내가 진짜 한 것 같거든. 그때 내가 약간 평론가병이 도져 가지고 얘는 어떻고 쟤는 어떻고... 막 떠벌리고 다니진 않았는데 주위 친구들한테는 작게라도 평가하긴 했다. 그건 잘못이지 뭐, 음.
A든 다른 애들이든 앉아서 진득하게 얘기를 할 수 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그 애들 사이에 낀 사람이 좀 있었다. 한 명은 W. 얘는 정말 지금까지 살면서 본 적 없는 독특한 캐릭터의 소유자다. 나랑도 나쁘게 지내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툴툴대더니... 갑자기 A랑 같이 있는데 나보고 매점으로 내려오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쪽엔 4명이 있었고 난 겨우 한 명. 싫다고 하고 안 갔는데 걔가 개지랄 난리 부르스 염병을 떨었던 게 기억난다. 내 얘기는 한 마디도 들은 적 없으면서 갑자기 오라 마라.. 지금 생각해 보면 걔는 그냥 양아치질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__^;
다른 한 명은 J였다. 얘도 나름 독특한 놈이다. 원래 있던 무리와 헤어지고 J의 무리에 합류했다. 그때 공통적으로 다들 짝사랑하고 있는 상대들에 대해 신나게 얘기하던 때라서 나름 자연스러웠다. 친구들이랑 틀어진 일로 일파만파 소문이 퍼지자 내가 힘들어했는데, 엄마가 내 핸드폰을 몰래 뺏어서 A와 전화를 했다. 그때 J가 A의 옆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직도 똑똑하게 기억하는데, 시창청음 시간이었다. 끝나고 내려가는데 계단에서 갑자기 나를 불러 세웠다. 애들 일에 부모가 끼어드는 게 이상하다는 말을 시작해서... 사실 거기까지 얘기를 했으면 이해할 만하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네 부모가 이상하니 그 부모 밑에서 자란 네가 신뢰가 안 간다면서 못 다니겠다고 하더라. 나는 그 일을 회상하며 후회하는 것이 늘 있다. 왜 걔 싸대기를 때리지 않았는가?
그 말을 듣고 큰 충격에 빠진 나는 다음 수업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같이 다닌 J에게도 그런 말을 들었는데, 반 애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정신이 아득해졌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꺽꺽 울다가, 그냥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어서 벽에 머리를 몇 번 내리쳤다. 어지럽긴 한데 죽진 않더라. 해도 죽진 않았겠지만, 제일 높은 층에 가서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고도 했었다. 결국 뛰어내리진 못했지만. 2번째 자살시도는 그렇게 어물쩍 넘어갔다.
다행히 그 후에 좋은 친구들과 다녔다. 거절당할까 봐 무서워서 벌벌 떨며 점심 같이 먹어도 되냐고 물었는데, 친구들이 흔쾌히 내 손을 잡아줬다. 그 친구들에게 가진 고마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애들 몇 명이 나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길 했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끝까지 믿어준 친구들이다. 한 명은 지금 연락이 안 되는데, 가끔 보고 싶다. 만나서 그때 참 고마웠노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도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지금 다니는 병원의 소아정신과에 찾아갔다. 진료실의 분위기와 냄새, 선생님이 다정하게 물으시는 모습까지도 기억이 난다. 내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은 몇 가지 검사를 해보자고 했지만.. 병원비가 너무 비싸서 검사를 받지 못했다. 레슨비만 내도 벅찬 상황이었고... 후회스러운 때다. 그때부터라도 치료를 받았으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아씨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흐르지 못하게 또 살짝 웃어.. (feat. 아이유)
그렇게 내 열일곱은 끝이 났다. 예전에 문득,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하고 싶냐고 누군가 물은 적이 있었다. 열세 살로 돌아가도 좋겠지만 나는 열일곱으로 돌아가고 싶다. 잃은 것도 많았지만 얻은 것도 있어서. 그리고 그때의 일들을 없던 일로 만들고 싶었다. 서른 살이 넘으면 돌아가고 싶은 때가 달라질까? 우스운 생각도 해본다. 그럼에도 언젠가 좋아질 거라고 믿는다. 불혹이든 예순이든 언젠가 다 잊힐 날이 오겠지. 그런 기대를 또 해본다.
... 다음에는 열여덟 살 이야기를 해보겠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