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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Jan 24. 2020

남자 vs. 난자



남자는 없고 난자는 있는데  

그나마 남아 있는 난자들은 골골 

아직 날 떠나지 마





미혼 일 때 산부인과 정기검진 중 발견한 낮은 난소 수치. 빨리 준비하지 않으면 임신이 어려워질 수 있는 수치라고 했다. 나는 평소에 매우 건강했다. 요가, 피티, 필라테스 등 꾸준하게 운동을 했고 인스턴트 음식보다는 건강식을 챙겨 먹으면서 건강한 신체를 유지했다. 그 흔한 감기도 잘 안 걸리는 나를 보며 건강에 대한 자부심도 컸다. 그런데 뭐 난소 수치?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복병이었다. 나이 먹으면서 이런 것도 체크 안 해봤냐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난소 수치가 존재한다는 것도 모르고 살고 있었다. 수치가 떨어질 때마다 몸에 신호가 오는 것도 아니고 전혀 생각도 못하고 살고 있었다. 산부인과 선생님은 바로 난임 과로 연결시켜주셨고 얼떨결에 만난 난임과 선생님은 지금이라도 난자를 얼려두자고 제안을 했다. 


아직도 집으로 돌아오던 그 길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봄인데도 불구하고 쌀쌀한 날씨였다. 봄에 맞게 얇아진 겉옷이라 바람이 더욱 춥게 느껴지던 그런 날이었다. 선생님에게 들은 단어들이, 문장들이 너무 커서 머릿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가슴에 무겁게 얹어져 있었다.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은 상황과 상당히 억울한 기분이 뒤섞여 화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꾹꾹 눌러 담으며 집에 겨우 도착했다. 그리고 바로 터졌다. 


“아니 남자도 없는데 난자를 걱정할 상황이 됨? 누가 결혼 안 한댔어? 나도 결혼하고 싶고 아이도 가지고 싶은데 남자가 없는걸 어떻게 해! 남자가 없는데 난자는 어떻게 생각하며 아이는 어떻게 생각해! 누굴 놀려??!!"


하늘을 바라보며 한참을 토해냈었더랬다. 그러다가 앞으로 만날 소개팅 남들 앞에서 ‘전 난자를 얼려두었어요’라고 말하는 나를 상상을 했다. 현실 부정과 빠른 현실 적응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순간이었다. 


선생님의 권유대로 난자를 채취해서 얼려두었다. 이 난자들은 마지막 최후의 순간을 위해 아껴두고 있다. 소화하기 벅찬 현실이었지만 막상 채취를 해서 얼려두니 마음이 든든해지는 묘함이 있었다. 시험관을 진행해보니 난자를 얼려둔 것 가지고는 확률적으로 어려운 게임인 걸 잘 알지만 그래도 조금은 위안이 되는 점은 사실이다.   


최근 들어 텔레비전에서 난자를 얼렸다고 말하는 연예인들을 종종 본다. 병원에 가서 예방주사 맞는 정도의 일처럼 매우 간편하게 이야기해서 내가 너무 촌스러웠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솔직히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서 난자를 미리 얼려둔다는 것은 시간과 비용 측면 그리고 정서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나처럼 떠밀려서 하늘을 원망하며 어쩔 수 없이 하지 않는 한, 산부인과를 먼저 찾아가서 난소 수치를 확인하고 난소 수치에 따라서 난자를 채취해서 냉동을 한다라... 어렵다. 주변 미혼 친구들에게도 난자를 냉동하라고 조언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나 보다. 가끔 나에게 이 절차에 대해 묻는다. 그들도 불안할 것이다. 하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재 상황에서 미래에 있을지 없을지 모를 아이를 위한 그림을 미리 껴놓기는 쉽지 않다. 이를 너무 잘 알기에 난자 냉동 권유는 더욱 조심스럽다. 나도 떠밀려서 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매우 낯설었을 단어 일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보내라고 할 수도 없다. 나처럼 고생할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요즘 나는 친구들에게 비타민 D를 선물한다. 우선 어떻게라도 난자를 지키고 있으라고. 우린 한방이 있는 여자들이라고 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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