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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 May 21. 2023

조직을 잘 정할 것

결국 나와 함께 할 사람들에 대한 선택

회사에서 마음 지키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시작은 조직을 잘 정하는 것부터 라고 생각한다.


직무에 대한 고민부터

그동안 한 번도 마케터라는 직무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이직에서는 직무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했었다. 직무부터 고민하게 된 계기는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가장 컸던 것은 사람 때문이었다. 마케터의 일은 혼자서 할 수 없고 사람들을 계속 설득하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인데 '그냥 이 정도면 되겠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려 할 때 바위에 부딪히는 느낌, 그래서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힘이 빠졌었다. 그리고 일이 되게 하기 위해 기준을 세우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그런 것이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는 되려 내가 일을 하려는데 딴지를 거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으며 '이렇게 사람들과 부딪히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사람과 부대끼는 것에 너무 지쳤고, 하지만 마케터는 필연적으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밖에 없기에 다른 직무까지 고민했었다. 하지만 고민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건, 사람들을 설득하면서 일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마케터의 고유 특성이라기보다는 회사라는 곳 특성이고, 회사에 속해서 일을 한다면 누구나 토론하고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스스로 정리했다. 물론 회사 안에서도 혼자 일할 수 있는 다른 전문 직무들도 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직무는 모두 사람들을 인볼브해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이고, 어차피 해야하는 일이라면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마케터 업을 두고서 굳이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 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한 고민

그리고 내가 그동안 함께 일할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에 안일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동안은 내가 신나게 일할 수 있는 곳인가 하는 비즈니스 측면만 보았다. 내 기존의 조건 (이커머스여야 하고, 고객의 니즈를 일깨울 수 있어야 하고, 내가 고객이 될 수 있는 서비스일 것이며 등등)에는 어디에도 나와 함께 일할 사람에 대한 기준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이직 기준은 좀 더 클리어했던 것 같다. 다른 여타 기준들이 여전히 있지만 새롭게 추가되고 가장 중요했던 것은 조직문화에 대해 고민하는 조직일 것, 사람에 대해 고민하는 조직일 것이라는 기준이었다. 회사가 조직문화와 사람에 대해 고민하는 만큼, 일에 대해 욕심 있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추가된 기준이었다. 그리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처럼, 어느 정도 성장 궤도에 올라탄 회사들, 그래서 어느 정도 훌륭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조직들이 조직문화와 사람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기 때문에 그런 조직에 가겠다고 결정했다. 사실 그 회사가 얼마나 사람을 고민하는지는 그 회사를 다녀보기 전까지는 알지 못하는 것이지만, 면접이나 물어보는 질문들에서 이 조직이 어떤 형태로 일을 하는지, 새로운 구성원을 뽑는데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를 보면서 유추해보았다.


<참고: 지난 이직의 기준>

https://brunch.co.kr/@236project/49


그렇게 내가 무언가를 더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고, 조직문화에 대해 고민하고, 그래서 자연스레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조직일 것. 그 기준에 부합한다고 예상되는 곳으로 이직을 결정했다.


용의 꼬리가 될 것인지, 뱀의 머리가 될 것인지?

그렇게 이직 후, 밤 11시 퇴근길에 오랜만에 친구와 전화를 하며, 회사는 두 종류밖에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A: 스마트한 사람들이 많고 서로에 대한 기준치가 높아서, 내가 늘 부족하게 느껴지는 조직. 그래서 필연적으로 내가 많은 시간을 일에 쏟고 워라밸이라고 불리는 것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조직.

B: 내가 그 조직에서 가장 스마트하게 느껴지는데, 나와 의견을 토로할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조직. 일이 편해서 몸은 상대적으로 편하지만,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많은 조직.


그래서 사람들이 '용의 꼬리가 될래? 뱀의 머리가 될래?' 라고 묻는 것이 아닐까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동안 이직을 하면서 인더스트리, PLC (Product life cycle), 브랜드 상황에 따라 다양한 회사들을 경험해보았고, 그 회사들을 다양한 사분면 안에 그려넣을 수도 있지만, 이번 이직 이후에는 그동안 다녔던 회사들을 또다른 사분면에 그려볼 수 있겠다 생각했다. 스마트한 사람의 비중을 한 축으로 두고, 워라밸/ 혹은 일의 빡셈 정도를 한 축으로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A처럼 스마트한 사람들이 모여있을수록 (그리고 보통 스마트한 사람들이 성격까지 나이스하다) 각자 성장에 대한 기준치도 높고 회사의 기준도 높으니까 회사의 성장이라는 목표에 집중해서 많은 일이 돌아가고 늦게까지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것이 느껴지니 스마트하고 나이스한 사람들은 점점 모이고, 어느 순간엔 네임밸류화 되는 것 같다. 이 회사에서는 성장 하나는 잡을 수 있다던가 등등. 그리고 모든 것이 클리어하다. 일만 잘하면 노 이슈. 일의 뒷 배경도 없고, 모두 회사의 성장이라는 목표 하나로 데이터에 기반하여 논의한다. 그리고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다들 자기 할 일이 바쁘고, 자기 일에 욕심이 있다 보니 편 가르기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다. 대신 이 곳에서는 더 많은 논의가 깊이 있게 진행되니 이를 따라가기 위해서 더 일을 깊게 파느라 일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B는 업무적으로는 힘든 것이 없지만 (어려운 업무가 주어지거나 깊게 고민할 일이 생겨도 모두 내가 커버가능한 수준) 함께 하는 사람들로 인해 힘듦이 생겼다. 나만 만나본 줄 알았는데 이런 회사를 경험해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아주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무리를 만드는 사람, 편은 만드는 사람도 만나보았고, %의 개념을 모르는 사람도 만나보았다. 이런 곳에서는 일이 되게 하기 위해 나의 많은 시간을 코칭에 써야했다. 그리고 사람에 데이는 일도 많이 겪었는데, 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당연히 why를 묻고, 이 일을 했을 때 예상되는 size impact을 계산해오길 묻고(자원은 한정적이니, 단순히 이거하자 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 무슨 목적과 목표를 위해 이것을 해야하는지를 명확히 그려야한다.) 그런데 그런 내가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꼰대라고 평가되어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거나, 이렇게 사람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 인류애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용의 꼬리가 될 것이냐, 뱀의 머리가 될 것이냐' 라는 질문에 나는 당분간은 용의 꼬리로 성장하기로 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 5명의 평균이 나'라는 이야기처럼, 나의 성장을 위해 당분간 몸이 피곤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이번 이직에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곳', '조직문화가 발전된 곳', '사람에 대해 고민하는 곳'이라는 기준을 세웠던 것도, 이번에 한 번 더 성장하지 않으면 나는 또다시 비슷한 사이즈의 회사를 또 내가 경험한 만큼의 사이즈만큼 키우는 일만 반복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뱀의 머리로 오래 있게 되면 할 수 있은 일이 한정적이고, 그 회사가 더는 아닐 때는 또다른 뱀을 찾아야한다. 용으로 올라탈 수 있는 기회도 경력이 찰수록 사라진다. 회사에서 높은 연차에 필요로 하는 능력은 점점 올라가고, 그 능력을 갖추기 못했을 때의 나는 비슷한 업무만 반복하면서 남은 몇 십년의 연차를 채워나가야하는 것이다. 몇 년 뒤 내게 또다른 뱀으로만 가는 옵션만 남아있는 삶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우선은 몸이 괴롭기로 결정했다.


다들 일에 집중하는 조직에서는 사람 때문에 힘든 일이 없다.

그리고 이 곳에서는 놀랍게도 사람 때문에 힘든 일이 없다. ‘회사에서 마음 지키면서 일합시다'의 목차에서, 사람 때문에 힘들 때 어떻게 대처했어야 했는지에 대한 많은 글 리스트들이 있었는데 새로운 회사에 오고, 다들 나이스하고 일만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자 이 글들을 쓸 이유가 사라졌다. 정치질을 하고 편을 나누는 사람들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시간을 쏟을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조직으로 더 빠르게 옮겼어야 했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내가 속할 조직을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을 선택한다는 기준으로 더 신중히 골랐어야 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물론 파랑새가 어디에도 없듯, 아무런 문제가 없는 조직은 없다. 용의 꼬리에도 힘든 점은 있다. 사람들도 나이스하고 내가 성장도 하는데, 6시에 칼퇴근까지 가능하며 마음 평온히 다닐 수 있는 회사가 있기는 할까. 다만 내가 어떤 것을 포기하고 어떤 것을 선택할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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