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김까밀
정신과 병원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중학생일 때였다.
당시 나는 중학교 3년 내내 똑같은 무리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왜 나를 싫어했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내가 엄마를 통해 문제 제기를 하면 그냥 다들 사과만 하기에 급급했다. 1학년 때 그만두지, 왜 3년 내내 똑같은 짓을 반복하셨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나는 그때 '스파이'로 오해를 많이 받았다. 중학교에서 스파이? 이게 무슨 뜻이냐. 내가 선생님들에게 저들을 고자질했단 뜻이다. 자기들이 애초에 나쁜 짓을 안 했으면 뭐 혼나는 일도 없었을 텐데. 안 그래? 그리고 결정적인 건 난 한 번도 이른 적이 없었다는 거다.
도대체 왜 날 의심했는지도 전혀 모르겠다. 왜 하필 나였을까? 내가 그렇게 선생님들과 친해 보였나. 나는 2, 3학년 담임선생님을 제외하곤 중학교 선생님들에게 별다른 애정도 관심도 없다. 아, 당시에는 그분들에게도 사랑받고 싶어 하긴 했지. 분명 내가 부장 선생님께 말을 전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선생님과는 정말 안 맞아서, 아직도 그분 이름 석자가 들려오면 치가 떨린다. 으으.
나는 스스로 해결하는 게 참 어려웠다. 특히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할 때 더더욱. 항상 무슨 일이 터지면 나 혼자와 집단의 문제였다.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해서 항상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매번 엄마한테 이야기를 했다 보니 언젠가 몇 번 '마마걸'이라고 불렸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엄마한테 이야기한 게 잘못이었을까?', '스스로 해결했어야 했나?'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스스로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에게 이야기 한 건 잘못한 게 아니야. 너는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았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거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었던 거야.
우리 학교 부장 선생님은 지금 생각해도 참 유별났다. 껌칼로 사람 때리는 여자는 나 처음 봤잖아.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는데, 그 화이트보드 밑에 펜이랑 지우개 두는 판때기 있잖아. 그걸로 애들을 팼었다. 쉽게 말하면 곤장 타임. 책상 위에 엎드려진 채로 맞았다. 그때 당시에는 어느 정도 체벌이라는 게 미약하게나마 존재해서 가능할 만한 얘기였다. 그렇게 체벌을 하고 다녔는데 교사에서 안 잘린 게 여태껏 신기하다.
언제 한 번 이런 일이 있었다. 친한 친구 책상에 누가 욕설을 적어놨길래 괜히 내가 화가 나가지고, 친구 손을 붙잡고 교무실에 간 적이 있었다. 친구 어머니와 선생님이 통화를 하신 후에,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호출하셨다. 영문을 모르는 채로 교무실에 내려갔는데, 갑자기 내 핸드폰을 달라고 하셨다. 엥? 왜요? 걔네 어머니가 내가 한 거 아니냐며 의심스럽다고 했단다. 그래서 핸드폰을 잠시 뒤져봐야겠다고. 그때는 선생님이 아주 무서웠고, 내가 여기서 반기를 들면 의심을 살까 봐 그냥 핸드폰을 줬다. 선생님이 내 문자기록과 카카오톡을 뒤지는데, 그때 정말 모멸감이 들었다. 의심받는 것도 억울한데 내 사생활까지 들출 일인가? 차라리 글씨체를 대조해서 찾는 게 훨씬 이로운 일이었을 거다.
핸드폰에 관련한 일이 또 있었다. 한 번 엄마가 선생님과 통화하면서 "까밀이가 고자질했다고 오해받는 게 속상해요, 선생님." 이렇게 말씀한 적이 있다. 그런데 거기서 선생님이, "아니에요. 까밀이가 얘기한 거 맞아요. 전화번호가 1004? 이렇게 왔는데.. 제가 추적 어플 돌리니까 까밀이 번호가 뜨더라고요."라고 얘기하더란다. 그 얘기를 듣고 제대로 빡친 부모님과 나는 SKT를 찾아가서 3개월치 연락기록을 받아왔다. 당연히 안 보냈으니까 문자 기록은 없었다. 아오... 이렇게 얘기하니까 멱살 잡고 싶어진다. 이 미친 여자야 가만 안도
나는 항상 생각한다.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순 없어도, 한 사람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나도 사람인지라 미움의 감정이 불쑥불쑥 올라올 때가 많다. 그리고 미워한다는 건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그래서 잊으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SNS에 올라오던 욕들, 대놓고 멸시하던 눈빛 하며... 중학교 1학년 때, 다른 동아리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선배들한테 불려 간 일이 있었다. 선배들과 나만 있으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구경하라는 듯이 같은 반 친구 몇 명을 연습실에 데려왔다. 내가 어쩌다 친구 한 명 눈을 쳐다봤는데, 뭘 꼬나봐? 하며 비웃던 말이 떠오른다. 나중에 잘못했다며 사과는 받았지만, 사람이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 잊히지 않잖나. 어휴. 기억을 지워주는 기계 같은 게 빨리 발명됐으면 좋겠다. 억만금을 들여서라도 잊고 살고 싶다.
그런 일들이 자꾸 생기니까 언젠가 한 번 한계에 도달한 적이 있었다.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수건으로 목을 졸랐다. 중학생의 머리로는 그 정도 수준의 시도밖에 못하나 보다, 그런 생각이 지금 드는데.... ^_^; 그래도 죽지 않자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엄마가 오는 소리가 들려서 결국 시도는 실패했다. 어휴 까밀아~ 그때 죽었음 얼마나 억울할 뻔했어~ 그 정도에 그친 게 천만다행이다.
그들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들까? 항상 일을 무마하기 위한 사과를 했어서 여즉 의문이다. 찔리는 자가 있다면 작게라도 미안해하거라. 껄껄. 그래도 지금은.. 그래, 조금은 나아졌다. 그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든, 뱉은 말과 한 행동으로 벌을 받든, 아니면 기가 막히게 잘 살고 있든... 다 괜찮다. 나만 잘 살면 그만이지. 어쩌면 그런 일을 겪고 지금의 내가 있는지도 모르니까.
사실 내 네이버 마이박스에는.. 그때 당했던 일들을 캡처해서 저장해 놓은 파일이 있다. 10년도 더 된 파일이네. 다시 마주하기가 두려워서 보지도, 지우지도 않았다. 혹시나 억울할 일이 생길까 봐 그대로 내버려두었는데... 언젠가 제대로 마주하고 꼭 지울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내가 그때 있었던 일들에게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툴툴 다 털어버리고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쓰고 나니 약간 충동이 밀려오는데... 심호흡을 하면서 나를 달래고 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다독여본다. 넌 결국 끝까지 버텼어.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렇게 믿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정말 다 잊을 수 있을 거야. 고생했어, 김까밀! 나를 잘 보듬어줘야겠다. 역시... 그 방법이 제일 좋지. 아이스크림을 먹어야겠다! 음하핫하. 두 개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