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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초코파이

by 그리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열리는 마켓, 사람의 마음이 오가는 작은 광장"


몇 주 전 일요일, 본다이 마켓에서 정신없이 바쁜 오전을 보내고 근처 유명 베이커리에서 빵 몇 개를 사 왔다. 허겁지겁 허기를 달래고 나니 2개가 남았다.

The Bakery on Glenayr

오후 두 시쯤, 한 아시아 여성 손님이 조용히 제품을 둘러봤다. 화장기 없는 얼굴, 무심히 둘러맨 배낭, 편안한 옷차림. 한국 사람들은 대충 느낌이 오기 마련인데, 이분은 쉽게 가늠이 되지 않았다. 직원과 영어로 대화하다가, 어느새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 보고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은 여행 중인데,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해밀턴아일랜드에서 셰프로 일한다고 했다. 자유롭고 밝은 에너지가 가득한 분이었다. 20여 년 전, 워킹비자로 일하며 시드니를 여행하던 내 모습이 겹쳐 더 반가웠다.

대화 중 경상도 억양이 살짝 묻어나 "고향이 어디세요?" 물었더니, 놀랍게도 나와 같은 대구였다. 13년을 호주에서 지냈지만, 대구 사람을 만난 건 손에 꼽을 만큼 드문 일. 괜히 더 반가워 수다꽃이 활짝 피었다.


그때, 한국인 커플이 다가왔다.

“전체적으로 한국의 추구미(?)가 느껴져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 한국 분이시네요~.”

여자친구가 귀걸이를 고르고, 두 사람의 눈빛이 어찌나 예쁘던지, 나도 뭔가 챙겨주고 싶어졌다.


‘맞다, 아까 남겨둔 빵이 있었지!’


마침 출출할 시간일 것 같아 빵을 나눠드렸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본다이 로컬 맛집 추천으로 이어졌다. 며칠 뒤 멜번으로 떠난다는 그 커플은 내가 만든 귀걸이를 구입하고, 환한 미소로 맛집 도장 깨기에 나섰다.


이어 또 다른 한국인 커플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내가 한국어로 대화하는 걸 듣고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먼저 건네왔다. 서로 영어로 대화하다가 나에게는 서툰 한국어로 질문했고, 따뜻한 시선과 함께 귀걸이를 구입해 갔다. 귀걸이 맛집으로 소문난 걸까?


이날은 정말 ‘한국 분들이 날 잡고 오신 날’ 같았다.


한 분 한 분, 다정한 온기가 가득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충만함이 가슴을 채웠다.


그 대구 손님과는 30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눴다. 해밀턴아일랜드에 놀러 오면 직원 할인가로 숙소를 예약해 주겠다고 했다. 제품을 네 개나 구입하고, 서로의 SNS를 팔로우하며 헤어졌다.


한국 분들에게는 언제나 할인을 해드리지만, 이 손님은 친동생 같아 더 깎아드렸다. 학연·지연에서 벗어나야 된다지만 나는 그게 쉽지 않은 사람인가 보다.


그리고 30분쯤 지나, 커피와 디저트를 들고 그 대구 손님이 다시 찾아왔다.

“아까 너무 많이 깎아주시고, 빵도 나눠주시고, 워킹비자 선배로서 해주신 얘기도 너무 감사해서요! 다음에 꼭 놀러 오세요!”

미소 가득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고, 또 한 번 따뜻한 작별을 나눴다.


아, 정 많고 따뜻한 우리 한국 사람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한국의 ‘정(情)’이 뭘까 생각해 봤다."


단순한 호의나 친절을 넘어,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따스한 정서.

한국인의 ‘정(情)’은 계산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가까워서 나누는 것도, 오래 알아서 챙기는 것도 아니다.

길에서 처음 만난 이에게도, 인연이 닿은 이에게도,

거창하지 않아도, 작은 행동 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로 온기를 전하고 내 것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이다.


늦가을, 감을 수확할 때 다 따지 않고 까치에게 남겨 두는 감을 가리키는 단어 ‘까치밥’처럼,

작지만 다정한 그 배려가 바로 한국의 ‘정(情)’이다.


그날의 마켓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정이 오가고 마음이 머무는 ‘까치밥이 주렁주렁 열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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